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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계곡 등산로. 붉은 전등이라도 켜놓은 것 같은 길
 백담계곡 등산로. 붉은 전등이라도 켜놓은 것 같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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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 설악산이 가을단풍으로 빠르게 물들고 있다. 지난 9월 25일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어느새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설악산 단풍은 10월 17일이 절정이다. 최근 일교차가 심해진 까닭에 단풍이 물드는 속도가 예년보다 한층 더 빨라졌다. 설악산 산마루에서 시작된 단풍이 어느새 산자락까지 밀려 내려와 있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설악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주말에는 차를 댈 곳이 없어, 설악산 곳곳 도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산을 오르는 관광객들로 골치를 앓을 정도다. 이즈음 설악산으로 단풍 여행을 떠나려면, 교통정체에 주차전쟁까지 치러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저런 불편함이 있는데도 관광객들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관광객들이 그 같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데는 이맘때 설악산을 물들이는 단풍이 그냥 잊고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매혹적인 광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설악산에서 마주하게 되는 단풍은 여행길 위에서 겪는 고생을 모두 감내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답다.

백담사 가는 길, 백담계곡. 왼쪽으로 등산객들이 걸어서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백담사 가는 길, 백담계곡. 왼쪽으로 등산객들이 걸어서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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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로 이어지는 길가, 노랗게 물든 나무.
 백담사로 이어지는 길가, 노랗게 물든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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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속도에 취한 사람들, 길을 잃고 풍경까지 잃다

푸른 잎 사이 저 홀로 유난히 붉게 물든 단풍나무 가지.
 푸른 잎 사이 저 홀로 유난히 붉게 물든 단풍나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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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입구 주차장. 수요일(10일) 오전 11시 무렵, 주중인데도 주차장이 거의 꽉 차 있다. 여행객들을 가득 채운 승용차와 관광버스들이 계속 들어온다. 그래도 주말에 비해서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아직은 주차를 하는데도 별다른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주말이라면 이곳도 예외 없이 주차 전쟁을 치러야 한다.

백담계곡으로 들어가려면,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백담사까지 걷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주차장 옆 마을버스 승차장에 등산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주차장에서 백담사까지는 약 7km. 걸어서 1시간 30분에서 2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다. 걷는 수고를 줄이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이 마을버스를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백담사까지 걸어서 들어가는 사람보다는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사실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는 말이 맞을 듯. 걷는 수고를 덜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사실 백담사에서 대청봉까지 올라가야 하는 사람들에겐 이 버스가 시간을 단축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백담사 가는 길. 흙길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백담사 가는 길. 흙길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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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를 오가는 마을버스. 좁은 길을 위태롭게 벗어나고 있다.
 백담사를 오가는 마을버스. 좁은 길을 위태롭게 벗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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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백담사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다시 되돌아 나올 사람들이 왜 굳이 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주차장에서 백담사까지 가는 길 역시 설악산의 일부이고, 설악산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길이다.

이 길은 무엇보다 구절양장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계곡이 장관이다. 유난히 흰 몸을 드러낸 바위들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계곡 물에 몸을 담그고 앉아 있는 풍경이 눈부시다. 이 길은 원래 올레니 둘레길이니 하는 도보여행 길들이 유행하기 전부터 산책하기 좋은 길 중에 하나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 길은 언제부터인지 점점 더 걸어서 다니기 힘든 길이 돼 가고 있다. 사람들이 백담사까지 걸어가는 느린 여행을 포기하면서, 잃은 게 너무 많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길은 그냥 버스를 타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길이다. 이 길이 계속 사람들이 걷기 좋은 길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백담사 가는 길, 고즈넉한 풍경.
 백담사 가는 길, 고즈넉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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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가는 길, 속도 제한 표시.
 백담사 가는 길, 속도 제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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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단풍 구경에 정신 팔려, 시간 가는 줄 몰라

백담사 일주문.
 백담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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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앞 백담계곡 안으로 돌탑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서 있다. 매년 쓰러지고 다시 세워지는 돌탑이 부지기수다. 그 수가 백담사를 찾는 사람만큼이나 많다. 탑 높이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배낭을 내려놓은 등산객들 여럿이 계곡 안에 들어서서 말없이 탑을 쌓고 있다.

탑을 쌓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이곳에 탑을 쌓으러 온 건지 등산을 하러 온 건지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백담사도 '탑'을 쌓고 있다. 절 마당 한쪽에 새로 건물을 짓고 있다. 단풍 시즌에 중창불사까지 겹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안에서 '만해기념관'을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백담사 앞 백담계곡, 돌탑을 쌓는 사람들.
 백담사 앞 백담계곡, 돌탑을 쌓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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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계곡 돌탑들.
 백담계곡 돌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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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계곡, 단풍으로 물든 나무와 돌탑들.
 백담계곡, 단풍으로 물든 나무와 돌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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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계곡 안으로 깊이 들어서면서 단풍이 점점 더 짙어지는 걸 알 수 있다. 등산객들 머리 위로 마치 붉고 노란 차양이라도 친 것 같은 광경이 계속 펼쳐진다. 그 바람에 발길을 옮겨 딛지 못하고 멈춰 서는 더 잦아진다. 가을 산은 해가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다. 너무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백담계곡, 단풍으로 곱게 물든 나무들.
 백담계곡, 단풍으로 곱게 물든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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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계곡 등산로에 붉은 휘장을 두른 것 같은 단풍나무.
 백담계곡 등산로에 붉은 휘장을 두른 것 같은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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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암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그새 산을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영시암이 국수를 말아먹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보살님들이 하산 중인 등산객들에게 국수를 보시하고 있다. 대청봉을 넘어온 사람들에게 그 국수 맛이 얼마나 달게 느껴질까. 화덕에 국수를 삶는 솥이 6개나 걸려 있다. 굴뚝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 광경에 갑자기 없던 시장기가 돈다.

이 여행은 원래 '오세암'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걸로 계획돼 있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영시암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백담사 주차장에서 영시암까지 무려 6시간이나 걸렸다. 걷는 데만 열중했다면, 서너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여행을 단풍 구경에 정신을 파느라, 두세 시간을 더 지체한 것이다. 발목을 붙잡는 풍경이 너무 많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백담계곡, 산을 내려가는 등산객들.
 백담계곡, 산을 내려가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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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암.
 영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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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주말에 설악산으로 단풍 여행을 떠날 경우, 고속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 지자체에서는 교통정체와 주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 산에서 보내야 할 시간을 도로 위에서 허비하는 건 너무 속쓰린 일이다. 교통에 불법 주차가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럴 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정도의 희생이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한편, 설악산에서는 13일부터 14일까지 설악문화제 산악페스티벌이 열린다. 13일에는 속초시 설악산 소공원에서 '설악산 산소길 생태탐방 행사'가, 공룡능선 구간에서는 '공룡능선 하늘길 걷기대회'가 열린다. 그리고 14일에는 달마봉 능선을 오르는 '설악산 단풍길 걷기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태그:#단풍, #백담계곡, #설악산, #백담사, #영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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