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MBC 노동조합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MBC 노조원들이 총력투쟁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위해 1천만명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총파업에 이르기까지 투쟁 수위를 점차 고조시켜 나갈 것이다"며 김 사장의 퇴진과 MBC 공정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MBC 노동조합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MBC 노조원들이 총력투쟁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위해 1천만명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총파업에 이르기까지 투쟁 수위를 점차 고조시켜 나갈 것이다"며 김 사장의 퇴진과 MBC 공정방송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나는 MBC에 입사는 한 번 했지만, 해고는 두 번 당했다. 그것도 2012년 한 해에만. <오마이뉴스>가 '해직기자 일기' 류의 원고를 청탁한 배경에는 이런 진기록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고 이후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되짚어 봤더니 우선 국가가 내게 보내준, 돈 내라는 고지서와 똑같이 생긴 세 장의 통지서가 떠올랐다.

해고 후 15일이 되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귀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친절한 문구와 함께 직장에서 지역 건강보험으로 바뀌었다고 알려줬다. 해고 80일에 고용노동부는 '사유: [14]징계해고'라는 분류코드와 함께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을 상실했다고 용건만 간단히 알려줬다. 해고 109일엔 국민연금공단이 "2015년 ○월까지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납부예외를 '취득'했다고 가르쳐 줬는데, 희소식을 전하는 어투였지만 실은 앞으로 3년간의 무직 상태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가히 '해고 알리미' 3부작의 완결편격이었다.

해고 뒤 날아온 통지서 세 장

그런데 딱 거기서 생각이 멈췄다. 고생담이랄 것도 없고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없는 나의 해직기자 생활을 '썰' 풀기에 앞서 너무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우선 파업 참여 이유로 정직 3개월을 당한 최일구, 김세용 두 부국장은 잘 계시는지. 최 선배는 방송 안 하고 그 끼를 어떻게 주체하실지, 집안 일 자주 하시면서 주부 습진 생긴 김 선배는 주부 우울증이 왜 생기는지 알 것 같다고 하셨는데.... 

MBC아카데미에 교육생으로 보내진 이들은 또 어떤가? 대기 발령 3개월이라는 '실형'을 다 살고도 또다시 3개월 교육 발령을 받았으니, 이건 '보호감호'라고 해야 맞겠다. MBC 보도 다큐의 거장이자 이제 곧 정년을 앞둔 이우호 국장, '얼짱 간판 앵커'인 의리의 남자 왕종명, 탁월한 방송 능력만큼이나 뛰어난 취재력으로 국회에서 일당백이었던 김수진, 정권을 긴장시키는 굵은 특종은 물론이고 정갈한 글 솜씨가 늘 존경스러웠던 임명현 등 22명의 기자가 '삼청'이 아닌 '신천교육대'(잠실 옆 신천에 위치했기 때문)에서 브런치 만들기, 국악의 이해, 사진의 세계 등등의 수업을 꼼짝없이 듣고 있으니 말이다.       

보도국이 아닌 타 부문으로 축출된 기자들의 '유배 생활'을 떠올리면, 내 해직일기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정치부의 대표 민완기자였던 J는 상암동 신사옥의 사무 환경 조성을 담당하게 돼 가구업체를 접촉하고 다른 회사의 사옥 견학을 섭외하느라 바쁘다. <시사매거진 2580>의 간판 기자였던 S는 신규 사업 진출에 대한 타당성 조사 보고에 몇 주를 매달렸다. 탐사기획 취재에 열심이었던 H는 견학 오는 어린이들 안내 업무를 맡았는데, 방학 때는 일이 줄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는 현재 김재철 사장 구속수사 촉구 청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지부는 현재 김재철 사장 구속수사 촉구 청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C는 지자체가 기획중인 사업들을 파악하면서 협찬 딸 궁리를 해야 하고, K는 드라마 세트장 관리로 발령 나 출퇴근 버스 안에서 하루 3시간을 보낸다. A는 그나마 아무 일감도 없이 하루를 보내며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상념에 자주 빠지면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이렇게 부당전보 조치된 기자가 24명인데 그들 모두 만나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일산, 용인, 수원, 성남, 인천으로 근무지가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해고, 정직, 교육, 전보 등등의 형태로 보도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흩어진 기자가 총 53명이다. MBC를 소중히 여겼고, 일에 미쳤던 기자들이 취재와 보도라는 자기 '직(職)'에서 배제돼 떠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이 전부 해직기자라는 생각이 든다. 

MBC는 현재 '감시와 처벌'의 결정체

혹자는 죗값을 달게 받으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도 아닌 평조합원을 그것도 징계가 끝난 이들까지 추가로 교육으로 몰아내는 행태를 보복이 아니라고 볼 근거가 있을까? 보도국 기자의 3분의1을 몰아내놓고 경쟁력 제고에 최선을 다하자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뉴스데스크> 앵커이자 MBC 보도본부장 권재홍에게는 가능한 것 같다. '53명의 해직기자'에 대해 그가 한 말이다.

"머리가 뜨거운 상태이므로 연착륙을 위해서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는 현재 MBC기자들의 상황을 보면 자꾸 '디아스포라(diaspora)'를 떠올리게 된다. 타의에 의해, 명령에 의해 고국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아야 했던 유대인, 식민지 민중, 노예들의 이산(離散). 그 이산의 아픔이 오늘날 신사옥 건설단으로, 사회공헌실로, 미래전략실로, 경인지사로 흩어져 이산가족이 된 우리들의 처지로 옮겨오는 것 같다. 

한편으론 김재철 체제의 MBC야말로 '감시와 처벌'의 완벽한 구현이 아닐까 싶다. 보도국 천장에 설치된 HD급 CCTV는 그 탁월한 줌인 기능으로 기자들이 어떤 문서를 읽고 있는지까지 실시간 감시할 수 있다. 사내 인터넷망에 접속된 모든 데스크톱 컴퓨터와 개인용 노트북에는 기자들도 모르는 사이 스파이웨어가 깔려 메신저 대화록과 이메일 첨부파일까지 모조리 회사 서버로 전송됐다.        

이러니 나는 나의 해직기자 일기를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MBC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함께 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기자회장으로서 위로나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싸움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혁명가 체(Che)를 들먹이는 것도 마땅치 않고, "당장의 고초는 보내고 나면 꿈이 될 것"이라는 소설 속 구절도 허약하다. 지금 이 순간은 기형도 시인의 외침만이 가슴에 닿으리라.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해직된 박성호 MBC 기자협회장.
 해직된 박성호 MBC 기자협회장.
ⓒ MBC노동조합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박성호 기자는 MBC 기자협회장입니다.



태그:#MBC, #해직기자, #김재철, #권재홍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