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0년 10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한 가수 이효리는 "눈 떠보니 스타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2010년 10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한 가수 이효리는 "눈 떠보니 스타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 MBC 방송화면 캡처

관련사진보기


언젠가 이효리가 그랬던가. 눈을 뜨고 나니 모든 게 달라졌다고. 이효리는 눈 뜨니 스타가 됐지만, 나는 눈을 뜨고 나니 '이민자'가 되어 있었다. 외지인의 제주도 이주를 '이민'이라 표현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제주가 섬이라 그리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제주 이민' '제주 이민자'라는 말은 몇 가지 느낌을 준다. 일단, 제주 원주민과 이주민을 나누는, '너와 나는 다르다'는 각인을 팍팍 준다. 이른바 '괸당문화(친척이나 인척이라는 뜻의 '권당'에서 비롯된 말로 제주 지역색 문화를 뜻한다)'나 '텃새' 탓이 아니어도, '이민'이라는 말은 영원한 비주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고작 한 시간 거리인 섬으로의 이민. 하지만 생활에서 몸으로 느껴야 하는 변화는 결코 적지 않다. 도시에서 시골로의 모든 이주가 그렇듯, 먹고 입고 자는 크고 작은 일상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5000원짜리 '몸뻬'에 시선이 갈 줄이야

일단, 비싼 정장과 하이힐이 아닌 제주 모슬포 오일장의 5000원짜리 얼룩말무늬 '몸뻬'바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 단칸방에서 혼자 자는 건 서울이나 제주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낯선 침입자에 대한 괜한 공포로 밤잠을 설치지는 않는다. 또한 TV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홈쇼핑 채널에 심취해 전화로 뭔가를 주문하는 일도 없다. 대신 책을 펼치는 시간이 늘었다.

무엇보다 제주 살이가 부른 큰 변화는 '먹는 것'이다. 요즘 나는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사온 기름 잘잘 흐르는 자반고등어와 황태해장국, 자리젓을 자주 먹는다. 가끔 톳을 무쳐 먹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것'이겠지만, 내게는 '별 거'다.

문득 집 앞을 나가보니 일몰이 멋지다.
▲ 대평리의 일몰 문득 집 앞을 나가보니 일몰이 멋지다.
ⓒ 조남희

관련사진보기


잠시 서울 직장인 시절이던 나의 먹거리를 생각해본다. 아침은 먹는 것보다 자는 게 더 중요하니 패스. 점심은 다들 아는 회사 식당의 그저 그런 식단. 저녁은 친구와 치맥(치킨과 맥주), 곱창, 감자탕 등. 야근하는 날은 라면과 김밥 그리고 가끔 회식. 주말에는 느지막히 일어나 일단 라면. 친구와 약속이 있으면 삼겹살 아니면 횟집이다.

그러고 보니 참, 부끄럽게도 이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음식이 없다. 망망대해와 같은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나의 '촉'은 오직 라면, 삼분카레, 비엔나 소시지, 냉동만두 그리고 수입맥주로 향했다. 엄마가 "이래서 시집 가겠느냐"고 잔소리 하면 "난 요리 잘하는 남자 만날 거"라고 말했다.

지금 사는 제주도 대평리가 서울처럼 쉽게 음식이 배달되고, 대형마트가 가까운 동네라면 어땠을까. 내가 지금처럼 뭔가를 만들어 먹게 되었을까?  

서울 살던 시절, 아주 잘 써먹은 스마트폰 앱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주변 배달음식점을 한식, 중식은 물론 야식 가능 여부까지 한방에 정리해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 지점에서 가까운 맛집을 찾아 주는 앱이었다.

대평리 집에서 이 두 앱을 실행시켜 봤다. 배달음식은 역시나 '검색결과 없음'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치킨을 배달하는 집이 있다.) 근처 맛집 검색 결과로는 거의 가지 않는 카페 두 개만 나올 뿐이다. 검색결과가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계속 가정식 요리를 연습할 수 있다.

짬뽕 등의 이른바 배달음식이 그립다면, 차 타고 나가야 한다. 며칠 전 지인이 놀러왔을 때, 나는 숙취로 다 죽어가던 그의 표현대로 "내 인생에서 가장 먼 해장길"을 선사해주었다. 짬뽕이 유명한 서귀포의 중국식당으로 갔는데, 차를 이용했을 때 집에서 무려 30~40분 정도 걸렸다.

내가 사는 집 주인 아주머니가 종종 그러신다. "밥은 먹고 다녀요?" 내 뱃살을 아직 못 보셨는지, 그런 말씀 하시는 걸 보면 좀 의아하다. 그냥 인사치레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 잘 해 먹고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의미에서, 일전에 여수에서 사온 돌산 갓김치와 손님이 오면 대접하려고 사놓았던 허벅술(제주도의 증류식 소주)을 드렸다. 없는 살림에 아까워서 덜덜 떨면서 말이다.

아주머니는 "바깥 양반이 애주가"라며 덥석 받으신다. 얼마 뒤, 창밖 일몰이 좋아 사진 찍으러 대문을 열었다가 주인집 내외와 마주쳤다. 저번에 인사할 때는 받는둥 마는둥 하시더니, 이번엔 나를 보시는 바깥주인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그나저나 갓김치 담겼던 통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가 담겨서 곧 재회하길 기대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웃 간에 음식을 주고 받는 일도 서울에선 절대 해본 적이 없다.

보목포구의 제지기오름에서.
 보목포구의 제지기오름에서.
ⓒ 조남희

관련사진보기


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으로서 '대평리는 뭔가 다르구나' 싶던 일이 있다. 대형마트나 배달음식점은 가깝지 않지만, '가깝고 빠른 서비스'를 대평리에서 경험했다. 어느날 외출하려고 사람들과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가 앞 바퀴에 펑크가 난 걸 발견했다. 주말인 탓에 '빨리 처리가 될까'를 염려하며 보험사 콜센터에 접수를 했다. 보험회사 안내원은 "곧 기사님에게 전화가 갈 것"이라고 했다. 곧이어 정말로 금방 전화벨이 울렸다. 

"빵꾸 났수과?"

죄송스럽지만 그야말로 나는 빵 터졌다. 서울에서는 "고객님 타이어 펑크 접수하셨죠? 지금 어디쯤 계신가요?"가 정석이고, 그런 '서비스'에 익숙했다. 웃음을 억지로 참고 대답했다.

"네, 여기 대평리 삼거리슈퍼 앞 공영주차장인데요."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저씨 한 분이 오셨다. 알고보니 당시 묵고 있던 대평리 숙소에서 멀지 않은 집의 아저씨였다. 어쩐지 어딘지 더 이상 구체적으로 묻지 않더라니. 그러고 보니 내 차 근처에 카센타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아저씨는 익숙한 솜씨로 금방 '빵꾸'를 때워주셨다. 정말 가깝고도 빠른 서비스였다.     

서울에 있을 때 예술영화를 보기 위해 이용했던 홍대의 상상마당이나 광화문 씨네큐브 같은 공간이 제주에는 흔치 않다. 얼마 전 영화 <두 개의 문> <케빈에 대하여>가 보고 싶어 간질간질했는데, 결국 일이 생겨 육지에 가서야 볼 수 있었다. 40km를 달려 대평리에서 제주시로 가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아주 소소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일상. 불편함으로 받아들이면 한이 없다. 늘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터. 하지만 즐겁게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중이다. 마음 편히 살자고 온 제주 아닌가. 


태그:#제주도, #대평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