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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1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과학기술나눔 마라톤 축제에 나란히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13일 오전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과학기술나눔 마라톤 축제에 나란히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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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은 전략적 선택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호남 지역 분들이 참여정부 때 호남 소외로 인한 기억이 아직도 있다."

최근 광주를 찾은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이 <광주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박 의원은 문재인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 의원에 앞서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도 추석 연휴 때 광주를 방문해 참여정부 시절의 "호남 소외"에 대해 사과했다. 시간차를 두고 광주를 찾은 두 사람의 말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과거의 잘못을 사과한다. 과거의 아픔을 잠시 내려놓고 호남 유권자들이 늘 그래왔듯이, 전략적으로 민주당 소속 대통령 후보를 지지해 달라.'

과거를 사과하고 '전략적 선택'을 당부하고... 도대체 민주당은 전통적인 텃밭 호남에 왜 이렇게 몸이 달았을까.

호남에 몸 단 민주당... 도대체 왜?

최선이든, 차악의 선택이든 호남 유권자들은 지금까지 민주당 쪽에 많은 표를 줬다. 하지만 최근 흐름만 보면 호남 유권자의 마음은 민주당 후보 문재인이 아닌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가 있는 듯하다.

추석 이전까지 약 6개월 동안 문 후보의 지지율은 안 후보에게 크게 뒤졌다. 많게는 지지율 격차가 20%p 차이가 나기도 했다. 추석이 끝난 뒤 문 후보가 많이 추격했지만, 다시 안 후보가 앞서가는 양상이다.

호남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남다른 곳이다. 2002년 부산 남자 노무현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만든 곳도 바로 광주다. 광주 무등산에 '노무현 길'이 조성돼 있을 만큼 추모열기도 높다. 그런데 왜, 호남 유권자들은 노무현의 동지이자 분신인 문 후보 지지에는 인색할까? 추석 이전에 만났던, 지역 시민정치단체 실무 담당자의 말을 잠깐 들어보자.

"친노 정치인들을 향한 지역민들의 감정이 너무 안 좋아요. 총선, 지방선거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민주당을 선택했죠. 하지만 시민들은 이번 대선을 민주당 기득권을 심판할 기회로 벼르고 있는 듯해요.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의 트라우마보다 깊어 보입니다. (그동안) 아예 민심이 미동조차 안 했어요. 꿋꿋하게 안철수 지지입니다."

열린우리당 시절의 트라우마. '민주당 분당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 "정치적 유목민이 됐다"고 느낀 호남 사람은 꽤 많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 상처 치유가 덜 된 듯하다.

이는 문재인 후보가 지난 9월 27일 호남을 찾아 "내가 관여했던 일은 아니지만 그 일(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이 참여정부의 큰 과오였다고 생각한다"며 "호남에 상처를 안겨주고 참여정부의 개혁역량을 크게 떨어뜨렸다. 지금도 그 상처가 우리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공개 사과한 배경이기도 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 9월 28일 오전 전남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 9월 28일 오전 전남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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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사과의 힘은 대단했다. 이후 문 후보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탔다. 여론조사 기관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남의 야권 단일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안 후보는 47.3%로 문 후보(42.9%)를 4.4%p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하지만 이 기관이 지난 9월 21~22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안 후보의 지지율은 53.9%에 달해 문 후보(35.8%)보다 무려 18.1%P 앞섰다. 문 후보의 사과 이후 지지율 격차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휴대전화·집전화 RDD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추석 즈음 문재인 후보에 대한 호남의 민심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문 후보는 전국 여론조사에서도 안 후보와의 격차를 좁혔고 때로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5~6일 실시된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남의 야권 단일후보 지지도에서 안 후보는 51.3%로 문 후보 34.8% 보다 16.5%p 앞섰다.

광주MBC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7일 실시한 광주·전남 지역 야권 단일후보 조사에서도 안 후보는 55.3% 지지율로 문 후보(31.0%)를 무려 24.3%p 차로 앞도했다. 이후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안철수 우세'가 호남의 대체적인 정서다. 추석 즈음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 지난 6개월 동안 계속 그랬다.

호남에서 안철수에게 뒤지는 문재인

아직 야권 후보단일화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 호남 유권자들은 양손에 '두 부산 남자' 문재인-안철수를 쥐고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고민은 핵심은 '대선에 내세울 딱 한 명의 정권교체 적임자는 누구?'일까라는 것이다. 현재 호남 사람에게 그 적임자는 안철수다.

문 후보에게 더는 호남 민심을 뒤흔들 특별한 카드는 없어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박영선 선거대책위원장이 호남의 '전략적 선택'을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라는 막강한 '장외 인물'이 버티고 있는 한, 호남 유권자들에게 전략적 선택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호남이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라고요? 그 말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지금 호남 사람이 민주당에 쇄신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봐야지요."

30대 후반의 최아무개씨 역시 전략적 선택이라는 표현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호남 유권자로서 자부심이 컸다.

"다른 곳도 아니고 호남 사람들이 생면부지 안철수 후보에게 이렇게 열광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친근한 걸로 하자면, 당연히 문 후보 지지가 맞지요. 우린 다른 거 없습니다. 기성 정치인들의 구태정치에 질렸기도 하고, 또 정권교체 가능성 하나 보고 후보자를 선호하는 것 뿐입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 이희호씨를 예방한 뒤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 이희호씨를 예방한 뒤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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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다. 호남 사람들은 과거 민주당 분당 사태에 따른 상처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권교체를 바라고 있다. 안철수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서야 승산이 높다고 보는 거다. 그런가 하면 예상외로 선전하는 '호남의 안철수 바람' 현상을 40대 회사원 박아무개씨는 이렇게 해석했다.

"대통령 후보 안철수보다는, 스타 인물에 대한 호감이 크게 작용하는 거 같아요. 그분 광주 왔을 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면서 서로 악수하려 하고,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거 보니까 유명 연예인 맞이하는 것 같더군요. 시민들이 대통령 후보자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한 거 같아요."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면서 우려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그에게 권력의지가 있느냐"고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의구심은 대권 출마를 선언하고 후보자로서 바쁜 행보를 보이는 이 시점에도 말끔히 해소되지 못한 분위기다. 의사, 학자, IT전문가, 사업가에서 정치인 대통령으로의 적응이 쉽겠느냐는 불안감이다.

"공부만 하던 학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겠어요?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이상 서서히 바뀌겠지요. 그래도 좀 불안하긴 해요. 국민들이 불안해 할만큼 못 미더우면 안 되죠. 안철수 후보도 고민하고, 각오하고 나왔으니까 잘 하겠지요. 하지만 좀 그래(불안해) 보입니다."

왜 "불안해 보이는" 안철수를 지지하느냐고?

60대 초반의 정아무개씨는 안 후보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을 나타냈다. 이런 불안은 많은 국민이 안 후보를 보며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30대 초반의 취업준비생 김아무개씨는 단호했다.

"저는 정치는 좀 못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대신 원칙과 소신만 뚜렷하면 돼요.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겠지요.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당장 취업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저도 그런 순진한 기대는 안 해요. 그렇지만 가장 최선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후보라는 믿음이 가기 때문에 지지하는 거예요."

전지전능한 대통령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호남 유권자들은 "투표용지에 안철수, 문재인 두 후보자 중 반드시 한 사람의 이름만 등재되길" 원하고 있다. 호남 사람들은 대체로 야권 단일화를 바라고 있다. 현재 호남의 여론조사 수치와 민심은 투표용지에 '안철수'가 적혀 있길 바라는 듯하다. 문재인 후보는 이런 민심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단일화만 성사된다면 전 누가 되든지 상관없어요. 인품으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문재인 후보가 믿음은 가더라고요. 그런데 또 안철수도 훌륭한 인물이잖아요. 좀 물러 보이기는 해서 약간 못 미덥기는 하지만, 깨끗하고 사심 없는 것만 해도 어딥니까. 모르겠어요. 한 사람이 나서서 박근혜랑 싸워야 한다면 누가 나을까, 아마 두 후보자가 현명하게 결론을 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추석 즈음 광주에서 만난 40대 중반 박아무개씨의 말이다. 또다른 광주의 한 시민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우리가 문재인-안철수 후보 둘 다 좋아하는데... 만약 둘이 단일화 못하면 둘 다 역적입니다. 우린 지켜 볼랍니다. 야권 단일화 꼭 해야합니다."

호남 사람들은 두 부산 남자가 어떤 '합체과정'을 보여줄지 지켜보고 있다. 단일화까지는 시간이 남았고, 대선은 그보다 더 뒤의 일이다.


태그:#문 재인 , #안 철수, #야권후보단일화,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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