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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옛길에서 만난 화전민촌

월정사 옛길의 단풍
 월정사 옛길의 단풍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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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를 내려오면 길은 역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차량이 다니는 차도고 다른 하나는 계류를 따라 나 있는 월정사 옛길이다. 옛길 이정표를 보니 월정사까지 거리가 8.3㎞다. 우리는 지체 없이 월정사 옛길로 들어선다. 대부분 사람들이 차도로 다니기 때문인지 옛길은 한적한 편이다. 돌다리와 낙엽을 밟으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그동안 비가 별로 오지 않아 계류를 흐르는 물이 많지 않다. 그래도 물가의 단풍이 참 아름답다.

2㎞ 남짓 내려가니 화전민촌의 흔적이 보인다. 안내판을 보니 이곳 상원사 지역에 360여 가구의 화전민이 살았다고 적혀 있다. 그들은 벌목과 제재 그리고 농업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곳에 큰 제재소가 있었으며, 오대산의 나무를 베어 목재로 만든 다음 강릉과 원주 그리고 서울 지역으로 반출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산에 불을 놓아 밭으로 만든 다음 그곳에 밀과 보리, 조와 수수, 콩과 팥 등 잡곡을 심어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화전민촌의 무너진 담장
 화전민촌의 무너진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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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60년대 화전정리 사업으로 그들은 모두 이곳을 떠나 가까운 진부나 평창, 원주, 서울로 이주하게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화전금지라는 표지석과 화전민 주택의 담장과 축대만이 남아있다. 산골의 해가 서쪽으로 기운지 한참이고 산그늘이 화전민촌에 지기 시작해 쓸쓸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이 떠난 지도 벌써 사오십 년, 그렇게 반세기가 지나가고 만 것이다.

월정사에서는 불교문화축전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는 옛길을 따라 3㎞쯤 내려온 것 같다. 이 즈음에서 나는 차도로 나와 연화교를 건넌다. 연화교를 지나면 길은 오대천을 왼쪽으로 끼고 계속 이어진다. 오대천은 두로령 아래에서 발원하여 진부에서 월정천과 척천을 아우른 다음 정선군 북평에서 골지천에 합류된다. 옛날에는 오대천이 한강의 발원지라 했는데, 최근에는 태백의 검룡소에서 발원하는 골지천에 그 지위를 넘겨줬다.  

월정사 차도: 위로 생태통로(줄)가 지나가고 있다.
 월정사 차도: 위로 생태통로(줄)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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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교 아래 오대산장 간판에도 벌써 불이 들어와 있다. 길 위로는 줄을 연결해 야생동물 생태통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실제 그것이 생태통로가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벌써 오후 4시 15분이다. 이런 식으로 걸어가면 월정사에 5시 30분에나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법당과 탑 등은 밤에라도 볼 수 있지만 성보박물관은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월정사까지 내려간다.

버스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 월정사 경내로 들어가니 오대산 불교문화축전 준비가 한창이다. 생명, 명상, 치유라는 화두를 들고 시작된 축제가 올해로 벌써 9회째를 맞는다. 10월 19일(금)부터 21일(일)까지 개최되는데, 문화체험 및 전시, 법회와 세미나, 음악제와 미술대회, 백일장, 치유 프로그램 등을 마련한다고 한다. 이번 행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성보박물관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안치된다는 점이다.

월정사 용금루
 월정사 용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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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강생명 시원제를 하는데, 오대산에서 솟구치는 우통수, 옥계수, 청계수, 총명수, 감로수를 느끼고 체험하고 보는 일종의 문화제를 구상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와 미술을 대중이 좀 더 가까이 느끼게 하려는 생각에서 보살 기획전과 민화작품전을 연다. 이 기획전과 작품전은 10월 9일(화)과 13일(토)에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이층으로 된 용금루(湧金樓) 통로를 지나 월정사 적광전 앞마당으로 올라간다. 마당에는 팔각구층석탑과 공양보살상이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탑석과 석조보살좌상

오대산 월정사
 오대산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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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석탑과 보살상이 저녁 어스름 속에서 밝게 빛난다. 공양보살상이 더 밝게 보이는데 그것은 복제품이기 때문이다. 원본은 훼손을 우려해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팔각구층석탑은 월정사의 상징이다. 10세기경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15.2m나 된다. 연꽃무늬로 치장한 이층 기단,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완벽한 형태의 금동장식으로 장엄한 상륜부가 조화를 이룬 뛰어난 석탑이다.

전체를 화강암으로 조성하고 상륜부에 일부 금동장식을 더했다. 여러 차례 화재로 손상을 입기도 했으나 오늘날까지 본래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해 오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안상을 새기고 연꽃으로 장식했다. 위층 기단은 굄돌 형태로 단순하게 처리했다. 탑신은 위로 올라가면서 체감 비율이 적기 때문에 안정감이 떨어지는 대신 상승미가 느껴진다. 팔각구층탑에서 팔각은 불교의 실천수행에 기본이 되는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다. 구층은 동양사상에서 가장 완전한 수인 구(九)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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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이루어졌으며, 일층의 사면에는 네모난 감실이 하나씩 있다. 그 중 남면의 감실이 가장 크고 문틀을 단 흔적도 있다. 각층의 지붕돌 추녀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가 날렵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끝에는 풍탁을 달아 바람에 따라 소리를 나게 만들었다. 현재 이들 풍탁은 대부분 그대로 걸려 있다.

1970년 대대적인 해체보수를 했는데, 그때 1층 2층 6층 9층을 새로운 돌로 교체했다. 그런데 그때 석탑으로부터 많은 불교유산이 나왔다. 1층과 5층에서 총 12점의 사리구가 발견되었다. 또 은제 불상 1구, 4점의 청동 거울, 금동 향합과 향주머니, 진신사리경 등 총 12점의 유물도 발견되었다. 그 후 2000년 8월 석조보살좌상을 보수했는데, 그때 지하 1m에서 탑의 기단부로 보이는 또 하나의 유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석조보살좌상 원본
 석조보살좌상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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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보살좌상은 부처님에 해당하는 탑 앞에서 오른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꽃을 바치는 모습이다. 약왕보살(藥王菩薩)이 부처님께 꽃을 공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공양보살상으로도 부른다. 이 보살은 탑을 향하여 한가운데가 아닌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쳐 앉아 있다. 그리고 상체가 하체에 비해 큰데 이것은 우리 눈의 착시현상을 감안한 것이라고 한다.

전체 높이가 1.8m이지만, 보살은 인체 크기와 거의 같게 만들었다. 이러한 공양보살상은 강원도에서만 볼 수 있는데,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도 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월정사 경내에는 이 탑과 보살상 외에 별다른 문화재가 없는데, 그것은 6·25사변 때 월정사가 불탔기 때문이다. 그때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 영산전, 광응전, 진영각 등 17동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이 모두 재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1964년부터 적광전을 비롯한 당우가 새로 지어지면서 현재와 같은 가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보장각에서 만난 보물과 보살 그리고 공예작품

화강석 테라코타
 화강석 테라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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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들 탑과 당우의 일부를 보고 나서 서둘러 보장각(寶藏閣)으로 간다. 그것은 성보박물관의 입장 마감시간이 오후 5시이기 때문이다. 보장각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으로 월정사 뿐 아니라 월정사 소속 말사의 문화재도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이곳에서는 두 가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하나는 '보살, 마음을 담다'라는 불교미술전이다.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는 보살의 마음을 조각, 회화, 공예로 표현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민화작품전으로 '옛 선인들의 삶을 붓과 색으로 만나다'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전자의 전시작품이 입체적이라면 후자의 전시물은 평면적이다.

홍색 화강암으로 표현한 테라코타도 좋고 청동으로 표현한 향로도 좋다. 그렇지만 나의 시선은 보물 제139호인 석보보살좌상으로 향한다. 다른 것이 예술이라면 이것은 실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실내조명으로 인해 보살상의 윤곽이 덜 두드러져 보이지만 예술적인 측면에서 수작임에 틀림없다. 원통형 보관(寶冠)과 보발(寶髮)이 아름답고, 목의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앞가슴의 영락(瓔珞)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보살이 앉아있는 연꽃대좌도 조각이 크고 훌륭하다. 

한봉석 작가의 상원사 문수동자
 한봉석 작가의 상원사 문수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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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옆에는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도 있고, 호류지(法隆寺)의 백제관음도 있고, 석굴암의 미륵보살상도 있다. 그러나 다 예술작품이다. 그 사이 문수동자좌상이 있는데 이것이 원본인지 복제본인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상원사 문수전에도 문수동자좌상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성보박물관에 있는 것이 원본이고, 전각에 있는 것이 복제본인데 이곳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답은 성보박물관을 책임지고 있는 스님과 학예연구사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는 또한 한봉석 작가가 만든 '상원사 문수동자'가 있다. 해태상에 걸터 앉은 문수동자로 이것은 예술작품이 분명하다. 그 외에 문수동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주광관 작가의 '문수동자도'도 있다. 그리고 고려불화의 꽃인 수월관음도를 재현한 손광석 작가의 그림도 있다. 또 한 가지 관심이 가는 것은 도자기로 만든 해월(海月) 최시형 선생 법어다. '천지만물막비시천주야(天地萬物莫非侍天主也)'로, 천지만물 가운데 한울님을 모시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해월 최시형의 법어
 해월 최시형의 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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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모신다(侍)는 공경한다(敬)의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는 말도 했다. 한울님을 모시면 조화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동학을 전파하기 위해 온 몸을 바친 땀의 포교자인데, 월정사에서 그 글을 만나다니 감회가 새롭다. 해월 선생은 이곳 월정사에서 멀지 않은 원주땅에서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번 불교미술전에는 모두 11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민화작품전은 불교미술전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월정사 불교문화대학에 다닌 사람들의 작품전이기 때문이다. 반차도, 초충도, 미인도, 일월오봉도, 기명도, 호작도, 책가도, 장생도, 모란도 등이 보인다. 우리 민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제들이다. 그 중 특히 눈이 가는 것은 미인도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모방했으며, 김선자씨가 그렸다.

한암스님 흉상
 한암스님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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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성보박물관에는 또한 한국 현대 불교의 큰 스님으로 상원사에서 입적한 한암선사의 흉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번 전시로 인해 성보유물의 대부분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 있다. 그래서 상원사 중창 권선문, 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팔각구층석탑 출토유물, 민속자료, 유형문화재 등을 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약속하고 나는 보장각을 나온다. 그 사이 저녁 어스름이 더해졌다. 나는 금강루와 청류다원(淸流茶園)을 지나고 금강교를 건너 월정사를 벗어난다.


태그:#월정사, #월정사 옛길, #팔각구층석탑, #석조보살좌상, #오대산 불교문화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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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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