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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 산본동 철쭉동산 주변에 설치된 5억짜리 김연아 동상.
 군포시 산본동 철쭉동산 주변에 설치된 5억짜리 김연아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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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시의 5억 원짜리 김연아 조형물은 편법 설계로 시공비를 부풀리는 등 혈세낭비 사업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업자가 설계와 달리 조형물을 제작한 사실을 알고도 감독 기관인 군포시가 수수방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군포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무원과 업자 간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군포시는 예산 5억2000만 원을 들여서 2010년 5월 6일부터 11월 30일까지 7개월간 산본동 철쭉동산 주변에 김연아 조형물 설치공사를 했다. 이 사업의 취지는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조형물을 설치해 도시 이미지와 거리의 품격을 높이면서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불법 조형물 때문에 오히려 자긍심이 훼손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군포시 비리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이하 '군포비리대책위')는 김연아 조형물에 대한 비리 진상규명과 부당이익 환수를 주장하며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내막 1] "4억짜리 낙찰, 로또인 줄 알았는데..."

시민혈세 5억2000만원을 들여서 설치된 김연아 조형물이 혈세낭비 사업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민혈세 5억2000만원을 들여서 설치된 김연아 조형물이 혈세낭비 사업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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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는 2009년 8월 김연아 조형물 실시설계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4500만 원에 용역을 줬다. 설계를 맡은 N사는 경관조명 설계업체이고, 디자인을 맡은 S사는 조명 디자인 업체다. 금속조형물을 만들 수 있는 기술 여건을 갖추지 못한 업체들이다.

그래서 S대 시간강사였던 조각가 권아무개(47)씨가 이 사업에 참여했다. 권씨는 15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N사가 일감(조형물)을 준다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군포시는 김연아 조형물 실시설계 용역에 참여한 권씨를 마스터 플래너(MP, 총괄계획가)로 위촉했다. 권씨는 김연아 조형물 사업의 총연출자인 셈이다.

군포시는 권씨가 주도한 실시설계를 납품받아서 2010년 4월 13일 김연아 조형물(공사명-철쭉동산 경관조성 조형물 설치공사) 입찰을 공고했다. 김연아 조형물 설치 공사는 4억900만 원을 써낸 J사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취재 결과 J사는 공장도 없이 10평 남짓한 사무실 하나로 운영하며, 방음벽, 울타리, 가드레일 등을 주로 시공하는 소규모 금속창호업체였다.

J사는 군포시로부터 4억1200만 원(추가공사비 400만 원 포함)의 시공비를 받았다. J사는 김연아 조형물의 핵심인 '지구형상'과 '김연아 동상' 설치를 마스터 플래너인 권씨에게 1억6000만 원에 넘겨주었다.

이와 관련 군포비리대책위 관계자는 지난 14일 "J사가 시공한 것은 터파기와 원형기둥뿐으로 시공비는 2000만 원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J사는 아무리 못해도 1억 원 이상의 이윤을 남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J사 대표는 지난 12일 "(김연아 조형물을) 낙찰받고는 로또에 당첨됐다고 좋아했지만 (정산을 마친 지금은) 앞으로 남고 뒤로 밑졌다"면서 "(시공을 하면서) 속상한 적이 많아 술을 많이 마셨다. (기자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내막 2] 다른 업체 배제하려고 '황당 설계' 했나

김연아 조형물 중에서 '지구형상', 지구형상은 주조로 제작하도록 디자인 설계됐지만 실제로는 딴판으로 시공됐다.
 김연아 조형물 중에서 '지구형상', 지구형상은 주조로 제작하도록 디자인 설계됐지만 실제로는 딴판으로 시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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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조형물은 원형기둥(높이 6m), 지구형상(높이 2.5m), 김연아 동상(높이 1.8m)로 설계됐다. 이중에서 '지구형상'과 '김연아 동상'은 주조(鑄造) 기법으로 제작하도록 설계했는데, 거푸집에 스테인리스 쇳물을 부어 설계된 형태의 조형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우선 '지구형상'은 스테인리스 쇳물을 부어 직경 50Ø(50mm), 두께 2t(2mm), 지름 2.5m짜리 스테인리스 파이프 15개가 지구 형태가 되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복수의 조각가 및 업계 관계자들은 권씨가 실시 설계한 주조 방식으로는 지구형상을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시공사인 J사는 결국 권씨에게 1억6000만 원을 주고 '지구형상'과 '김연아 동상'을 맡겼다. 김연아 조형물을 디자인하고 설계한 권씨는 마스터 플래너로서 준공 승인이란 칼자루를 쥐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권씨 역시 실시설계대로 '지구형상'을 만들지 못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권씨는 주조가 아닌 '벤딩' 방식으로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실시설계 때 채택한 지구형상 주조 제작비는 1억3100만 원이었다. 그런데 벤딩 방식으로 제작할 때에는 1000만 원 이하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철(77) 군포비리대책위 상임고문은 "여러 업체에서 견적을 받아보니 지구형상을 벤딩으로 제작하면 700만 원 정도 들어가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주장했다.

김연아 청동상 또한 디자인 설계와 딴판으로 제작 시공됐다.
 김연아 청동상 또한 디자인 설계와 딴판으로 제작 시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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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청동상의 실시설계도 지구형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시설계에 따르면 1.8m 높이의 청동상을 2mm 두께의 주조로 만들도록 디자인 설계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mm의 두께로 그 같은 청동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조각가인 김동우(63) 세종대 회화과 교수는 14일 "두께 2mm로는 1.8m 높이의 김연아 청동상을 절대 제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동상 제조업체 대표인 S씨도 "(김연아 청동상을) 2mm 두께로 설계했다면 그것은 제조 불가능한 설계"라면서 "30년간 청동상을 제작했는데 (1.8m 높이의 김연아 청동상을) 2mm로 만들 수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최소한 4~5mm 두께는 되어야 제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권씨도 지난 15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지구형상'과 '김연아 동상'이 실시설계와 딴판으로 제작된 사실을 시인했다. 실시설계 단계에서부터 마스터 플래너로 참여했던 그는 "군포시가 말도 안 되는 실시설계를 입찰에 부쳤다"면서 "나는 아이디어만 주었고 실시설계는 S사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권씨는 지난달 16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직접 마스터플랜을 짰고 실시설계도 직접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시설계 용역업체인 S사 관계자는 17일 통화에서 "실시설계는 권씨가 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군포시가 4500만 원에 용역을 주어서 실시 설계된 '지구형상'과 '김연아 동상'은 제작 불가능하도록 황당하게 설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군포비리대책위측은 다른 업체나 조각가가 '김연아 조형물'에 손대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내막 3] 조각 작품은 설계변경 안 해도 된다?

4500만원짜리 실시설계는 다른 업자와 조각가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작성된 황당한 설계였다. 김연아 동상을 두께(t) 2mm(상단 붉은 괄호 한)로, 지구형상을 스테인리스 주조로 직경 50mm 등의(좌측 붉은 괄호 안) 치수로 제작하도록 설계했는데 이 설계대로는 제작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졋다.
 4500만원짜리 실시설계는 다른 업자와 조각가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작성된 황당한 설계였다. 김연아 동상을 두께(t) 2mm(상단 붉은 괄호 한)로, 지구형상을 스테인리스 주조로 직경 50mm 등의(좌측 붉은 괄호 안) 치수로 제작하도록 설계했는데 이 설계대로는 제작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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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와 다르게 시공하려면 설계를 변경해야 한다. 설계변경을 통해 공사비가 남으면 반납하고, 부족하면 설계변경을 통해 추가공사비를 받아낸다. 하지만 권씨는 설계변경 절차를 밟지 않았고, 그 덕분에 상당한 액수를 챙겼다.

시공업체인 J사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J사 대표는 지난 12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지구형상과 김연아 동상은) 권 교수가 설계하고 디자인했기 때문에 권 교수가 하는 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면서 "권 교수는 하청을 맡은 '을'이었지만 실제로는 준공 승인을 쥐고 있는 '갑'이었고, 군포시도 (마스터 플래너인) 권 교수에게 맡겨야 설계대로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공사 감독 공무원이었던 이아무개씨도 '지구형상'과 '김연아 동상'이 설계와 다르게 제작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김연아 조형물은) 작품이고, 작가(권씨)의 고유영역이 있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씨 역시 기자와 한 통화에서 "지구형상과 김연아 동상은 순수조각이기 때문에 (설계변경 절차를 밟지 않고) 제작했다"고 말했다.

군포시가 김연아 조형물 공사에서 설계변경을 아예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감독 공무원 이씨는 2010년 11월15일 김윤주 군포시장에게 올린 감독보고서를 통해 원형기둥의 설계변경을 하는 데 필요한 추가공사비 400만 원을 요청해서 시공사에 줬다. 군포시는 설계변경에 의한 공사비 반납은 외면하면서도 업자를 위해서는 설계변경으로 추가공사비를 받게 한 것이다.

김연아 조형물 감독공무원이 김윤주 군포시장에게 올린 설계변경 감독보고서.
 김연아 조형물 감독공무원이 김윤주 군포시장에게 올린 설계변경 감독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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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막 4] 1억짜리를 5억짜리로 부풀린 부부 조각가

군포시 기획감사실이 작성한 예산내역서 작성 원칙은 결국 김연아 조형물이 5억짜리로 둔갑하는데 허점이 됐다.
 군포시 기획감사실이 작성한 예산내역서 작성 원칙은 결국 김연아 조형물이 5억짜리로 둔갑하는데 허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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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이기도 한 '조형물'의 적정 가격은 산출이 어렵다. '김연아 인물상'과 '지구형상' 조형물 가격은 조달청 가격정보나 시중물가정보에도 없기 때문에 예산내역서 작성이 어렵다. 

김연아 조형물 사업을 주관한 군포시 기획감사실은 '과업지시서'에서 이런 경우에 "3개 이상의 생산자 및 제조업체의 견적서를 받아 그중 낮은 가격으로 적용하여 제출받은 견적서를 발주청에 제출한다"고 예산내역서 작성 원칙을 밝혔다.

이에 따라 실시설계 단계에서 3개의 업체가 견적서를 제출했고 군포시는 그 중 가장 낮은 가격을 제출한 A조형연구소의 견적서를 채택했다. 그런데 기자의 확인 결과 이 연구소의 대표는 권씨 부인이었다. 남편이 주도해서 제작이 불가능한 실시설계를 하고, 그의 부인은 이에 맞춰서 가장 낮은 가격인 3억3660만 원의 견적서를 제출한 것이다.

군포시가 채택한 A조형연구소 견적서. 이 견적를 만든 연구소 대표는 마스터 플래너인 권씨의 부인으로 밝혀졌다.
 군포시가 채택한 A조형연구소 견적서. 이 견적를 만든 연구소 대표는 마스터 플래너인 권씨의 부인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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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조형물 설치공사에는 설계용역비 4500만 원, 김연아 조형물 4억1200만 원, 조명 3800만 원, 조경과 전기공사에 2500만 원을 합쳐 5억2000만 원의 시민혈세가 들어갔다.

그러나, 이상철 군포비리대책위 상임고문은 "양심 있는 조각가와 업자들은 김연아 조형물을 1억 원 이하로도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면서 "조각가와 업체에게 견적을 받아보니 6000만 원 정도면 제작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연아 조형물을 주관한 군포시 김아무개 팀장은 지난 12일 "권 교수와 (A조형연구소 대표 김씨가) 부부인지 몰랐다"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김연아 조형물을) 추진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상철 군포비리대책위 상임고문은 14일 "권씨와 용역업체가 시공 불가능하도록 설계한 것은, (다른 업체의) 입찰을 제한하고 낙찰받은 시공업체를 좌지우지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라면서 "군포시가 공모하거나 개입하지 않았으면 이런 실시설계와 입찰은 일어날 수 없다"면서 비리의혹을 제기했다.

김동우 세종대 회화과 교수도 17일 "일부 비양심적인 조각가와 부패한 공무원이 거래하는 조형물 암시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서 "부패한 조형물 시장에 뛰어 든 조각가는 브로커이지 작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송성영(54) 군포비리대책위 상임대표는 "김연아 조형물 비리 의혹이 밝혀지도록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태그:#김연아 동상, #군포시, #조형물, #조각가,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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