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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노동위원회 위원장 종호 스님. 조계종은 지난달 27일 불교계 처음으로 노동전문기구 노동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조계종 노동위원회 위원장 종호 스님. 조계종은 지난달 27일 불교계 처음으로 노동전문기구 노동위원회를 출범시켰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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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정권과 불교계는 끝없이 갈등을 겪었다. 종교 편향 논란을 시작으로 4대강 사업, 템플스테이 예산 문제로 크게 충돌했다. 최근에는 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건에 조계종 주요 스님들의 이름이 나오면서 또 한 번 얼굴을 붉혔다.

무엇보다 정권의 '불통'하는 태도가 갈등 반복의 원인으로 지적 받는다. 이에 불교계는 도법 스님을 위원장으로 한 '화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해 나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권의 또 다른 '불통'의 상징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에 법복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달 27일 불교계 최초의 노동문제 전문기구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극심해진 노사갈등과 비정규직 문제 등 우리 사회 최대 현안인 노동문제를 불교적 해법으로 풀어가겠다는 의도다.

위원장은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집행위원장인 종호 스님이 맡았다. 5명의 스님 위원과 함께 유덕상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권승복 공무원노조 지도위원, 임두혁 전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 백신옥 변호사 등 노동문제 전문가들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다.

노동위원회는 출범 직후 서울 대한문 앞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했다. 이어서 1700일 넘게 투쟁 중인 재능교육 학습지 노조를 찾아갔다. 지난달 29일에는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가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노동자와 함께하는 시민초청 무차대회'에 참여해 노동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오는 17일부터는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매일 1000배 기도를 100일 동안 이어가는 고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단순히 이름에만 '노동'을 걸어놓지 않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화쟁위에서 노동위로... "종교 본연의 역할할 것"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조계종 노동위원장 종호 스님을 만났다. 그가 집행위원장으로 몸담고 있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개혁적 성향의 불교단체다. 노동위원회가 과거 사회갈등 조율 역할을 했던 화쟁위원회에서 한 발짝 더 나가, 보다 약자 편에서 적극 활동을 펼칠 것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종호 스님은 조계종 노동위원회 출범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종단의 이미지나 그런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불교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 발생한 도박 파문 등 조계종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모면하기 위한 일종의 '이미지 개선용'이라는 비판을 일축한 것이다.

그밖에도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불교계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는 일각의 해석에 종호 스님은 "정치적 의도는 없다, 다만 노동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후보를 지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노동위원회 출범을 놓고 이렇게 외부요인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종단 내부적으로는 노동 문제에 '조계종 역할론'이 꾸준히 제기 됐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사회문제에 불교적 대안 마련을 '핵심과제'로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이후 불교계는 지난 2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제를 지냈고 3월에는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방문하기도 했다. 이 자리는 쌍용차노동자들과 자승 총무원장 스님의 면담자리로 이어졌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노동위원회가 출범하기에 이른다.

종호 스님은 이날 인터뷰에서 "신도들도 노동위원회를 생소하게 느낀다, 좌익이냐는 질문도 받은 적 있다"며 "하지만 종교가 사회문제에 나서는 것은 정치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종교인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문제는 국민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문제"라며 "먼저 정부와 기업,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성의를 보여서 노동자 문제 해결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종호 스님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명박 정권은 즉흥적, 후안무치 정권"

조계종 노동위원회 위원장 종호 스님.
 조계종 노동위원회 위원장 종호 스님.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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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조계종 노동위원회 출범을 놓고 불교계가 대선 정국에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있다.
"노동문제를 대변할 수 있는 후보를 지지하고 찍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것까지 정치적 행위라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소리다. 하지만 조계종 노동위원회에서 이 사람을 지지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위원회의 공신력과 중재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내부적으로는 노동 문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후보가 있다면 당연히 지지해야겠다. 정치인들을 만나야겠지만 그것을 목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종교가 사회문제에 나서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적이지 않다는 이유인데, 그런 비판에 부담은 없나?
"부담이 전혀 없진 않다. 하지만 그 어려운 현장을 찾아가면 불교계를 비롯해 이웃종교에 요구하는 분들이 많다. 종교인들이 나서서 이슈를 만드는 건 아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종교인 본연의 위치에서 종교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종교 본연의 일이고 노동자의 요구다. 사실 종교인들이 그런 현장을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기회가 된다면 노동자들과 함께 잠을 자고 싶다. 추워서 죽고, 더워서 죽는 자리에서 아픔을 나누고 싶다."

- 최근 팔당유기농단지 문제에 천주교 측이 나서서 적극 중재해 결과를 만들어 낸 바 있다. 노동위원회가 노동현안 문제에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도 있나?
"그런 역할이 주어진다면 해야 한다. 투쟁이 중요한 게 아니라 대화가 중요하다. 싸움은 별거 아니다. 어떻게 화해를 할 수 있냐가 주안점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 대화하면 노동문제도 충분히 풀릴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불교계가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정권과 끊임없이 대립해 왔는데, 이번 노동위원회도 정권의 위치에서 보면 껄끄럽게 느낄 듯하다.
"노동위원회를 만든 취지와 다른 해석들이 많이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불교가 노동위원회를 만들어서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정권은 '고소영 정권'으로 끊임없이 불교와 대립해왔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정권과 문제를 다시 이야기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명박 정권의 태생 자체가 종교편향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 현 정권에 대한 스님의 평가는 어떤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보며 도대체 왜 갔을까 의문이 들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국가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너무나 즉흥적이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닌가? 4대강 사업을 60%가 넘는 국민들이 반대했다. 일단 강 하나만 먼저 하자고 시민사회도 제안했지만 그냥 밀어붙였다. 이번 여름에 발생한 녹조현상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야말로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닥쳤다. 정말 불통과 후안무치의 정권이다."

-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등이 연일 '귀족노조' 발언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노동3권을 무시한 위헌적 발언이라고 지적하는데 스님 생각은 어떤가?
"소득이 높은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건 분명 문제다. 임금과 일자리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내부의 문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많이 받는다고 비판할 것은 아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나누고 고통을 감내해야 해법이 나온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정규직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든다고 반대해서는 안 된다."

- 쌍용차 문제를 비롯해서 노동 문제가 단순히 현 정권의 문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명확히 이야기 하면 쌍용차 노동자들의 해고는 이미 지난 정권에서 예고됐다.
"동의한다. 우리 사회는 무한성장을 고집하고 있다. 대량생산에 대량소비 방식을 멈출 때가 됐다. 이제 그런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게 세계적으로 증명됐다. 많은 나라들이 생태적이고 환경적인 산업으로 방향을 바꾼다. 독일과 일본의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2만 불 시대'에도 부를 나누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데, 3만 불이 된다고 나눔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최근 발생한 용역업체의 폭력사태를 봐라. 사측이 용역업체에 수십억 원의 비용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 돈을 왜 노동자들에게는 못 쓰나. 돈 몇 푼을 아끼려고 노동자들을 폭행했다. 우리 시대가 바뀌지 않는다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다."

"노동문제는 우리 모두 문제, 피해갈 수 없다"

- 최근 도박 파문 등 조계종을 향한 시선이 따갑다. 노동위원회가 그런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라는 지적에 어떻게 생각하나?
"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종단의 이미지나 그런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불교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다. 종단에서 불미스러웠던 일들이 용서를 받고 다시 대중들이 불교를 따뜻하게 느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노동위원회 했다고 금방 풀어지고 할 일이 아니다. 물론 노동위원회가 열심히 하면 국민들이 잘못했던 일을 용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점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노동전문 기관이 생겼다. 내부의 반응은 어떤가?
"신도들도 노동위원회라는 게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좌익에 물들었냐'는 질문도 받은 적 있다. 실제로 그런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다. 불교는 중생의 아픔 때문에 나도 아픈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관계를 맺는다. '너와 나'가 아니고 '하나'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동문제는 노동위원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지만 다만 노동위원회가 조금 더 많이 고민하고 먼저 나서서 하는 것뿐이다. 노동의 문제는 어느 순간 우리 자기 자신의 일로 다가선다. 내 문제, 내 자녀, 내 손자들이 노동자이고,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문제는 모든 국민이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 노동위원회가 특별히 쌍용차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
"22명이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죽음만큼은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다 양보를 해도 사람 목숨만큼은 지켜야 한다. 쌍용차 문제의 해결은 결국 모든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해고자 전원이 다 복직되는 것이다. 전원복직이 문제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먼저 정부와 기업,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성의를 보여서 노동자 문제 해결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 이웃종교들과 함께 할 계획이 있나?
"오는 17일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천도교 5대 종단의 종교인 33인이 쌍용차문제해결을 위한 호소문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주요 정치인들과 전경련 같은 곳을 방문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기도 할 생각이다. 우리 종교인이나 시민단체는 사실 무력적인 힘이 없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약을 지어줘도 그 약을 먹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다. 우리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도 그걸 받는 건 정부의 몫이다."

- 20일 국회에서 쌍용차 사태 관련 청문회 열린다. 의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국회의원들이 노동자의 시선으로 문제를 봤으면 좋겠다. 22명이나 죽고 노숙을 하며 투쟁하는 노동자, 낮에는 투쟁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뛰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봤으면 좋겠다. 이 문제에 물타기를 하고 변죽을 올리고 침소봉대하는 자세가 있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와 국민의 편에서 서서 청문회를 잘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동자가 부처고 보살이다.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태그:#조계종, #노동위원회, #종호, #쌍용자동차,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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