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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만들기 1천만 선언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 낮은 곳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우리 사회의 맨 밑바닥에서 핍박받고 홀대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반드시 개선시켜보자고 많은 이들이 맘과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10월 27일 '10만 촛불행진'을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비정규직 없는 사회를 위한 마음을 모아봅니다. [편집자말]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여 첫 밤을 보낸 18일 아침, 현대차 비정규직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이 건재하다는 듯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중문 앞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여 첫 밤을 보낸 18일 아침, 현대차 비정규직 천의봉(위), 최병승 조합원이 건재하다는 듯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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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1996년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전 두 번의 취업경험이 있다. 1984년 대학 4학년 때 여름 공장 체험을 위해 동생의 이력서를 사용하여 인천 부평에 있는 브라운관 제조공장에 3주간 위장(?)취업을 한 사실이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 공장에 취업하면 공안기관의 요주의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고등학생이던 동생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1985년 대학을 졸업하고 동제품 제조회사인 풍산에 기술직으로 취업했다.

내가 위장취업했던 부평의 중소기업도, 대학졸업 후 정식 취업했던 대기업도 채용조건으로 근로기간이나 고용형태를 언급한 바 없었다. 당시 기업에서는 '근로기간의 정함이 없이' 직접 채용하는 것을 당연시했고, 입사지원자 또한 회사의 임금 수준이 얼마이고 정년이 몇 세까지인지 질문했을 뿐이다.

주변의 누구도 내가 취업이 되었다고 했을 때 근로계약기간이 얼마인지 직접고용인지 간접고용인지 묻지 않았다(물론 인력시장에서 '노가다'라고 불리는 일용직 노동과 임시직 노동은 존재하였지만). 노동력을 사용하고자 하는 회사가 직접 인력을 채용하여 근로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사회통념이자 원칙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공장 정문마다 '사원을 가족처럼'이라는 표어를 붙이고, 연공서열에 따른 급여체계를 적용했다. 대졸과 고졸, 기술직과 생산직 등 학력과 직능에 따른 차이는 있으되,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임금과 복지의 전체적인 수준은 매우 열악하였지만 최소한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과 고용기간, 복지 등 근로조건을 차별받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근로기간의 정함이 없었기에 자신이 취업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승진을 기대하고, 임금 중 일부 저축도 하고 결혼을 설계하고 내 집 마련의 꿈을 꾸었다.

직접고용? 간접고용? 그런 고민 없었던 '그때'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1997년 IMF 시기를 지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계약기간이 정해진 '기간제 노동자'(일명 계약직 혹은 임시직 노동자)와 파견·용역·사내하청이라는 이름을 가진 '간접고용 노동자'(자신을 고용한 사장과 자신이 근무하는 사업장의 사장이 다른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이면서도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모든 노동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들을 통틀어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부른다. 비정규직 채용이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의 삶과 생활은 심각하게 불안정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무리 성실하게 일을 하여도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계약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고용주에게 잘 보여야 한다. 고용주의 눈 밖에 나면 그날로 추방은 예정된 것이다.

그러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든지 실직자로 전락할 수 있는, 뿌리 뽑힌 신세일 수밖에 없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지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방패막이로 비정규직의 사용을 묵인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말을 기준으로 월평균임금이 정규직은 272만 원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132만 원이다. 비정규직의 임금 평균이 정규직의 48.5%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에서부터 심각한 차별을 받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적용받는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 자녀학자금 등 거의 모든 복지혜택에서 제외되어 처우에서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경남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경남도교육청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 임용 등에 관한 조례안'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며 경남도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남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경남도교육청 공무원이 아닌 근로자 임용 등에 관한 조례안'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며 경남도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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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최저임금위원회가 제출한 '미혼 단신근로자 생계비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미혼 단신근로자의 월평균 생계비는 131만2755원이고, 2010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2011년 4인 가구 최저생계비(사람이 생활하는 데 드는 최소 비용)는 143만9413원이다. 그렇다면 월평균임금이 132만 원인 비정규직 노동자는 4인 가족의 최저생계비는 고사하고 겨우 자기 자신의 생계비만을 받고 일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고용이 보장되지도 않고 임금 또한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낮은 임금수준으로 인해 가족의 최저생계비조차 책임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노동기본권, 심지어 투표할 권리조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사치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으며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박탈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땅에 860만 명이나 존재하고 있다. 2010년 무역규모 1조 달러로 세계무역순위 9위에 이름을 올린 대한민국에서, 죽어라 일해도 가족의 최저생계비조차 벌 수 없고 언제 해고될지 몰라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사람들이 900여만 명에 이른다.

'무역규모 9위' 요란한 구호... 900만 명의 '132만원 인생'

우리 헌법은 누구든지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며(제11조 1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제11조 2항)고 명시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제32조 1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해야 하며(제32조 3항),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제32조 4항)고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일개 재벌의 1년 당기순이익이 10조 원을 넘고, 주주가 수백억 원 내지 수천억 원을 배당금으로 받아가는 세상에서 가족의 최저생계비와 해고를 걱정하며 불안한 나날을 살아가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900만 명에 접근해가고 있는 현실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그 현실은 참을 수 없는 불평등이며, 묵과할 수 없는 불의이다. 비정규직의 확산과 차별의 일상화로 인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 그리고 평등(헌법 제11조)을 최고의 이념으로 하는 우리의 헌법적 질서가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무역규모 9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요란한 구호의 뒷전에서 가족의 최저생계비조차 받지 못한 채 권리를 박탈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차별의 현실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이 취업한 회사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열심히 일해 승진을 기약하며, 임금 중 일부를 떼어 저축도 하고 결혼생활을 설계하며 내 집 마련의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처우를 받는 불합리한 차별이 없는 사회! 우리가 염원하던 최소한의 세상이 아닌가?

비정규직 노동의 본질은 자본이 노동시장을 분열시켜 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생아요 수탈적인 착취수단이다. 비정규직이란 제도는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이자 노동자들 내부를 갈라놓는 반문명적인 차별의 온상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희망한다면, 차별의 온상인 비정규직의 철폐를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그래서 나는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를 만들기 1천만 선언운동'과 '10만 촛불행진'에 참여한다.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 청소년들이 취업을 앞두고 근로계약기간이 얼마인지, 직접고용인지 간접고용인지, 나아가 노동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노동자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오기를 고대하면서.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만들기 10만 촛불행진' 포스터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 만들기 10만 촛불행진' 포스터
ⓒ 비정규직없는일터와사회만들기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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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입니다



태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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