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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교수.(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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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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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북방한계선, Northern Limit Line)은 1965년 유엔군 산하 해군구성군사령관이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한국군·유엔군 군함들이 북쪽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한 한계선이다. NLL은 해군구성군사령관의 명령과 작전통제하에 있는 군사력에만 구속력이 있다. (정전협정 직후인 1953년 8월 30일 당시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했다고 알려졌지만) 1960년 이전에 NLL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떠한 문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 1974년 1월 1일자 미국 중앙정보부(CIA) 문서

22일 연구실에서 만난 문정인(61)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 국제정치학회(ISA) 부회장(2002~2003) 등을 지낸 '미국통'답게, 미국 정부 자료를 근거로 서해 NLL 문제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3급) 비밀해제된 '서해한국도서'라는 제목의 이 문서가, 1년 뒤인 1975년 2월 '키신저 전문'의 근거자료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NLL은 일방적으로 설정됐고,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정부는 이 해역에 영해(territorial waters)라는 용어를 씀으로써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주한 미 대사관에 보낸 전문은 CIA보고서 등과 함께 NLL이 처음에 어떤 의도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핵심 문서다. 문 교수는 "NLL은 영토선도, 해양경계선도 아니라는 건데 이같은 미국입장으로 보면 설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해도 문제 될 게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는 'NLL은 영토선'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럴 경우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해 북한과의 국제해양법상 다툼이 있게 된다"며 "남북이 모두 국제해양법에 따라 12해리 영해를 주장하게 되면 이 지역이 영토 분쟁지역화 되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NLL은 영토선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반국가' '친북' '종북'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법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선동적 정치세력들"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남한의 학자와 관료 중에 유일하게 1, 2차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했고,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장과 청와대 안보실장을 제안받기도 한 그는 NLL 문제에 대해 노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다며 "노 전 대통령은 NLL의 국제법적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평화를 지켜야 하는 불가침경계선이라고 인식하고, 오히려 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와 공동어로구역이라는 방법을 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록' 공개주장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진위를 확실히 가리자는 차원에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내년 2월에 들어서는 새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이나 타 국가들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생각이면 열람해서 공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그 파장에 대한 책임도 공개를 주장했던 정치인들이 확실히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기록은 굉장히 예민한 사안들이 많은데, 지금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기록을 공개한다면 누가 기록을 남기려 하겠나. 현 정부는 기록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인가"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

"영토선도 해상경계선도 아니라던 CIA... 클라크 작전명령서도 존재하지 않아"

임천영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NLL이) 법률적으로 영토선"이라고 주장했다.
 임천영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NLL이) 법률적으로 영토선"이라고 주장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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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천영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나중에 번복하기는 했지만 국정감사에서 "NLL을 영토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라고까지 했다.
"NLL이 영토선이라면 이를 부정하거나 선을 넘어갈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NLL은 영토선이 될 수 없다. 당장 헌법 3조 영토조항에 위배된다. 더 복잡한 문제는 그럴 경우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북한과의 국제해양법상 다툼이 있게 된다. 남북이 모두 국제해양법에 따라 12해리 영해를 주장하면 이 지역이 영토 분쟁지역화 되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영토선이라는 주장은 참으로 답답한 소리다."

- 그렇다면 NLL은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NLL의 성격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5가지 주장이 있다. 먼저, 보수 정치인과 법학자들은 이를 '영토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토선이라고 할 경우 헌법 3조에 위배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영토선과 다름없는 '해양경계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동해와 달리 서해에는 군사분계선이 획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육지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으로서 '해양분계선'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을 '해상불가침경계선'이라고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하되 이후 별도 합의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NLL을 '북방정찰한계선(Northern Patrol Limit line)'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정전 당시 유엔군 사령관인) 클라크 라인', 즉 북방한계선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이다.

1974년 1월에 만들어진 미국 CIA 보고서가 최근에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NLL은 영토선도, 해양경계선도 아니라고 못 박고 있다. 1965년 유엔군 산하 해군구성군사령관이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한국군·유엔군 군함들이 북쪽으로 넘어가지 못하게끔 그어놓은 한계선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NLL은 국제법적 지위도 없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북한도 동의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1953년 8월 30일 마크 클라크 전 사령관이 NLL을 그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보고서는 '1961년에 유엔사가 산하 부대들에 대한 작전통제권 차원에서 NLL을 설정했던 기록은 있으나 그 이전에 NLL을 설정했다는 문건을 찾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의 NLL 선포 내용이 포함된 작전명령서는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클라크 사령관이 선포한 NLL 관련 내용은 '해군본부 작전기밀 제1235호'(3급 비밀)를 통해 확인됐다고 하는데, 현재는 이 1235호자료도 폐기돼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 1975년 2월 북 선박과 항공기가 NLL을 월선했을 때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낸 외교전문도 NLL의 성격을 설명해주는 자료로 꼽히는데.
"이 CIA보고서가 키신저 전문의 근거자료가 된 것으로 보인다. 키신저는 그 외교전문에서 '한국이 이 해역을 '영해(territorial waters)'라 부르는 건 '잘못된 용어'이고 그런 입장이 이 지역에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NLL은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정됐고 북한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제법과 미국 해양법 시각과 배치된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사건이 한국 영해나 배타적경제수역 내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한국 측 성명을 미국 정부나 유엔사는 지지할 수 없다, 한국의 이런 성명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이렇게 볼 때 NLL을 영토선이나 해양경계선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 CIA문건처럼 처음 NLL 대상에 민간어선은 적용되지 않는다면 해양경계선도 아니라는 것 아닌가.
"내가 추정하기에는 1965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NLL을 경계로 지금처럼 경비하진 않았을 것 같다. 황해도 해주에서 떠난 북한 선박들이 NLL을 넘어 자유로이 통행했을 수도 있다.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NLL이 고착화된 게 아닐까 싶다. 이때부터 북측 선박이 NLL을 통과하지 못해 장산곶으로 돌아 국제공해로 나가는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NLL 문제를 제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1968년 1·21사태, 푸에블로 나포 사건 등으로 남북한 간 긴장이 고조되었고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NLL 경계, 경비를 더욱 강화했을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부터 국제해양법협상이 시작되면서 북한이 1973년부터 NLL 문제를 보다 본격적으로 제기했을 것으로 본다."

1974년 1월 '서해한국도서'라는 제목의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문서
 1974년 1월 '서해한국도서'라는 제목의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문서
ⓒ 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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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NLL은 영토선 아니지만 분명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

- 미국 문서들은 NLL에 대해 분명하게 성격규정이 돼 있는 것 같다.
"종합해볼 때, 미국 기준에서 NLL은 국제법 지위도 없고 영해구분선 또는 해양경계선도 아니다. 유엔군 사령관의 작전통제권 지휘를 받는 한국군과 유엔군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선으로 규정된다. NLL이 자의적으로 설정됐는데 이를 한국이 기정사실화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는 명백해진다. NLL이 영토선이라는 주장에 대해 미국은 완전히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이다. 지금의 보수세력의 눈으로 보면, 미국도 '반한정부', '반한세력'이 된다. 이를 두고 정문헌 의원·박근혜 후보 등의 새누리당이 정치적 공세를 펼치고 있는 점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 같은 미국의 입장으로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하지만 설령 그렇게 말했다 해도 문제 될 게 없지 않은가.

또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인 10월 11일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한다'라고 발언한 내용은 위의 미국 문건 내용에 근거해 나오는 것 아닌가 한다."

- 중국은 서해 NLL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북한과 동일하다고 본다. 휴전협정 당시 유엔군은 기존에 점령했던 북측 서해 전체 도서를 북한에 양보하는 조건으로 서해 5도를 유엔군 산하로 가지고 왔고, 이를 한국에 넘겨줬다. 당시 북한은 서해 5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했다. 그러나 서해 5도와 북한지역 사이의 해상 군사분계선을 확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북한은 우리 측이 주장했던 서해 5개 도서 3해리 영해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영해가 12해리라는 것을 고집하면서 그 안에 서해 5개 도서가 있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안다. 결국 수역과 관련해서는 유엔사와 북한 사이에 합의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 1차 정상회담에 이어 노무현 정부의 2차 남북정상회담에도 수행원으로 참여했는데, 이를 전후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NLL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을 텐데.
"노 전 대통령은 NLL이 국제법적 지위 없이 그어진 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 법조인이었기 때문에 NLL을 영토선으로 규정했을 때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에 위배된다는 생각도 확고했다. 그러나 NLL 이남은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지켜야 한다는 믿음도 확고했다. 단 이를 지키는 과정에서 군사적 충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참모들한테 '분쟁적인 NLL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전환할 수 있냐'고 수차례 주문했다. 이것이 10·4 남북정상선언 제5항에 나오는 서해평화협력지대,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의 내용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 새누리당은 "2차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모와 학자들이 2007년 8월 18일 청와대에 모여서 NLL이 영토선이 아니란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했다. '정상회담 가서 NLL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발언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나는 당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런 주장은 말이 안 된다. 기본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진실은 진실이니 알려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국정원 등이 국민 정서를 고려해 반대해도, 노 전 대통령은 NLL이 영토선·해상경계선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동시에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평화를 지켜야 하는 불가침경계선이라고 인식했다. 오히려 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와 공동어로구역이라는 방법을 낸 것이다."

- 새누리당은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회담록'을 공개하자고 주장한다. 비공개로 분류된 정상회담 회담록을 공개한 국제적 사례가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정상회담 회담록 자체가 공개된 사례는 없다. 지난 10월 16일 쿠바미사일위기 50주년이 되면서 당시 상황과 관련해 비밀로 분류됐던 문건이 많이 해지돼 공개되었지만 후르시초프-케네디 간의 대화록은 안 나온 것으로 안다. 심지어 미국 측은 한국 정부가 제2차 북핵 위기의 원인이 된 2002년 10월 3일 '제임스 켈리 미국 차관보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대화'의 녹취록 공개를 요구해도 거부했다. 차관급 대화 내용도 공개 안 하는데 정상회담 회담록을 공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특히 외교안보 사안 공개는 국가안보와 관련해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므로 신중해야 한다. 대화내용 전체가 공개된다면 남북 두 정상끼리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겠나, 본심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수사학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 정상회담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대통령 기록은 굉장히 예민한 사안들이 많은데, 지금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기록을 공개한다면 누가 기록을 남기려 하겠나. 현 정부는 기록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인가."

2007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2007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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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누가 기록 남기나, MB정부는 기록 안 남기겠다는 건가"

-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회담록 공개는 아니더라도 열람은 하자는 주장이 적지 않다.
"나는 노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노 전 대통령이 사적 자리에서 얘기할 때는 격한 표현을 가끔 쓰지만 외국 대표들과 면담이나 협상할 때는 상당히 신중했다. 그런 자리에 배석해봐서 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진위를 확실히 가리자는 차원에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 내년 2월에 들어서는 새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이나 타 국가들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생각이면 열람해서 공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럴 경우 그 파장에 대한 책임도 공개를 주장했던 정치인들이 확실히 져야 한다."

- 우리의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상당 부분 미국의 관련법을 참조했다. 미국은 어떻게 대통령기록물을 관리하고 공개하는가.
"미국은 기본적으로 12년 후를 기준으로 공개한다. 여기에도 자동으로 공개되는 것과 해당 부서에서 논의 후 공개되는 문건이 따로 있다. 특히 지금 문제가 되는 대통령 관리 기록물은 30년 후로 규정한 것으로 안다. 사생활, 인사 관리 기록, 국가 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기록을 공개했을 때 벌어질 정치적·사회적 파장이 크다고 생각해서다. 30년 후에 공개할 때도 관리위원회에서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만 과한 게 아니다."

-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려면 이전 회담의 세밀한 대화 내용을 봐야 하는데, 그런 것까지 막힌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많은데.
"회담록 전체를 다 볼 필요는 없다. 기본적으로 당시 회담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포함 관련 문건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면 되고,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면 된다. 노 전 대통령도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의 회담 기록물을 전부 보지 않은 것으로 안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등 김정일 위원장을 접해본 사람들을 통해 미리 공부하고 갔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2차 정상회담의 후속회담으로 열린 2007년 11월 남북 국방장관 회담 때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이 경직된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해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김장수 장관에게 협상 전권을 주었지만 당시 청와대 안보팀에서는 김 장관에게 협상 옵션에 대해 브리핑을 했던 것으로 안다. 북한이 NLL을 기점으로 한 등거리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거부할 경우, 등면적의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제안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등면적이라는 것은 북측과 거리가 가까운 연평도 지역에서는 우리가 NLL 남쪽의 일정 부분을 양보하는 한편, 북측과 비교적 거리가 있는 백령도 지역에서는 북측이 일정 부분 양보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김장수 전 장관은 당시 북한 대표였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우리 측의 등거리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거부하고, 반대로 NLL 이남에서만의 공동어로구역을 제안했기 때문에 협상을 깼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브리핑대로 등면적에 따른 공동어로구역이라는 역제안을 할 수 있었는데 김 장관이 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가 이를 두고 '경직됐다'는 표현을 한 것으로 안다."

- NLL문제와 관련해 참고할만한 국제적인 사례가 있나.
"없는 것 같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분단국가가 우리밖에 없지 않은가. 남북한처럼 휴전 상태가 오래 지속하고 있는 사례도 없다."

- NLL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우선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에 나온 대로 '별도 해상경계선을 확정 지을 때까지 현 NLL을 유지한다'는 점을 고수해야 한다. 그리고 서해평화협력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답이다. 서해평화협력지대는 경제를 통해 전쟁의 수역을 평화의 수역으로 전환하자는 구상이다. 좌초돼 있지만 결국 여기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을 둘러싼 군사적 대치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을 제안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을 계속 유지하는 가운데 서해에서의 군사긴장을 완화시키고 신뢰구축과 평화공존을 모색하는데는 이 방안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새누리당은 NLL을 영토선이라 운운하면서, 이에 동의하지 않은 이들을 '반국가' '친북' '종북'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이렇게 몰고 가는 사람들이야말로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법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선동적 정치세력들이 아닌가 싶다. 선 긋고 싸우는 식으로 NLL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평화, 신뢰, 공존의 가능성을 없애고 젊은이들의 희생만을 가져온다. 노 전 대통령은 NLL을 포기한 적이 없다. 오히려 NLL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공동어로구역 등을 추진했다. 남북기본합의서 이후 NLL 문제를 정공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인물이 노 전 대통령이다. 그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게 안타깝다."


태그:#NLL,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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