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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앞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앞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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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씨 문제가 커져버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여론으로 볼 때는 안철수 후보가 그 때문에 제법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잘 대처하기만 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안철수 후보에게 꼭 불리한 일은 아니다. 그가 바라는 대로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정책을 시행하는 단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그도 노무현 대통령이 범한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을 테니 말이다. 안철수 후보로서는 이번에 예방주사를 맞은 것일 수도 있다. 안 후보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안철수 후보 진영의 어설픈 전술

이번에 안철수 후보는 이헌재씨를 활용하여 안정감을 과시함으로써 중도층의 마음을 잡고 보수층의 일부를 끌어오려는 전술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큰 실수가 있었다. 대선 후보 출마 선언장에서 이헌재씨와 악수하는 사진이 언론에 나가게 함으로써 마치 이헌재씨가 안철수 표 경제정책의 얼굴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안철수 옆에 웬 이헌재, 걱정스럽다).

어떤 언론은 안철수 후보가 이헌재 한 사람과만 악수했다고 하며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사실 이헌재씨는 얼마 전 출간한 책과 관련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안철수 후보와 생각이 비슷함을 암시하는 노회함을 보여주었다.

기본 방향이나 정체성을 분명히 해 둔 다음에 전술을 구사하는 것은 전법에서 기본이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 진영은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을 확실히 보여주기 전에, 전혀 색깔이 다른 인물을 내세우는 어설픈 전술을 구사하는 실책을 범했다. 그랬으니 안철수 후보에게는 집토끼라 할 수 있는 개혁적 성향의 시민들이 당혹해하며 안 후보에 대해 불안하게 느낀 것은 당연하다.

그럼 어떻게 했어야 할까? 애초에 이헌재 카드는 전술로도 쓰지 말았어야 하고, 꼭 써야 했다면 먼저 안철수 표 경제정책의 색깔을 확실히 대변하는 인물이나 집단을 내세워 방향과 정체성을 분명히 보여준 다음에 썼어야 한다. 이헌재씨는 하나의 카드에 불과함을 암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검색하면서 확인한 바로는 19일 출마선언 TV 방송에서 클로즈업되는 이헌재씨 얼굴 때문에 정말 깜짝 놀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헌재씨의 얼굴이 안철수 후보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관료의 속성

우리 사회에서 경제관료는 어찌 보면 최고로 유능한 집단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막연히 문제 많은 존재들이라고 여기던 정치인들이 막상 그들을 직접 대하면 확 끌리기 쉽다고 한다. 그들만큼 문제를 진단하고 근거를 제시하고 대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진표씨를 극찬하고 이헌재씨를 기용했던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관료들과는 대조적으로, 교수나 지식인들은 비판과 논리에는 강하지만 막상 문제의 진단과 근거 자료의 제시에는 약한 경향이 있고 더욱이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젬병이다. 그래서 그런지 역대 대통령들도 정권 초기에는 주로 지식인 그룹을 전진 배치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가면 관료에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잘 깨닫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경제관료는 대단히 유능한 집단이지만 속성상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가치를 실현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그들이 목을 매다시피 하며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경제성장률 제고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뿐이다. 그러니 그들은 천생 기술자들이다.

그럼에도 경제관료들은 자신들이 모든 문제를 꿰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며 정책 방향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 '그렇게 순진하게 가치를 추구하다가는 경제가 망가지고 말 것'이라며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협박'하는 것은 그들의 특기다. 이미 그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대통령이 그들의 '협박'에 넘어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대통령에게는 가장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04년에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우왕좌왕했던 것도, 노무현 대통령이 어처구니없게도 한미 FTA를 밀어붙이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음 번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제관료를 배제하고는 정책을 펼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실력'에 매료되어 정책의 방향까지도 그들에게 맡기게 되면, 그때부터 실패는 시작된다. 대선 후보들은 경제공약을 제대로 만드는 일에도 관심을 쏟아야 하지만, 관료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공부하고 준비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올바른 방법은 경제관료가 기술자임을 명심하고 그들을 적극 활용하되, 그들의 역할에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두는 것이다. 이 원칙은 임기 마지막까지 바꿔서는 안 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회견에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소설가 조정래씨 등이 함께 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충정로 구세군아트홀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회견에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소설가 조정래씨 등이 함께 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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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표 경제정책의 색깔을 보여줄 인물을 내세워야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안철수 후보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헌재씨가 안철수 표 경제정책의 상징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 후보가 한완상씨와 이정우 교수를 내세웠듯이, 그리고 박근혜 후보가 포장술이기는 하지만 김종인씨를 내세웠듯이, 존재만으로도 안 후보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인물들을 내세워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상징적인 인물 한 두 사람을 세우는 데 그치지 말고 그들을 뒷받침할 집단을 구축해서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몇몇 개인이 경제관료 집단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헌재씨에게는 미안한 일이겠지만,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를 계속 곁에 둔다면 '우리나라 경제관료 출신 중에 생각이 바르고 청렴한 사람이 그렇게 없나?' 하는 조롱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안철수 후보와 모피아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도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찾으려고만 한다면 경제 기술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깨끗하고 유능한 전현직 경제관료는 지천에 깔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벌어진 일은 전술상의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실수는 조기에 수습한다면 별 일이 아니고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집토끼들 가운데 형성되고 있는 여론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어설픈 결정을 고집한다면 그건 큰일이다. 중도층과 보수층의 마음을 잡는다는 목표를 달성하기도 전에 집토끼가 대거 떠나버리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번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회복 불능일 것이다. 아무리 우리 사회 최고의 멘토였다 할지라도 일단 빠지기 시작하는 썰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안철수 후보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토지정의시민연대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태그:#이헌재, #경제관료,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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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헨리조지센터 대표,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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