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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전 오마이뉴스 본사를 방문한 신은미씨.
 지난 4개월간 오마이뉴스에 방북기를 연재했던 신은미씨. 세 번의 여행으로 북한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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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재미동포 아줌마가 통일 전도사로

"뜻하지 않았던 방북기 연재를 마쳐서 기쁘고 뿌듯합니다. 보잘것없는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북한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신은미(51)씨. 그는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음대 교수를 지냈지만, 1년 전인 지난해 10월만 해도 평범한 재미동포 중산층 주부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정태일·56)이 이번에는 북한에 가보자고 했을 때, 뭔가 아주 내키지는 않았지만 별일 있겠냐는 생각에 "그러자"고 했던 것이 발단이었다. 안 가본 나라이니 호기심에 한번 가보자고 나선 여행이었는데, 그게 해를 넘겨 세 번의 여행으로 이어졌다. 내년에 또 가겠단다.

우리에게는 낯선 땅, 아무나 갈 수 없는 땅, 그래서 누구에게나 두려운 땅인 북한의 무엇이 이토록 신씨 부부를 자꾸 유혹하는 걸까.

"여행 중 만난 따뜻한 북한 동포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에 비친 그들의 가난은 지금도 제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북한에 다녀온 후 사람들이 제게 '북한은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난한 나라'라고."('북한은 어떤 나라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난한 나라

 금강산에 휴가 온 북한의 한 가족과 함께.
 금강산에 휴가 온 북한의 한 가족과 함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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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의 마음에 남은 북한이라는 나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자 '가난한 곳'이다. 비록 오랫동안 담을 쌓고 살아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만나 보니 정이 많고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가족이 돼도, 그전에 수천 년간 함께 살았던 사람들로서 얼마든지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일부 지방의 경우 너무나 궁핍한 상황을 사진에 담기도, 글로 옮기기도 미안할 정도였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남쪽과의 관계가 막힌 그들은 중국에 손을 뻗었고 접경 지역 일부는 중국인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신씨는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끼리 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오마이뉴스>를 알게 된 신씨는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꼭 30회의 북한 여행기를 연재했다. 그리고 매회 수십 만의 독자가 읽었으며, 수많은 독자들이 다음 북한 여행기는 언제 실리는지 손꼽아 기다렸다. 가히 <오마이뉴스> 최고 인기 연재기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북한 여행기를 모은 단행본은 11월에 발간될 예정이다.

신씨 부부가 지난 16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방한에서 그들은 내로라하는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고,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4년여 전만 해도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해외교포 뿐만 아니라 남한 사람들에게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북한을 다녀온 사람은 많았고 방북기도 흔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다시 아무나 가보기 어려운 곳이 됐다.

북한 사람들을 보기도 어려워졌고, 통일도 그만큼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신은미씨의 북한 여행기는 그런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북한에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통일이 되면 얼마든지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찾은 신씨 부부에게 북한 여행기에 다 싣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연재기사 바로가기

"이런 얘기에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했는데..."

 18일 오전 오마이뉴스 본사를 방문한 신은미 부부
 18일 오전 오마이뉴스 본사를 방문한 신은미 정태일씨 부부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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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연재가 끝났습니다. 소감이 남다르시겠습니다.
신은미(신) : "당초 언론매체에 기고하거나 책으로 엮어내려는 목적이 전혀 없이 북한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랬는데, 북한에서 충격을 받았죠. 그리고 그 충격은 감동으로 변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스스로를 추슬러보고, 지금까지 이기적으로 살았던 나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서 여행기를 쓰게 됐습니다. 주변에 '내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글을 쓰고 있다'고 토로하니, 어떤 분이 <오마이뉴스>를 추천하면서 '<오마이뉴스>라면 북한 여행기를 잘 다뤄줄 것'이라고 하셨어요.

여행기를 편집부에 보내기 전에는 '과연 남한 사람들이 통일에 관심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첫 회 반응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여행기를 올리면 내 친구 혹은 가족들이나 볼 줄 알았는데, 매회 조회 수가 수십만 건에 이르더라고요. 신기하기도 하고 놀랐습니다.

여행기에 대한 반응이 좋든 나쁘든 반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 통일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도 됐죠. 좋지 않은 댓글을 볼 때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힘들기도 했습니다. 연재를 마치고 나니 뿌듯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말예요. '앞으로 정치하는 분들만 잘한다면 통일이 더 빨리 다가올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힘이 닿는 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글을 더욱더 나누고 싶다는 사명감 같은 게 생겼어요."

- 원래 남북관계나 북한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요.
: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반공사상에 꽁꽁 묶인 사람이었어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대구 출신인데다, 집안 내력도 무척 보수적이었어요. 외할아버지는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내셨고,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장교 출신이셨죠. 어릴 적 리틀엔젤스 단원으로서 해외 공연을 하던 중 육영수씨가 피격을 당해 돌아가셨는데, 그때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고 대성통곡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후 저는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주변 친구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 유려하지는 않지만 글을 굉장히 쉽고 설득력있게 쓰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필력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 "저는 평소에 글을 많이 써본 사람은 아니에요. 그리고 의식적으로 '어떤 의도를 글에 집어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아마 한 줄도 제대로 쓰지 못했을 거예요. 일기를 쓰는 심정으로 진심을 담아 썼기 때문에 글을 막힘없이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태일(정) : "출판사에서, 앞으로 한국에서의 계획과 활동 등을 포함해 후기를 새로 써달라고 했어요. 지금까지 아내는 막힘없이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다르더라고요. 일주일 동안 책상 앞에 앉아만 있다가 결국 한 줄도 쓸 수 없었습니다."

- 이번 방한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 "사실 이번엔 집안 행사 때문에 온 건데, 북한 여행기 때문에 세 가지 일정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소개로 23일 한반도평화포럼에서 특강을 하게 됐고요, 둘째는 11월 중순 출간 예정인 북한 여행기 책 편집 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또 한 방송사 통일 관련 프로그램과 인터뷰도 하게 됐어요. 원래 한국에 온 김에 라진-선봉에도 다시 가려고 했는데, 이런 일정들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라진-선봉은 2013년 8월 다시 갈 생각입니다."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는 사람들... 북한 외교관한테 감사 이메일도

 오른쪽이 다시 만난 국철이, 그리고 왼쪽은 이번에 우리를 안내한 군관
 신은미씨 부부가 판문점 북측에서 만난 북한 군인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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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기를 보고 나서 주위 사람들이 어떤 반응들을 보이던가요.
: "저와 같이 제 지인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예전에 제가 가졌던 것과 같이 북한에 대한 '완전한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남한에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 여행기를 읽고 난 지인들이 보낸 쪽지 등을 보면, 대체로 '사고의 전환을 경험했다'는 평이었습니다. 항상 우리가 봐왔던 북한은 '어두운 곳'이었는데, 북한여행기를 접한 뒤 '아, 그들도 우리와 같구나, 사이좋게 지내는 데 문제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요. 그 점을 아주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개중에는 '그러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것'이라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 혹시 북한 쪽에서의 반응은 없었나요.
: "뉴욕에 있는 UN 북한대표부의 참사관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봐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의 좋은 건 좋다고, 나쁜 건 나쁘다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서 고맙다는 거죠. 특히 동포애를 보여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 "이후 미국의 한 교민신문 기자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임에서 그 참사관을 만났는데, 여행기에 대해 하도 찬사를 보내길래 그 기자도 여행기를 읽게 됐다는 거예요. 또, 중국에 진출해 있는 북한 관광총국 관계자도 '감동적인 글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써줘서 고맙다'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실명으로 거론해서 '혹시나'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 "우리도 그 부분을 걱정했었죠. 독자들도 '기사에 실명이 나오는데 당사자가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그 분들이 거리낌 없이 말한 그대로를 전달한 것이었고, 또 북한이라는 사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꽉 막힌 그런 사회는 아니라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게 됐지요."

"옛 남대문시장 방불케 한 라진-선봉 장마당... 평양엔 7~8배 큰 게 있다"

- 라진-선봉에서는 장마당도 다녀오셨습니다. 인터넷이나 남한 TV에 비친 장마당은 매우 초라한 모습이었는데.
: "아뇨. 장마당은 정말 컸습니다. 비록 라진-선봉이 작은 도시지만 중국과 근접해 있기 때문에 중국 보따리 장사치들이 셀 수도 없이 오가더라고요. 그런데 안내원은 '평양에는 라진-선봉 장마당보다 7~8배 더 큰 장마당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북한 사람들이 쿠쿠 밥솥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의 가격을 말해주니 '값이 거의 비슷하군요'라고 말하더군요. 장마당에는 없는 게 없었습니다. 더러 열대과일도 보였고요.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들은 작은 마을의 장마당이거나 장마당 초입인 듯합니다. 사진을 찍을 기회도 있었지만, 안내원들과의 약속 때문에 찍지 않았습니다."(없는 게 없는 북한 '장마당'... 입이 딱 벌어졌다)

- 남한 언론이 장마당을 다룰 때 자주 등장하는 게 꽃제비입니다. 꽃제비들이 정말 있던가요.
: "우리는 보지 못했어요. 안내원에게 꽃제비에 관련된 이야기를 했는데, 최근 시설을 많이 만들어 그런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설의 규율이 상당히 엄하다고 들었습니다. 시설에서 교육을 잘 받고 나면 직업도 얻을 수 있다고. 아이들이 가끔 도망 나오기도 하는데 결국 다시 시설로 돌아가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 장마당이 그렇게 크던가요.
: "제가 어렸을 적 동대문 혹은 남대문 시장 같았습니다. 라진-선봉 장마당은 실내·실외로 구분돼 있는데 실내 장마당은 정말 컸습니다. 하루 1만 명이 이용한다는데, 그 정도 규모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실외 장마당도 아주 넓었어요."

(* 인터뷰 2부 "좋은 곳만 구경? 누가 관광객에게 감옥 보여주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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