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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전 대법원장
 이용훈 전 대법원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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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유신헌법과 관련해 "헌법이란 이름으로 일당독재의 길을 열어줬다"며 "(유신헌법으로) 대한민국 헌법은 휴짓조각이 됐다"고 21일 말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신헌법 평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현재 고려대 석좌교수로 있는 이 전 대법원장은 21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헌법과 법치주의' 강연에서 유신헌법을 향해 날 선 비판을 던졌다. 그는 "5·16 쿠데타 세력이 만든 제3공화국 헌법은 3선 조항만 빼면 굉장히 선진적이었는데 (유신헌법으로) 10년 만에 휴짓조각이 됐다"며 "이런 악법에 기초해서 긴급조치가 발령됐고 10·26 때까지 긴급조치가 통치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가 주권 조항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짚었다.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다. 그런데 유신헌법은 이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해 주권을 행사한다'고 고쳐 놨다. 이 때문에 국민주권주의가 실종됐다."

이 전 대법원장은 당시 상황을 용인한 법률가와 헌법학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이란 이름으로 일당독재가 가능한 길을 열어준 사람이 당시 유명한 헌법학자들"이라며 "출세에 눈 먼 엘리트 법률가들이 헌법 제정에 관여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 주는 일을 양산했다"고 힐난했다.

그는 이어 "유신헌법 당시 판사로 근무한 나 역시도 그 죄책을 면할 길이 없고, 사법부도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에 따른 판결을 한 원죄가 있다"며 "민주화 이후 긴급조치 위헌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사법부의 원죄를 씻었다"고 덧붙였다.

"건전한 비판 배척하고 국민 통합한다는 건 위험한 생각"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이 전 대법원장은 법률가로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이 나라의 통치수단으로 올바르게 작용하기 위해서는 법률가들이 비판세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이 전 대법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건전한 비판세력을 배척하고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법률가들이 사회의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법원장은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법 해석이 아닌 법 제정"이라며 "국민의 의사표현이 법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그:#이용훈, #유신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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