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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심학산 자락에서 마주한 장례식 풍경
 파주 심학산 자락에서 마주한 장례식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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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거 구성진 민요소리잖아. 산속에서 무슨 축제라도 열렸나?"

산길을 걷던 일행들이 발길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운다. 정말 어디선가 구성진 민요 가락이 들려오고 있었다. 북소리도 쿵쿵 들려왔다. 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인가 했더니 여러 사람들이 합창하는 소리도 들렸다.

"잘한다. 얼쑤~"

이건 분명 추임새다. 정말 산길 숲 속에서 무슨 축제가 벌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일행들은 발길을 재촉했다. 지난 18일 낮 12시께, 우리 일행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심학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이날 우리 일행은 전철 3호선 종점인 대화역서부터 심학산 둘레길을 걸었다.

둘레길에 들어서자 숲이 울창하다. 심학산은 높이가 해발 192m로 산이라기보다는 구릉에 가깝다. 하지만, 평야 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 전망이 좋다. 남쪽 자락을 휘적휘적 걸어 출판단지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닿았다. 우리는 한강하구와 김포평야, 그리고 멀리 북녘땅까지 바라본 뒤 정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숲길을 걷자 어디선가 멋있고 구성진 우리 가락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재촉해 부지런히 오르자 조금 가파른 산길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민요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 땅을 파는 중장비와 차일까지 처져 있는 풍경에, 삼베 두건을 쓴 상주의 모습도 보인다. 축제라고 생각했는데 장례식이었던 것. 우리 일행은 어리둥절했다.

▲ 회다지소리 1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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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 지금 무덤을 판 자리에 관을 묻고 흙을 다지면서 노래하는 거 맞지?"
"맞아. 그런 것 같은데? 죽은 사람을 장사할 때 관을 묻고 관의 옆과 위에 흙과 횟가루를 덮고 다지면서 <회다지소리>를 하는 풍속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네."

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현장을 보며 일행 두 사람이 속삭이듯 말한다. 우리들이 서 있는 산길에서 무덤 자리까지는 60~70여m 떨어진 거리였다. 경사가 급하고 덤불이 뒤덮여 있어 접근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산길에서 그냥 바라보기로 했다.

파놓은 무덤에 둘러선 사람들은 10여 명. 모두 기다란 장대를 들고 노랫가락과 북 장단에 맞춰 발과 장대로 흙을 다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삼베 두건을 쓴 상주 두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선소리꾼은 북을 둥둥 울리며 <회다지소리>를 이끌고 있었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저 달도 기울면 기우나니, 인생일장 춘몽이니 아니 놀고는 나 돌아간다."

남성이라고 하기에는 비교적 고음을 내는 선소리꾼의 소리가 구성지면서 동시에 애달프다.

가족을 보내는 슬픔과 후손의 번창을 생각하는 마음

▲ 달구질 노래2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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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 에헤요~ 에헤~ 에헤야~, 에헤라~ 에헤야~ 에헤~ 에헤야~"

발과 장대로 박자를 맞추며 회다지기를 하는 달구꾼들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흥겹기만 하다. 가끔씩 "잘한다"라고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연세 많은 노인이 돌아가셨나봐. 호상이니까 저렇게 흥겹게 장례를 치르겠지?"
"아마 그렇겠지? 우리 전통 장례 문화도 지방마다 다른데, 이곳 장례 문화도 매우 독특하구먼."
"정말 그렇구먼. 심학산 둘레길 왔다가 횡재했네 그려. 이런 장례 풍경도 구경하고."

우리 일행은 흥겨운 노랫가락과 예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장례식 풍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 달구질 노래3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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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리워 상사가 났나?"
"에헤~ 상사두야~"

"어제 청춘, 오늘 백발, 어찌 아니 가련한가?"
"에헤~ 상사두야~"

"세월아 네월아 왔다가지를 마라."
"에헤~ 상사두야~"

"아까운 청춘이 다 늙어가누나"
"에헤~ 상사두야~"

"천증세월은 인증수요"
"에헤~ 상사두야~"

"춘만에 건곤이 복만가로다"
"에헤~ 상사두야~"

다음 순간, 박자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회다지소리>는 선소리꾼이나 맞받아 합창하는 달구꾼들이나 춤추듯 흥겨운 몸동작까지 곁들이고 있었다. 한바탕 회다지기를 마친 달구꾼들은 잠깐 쉬려고 하는지 무덤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상주들이 막걸리 잔을 돌리며 술을 따랐다.

▲ 회다지소리4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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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다지소리>는 <달구소리>라고도 한다. 하관을 마치고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관 위와 주변의 흙을 단단히 하기 위해 횟가루를 섞고, 여러 사람이 발을 맞추면서 발과 장대로 땅을 다지며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경기도의 대표적인 <회다지소리>는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의 <달구질 노래>와 부천 지역의 <달구질 노래>를 꼽을 수 있다. 파주 지역의 <달구질 노래>는 '느린달구-자진달구-방아타령-에헤야소리-상사소리-우야훨훨'로 구성돼 있다.

사람이 죽어 땅속에 묻히는 장례식은 분명 슬픔이 동반되는 일이다. 우리 전통 장례식에는 <회다지소리> 같이 망자를 보내는 마음과 후손들의 번창을 기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슬픔을 넘어 흥겨움까지 더하는 우리 풍습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넉넉함이 묻어난다.

덧붙이는 글 | 파주에 있는 나지막한 심학산을 오르다가 마주친 전통 장례식 풍경. <회다지소리>는 요즘 듣기 힘든 소리다. 짧은 분량이지만, 카메라에 담은 동영상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태그:#심학산, #파주, #회다지소리, #달구질노래, #전통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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