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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0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꿈동산어린이집에서 굿네이버스 관계자들이 유괴 및 성범죄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꿈동산어린이집에서 굿네이버스 관계자들이 유괴 및 성범죄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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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나주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다시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밤에 자다가 갑자기 이불에 휩싸여 낯선 곳에 버려진 아이를 생각한다면, 누구라도 가슴이 먹먹해지며 분노에 휩싸일 것이다. 흥분한 일부 사람들은 아이 엄마가 게임 중독에 빠져서 늦은 밤 11시에 아이를 두고 PC방에 갔다며 비난한다. 그것도 모자라, 아이 엄마와 범인인 고OO이 평소 PC방에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며 일종의 음모론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만 두고 온 것이 아니라 아빠도 집에 있었는데도 당시 집에 있던 아빠보다 밖에 있던 엄마에게 비난이 집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늦게 들어왔다면 지금처럼 비난이 쏟아졌을까? 혹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안방에서 자고 있다가 아이가 납치당했다면, 이번에는 잠귀가 어두운 엄마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하지 않았을까? 거두절미하고 누구보다도 가족의 조력이 필요한 이때, 피해자인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의 엄마가 이렇게 비난받는 것이 좋은 일일까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아이를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은 엄마 혼자만의 노력으론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아동 성폭력의 발생 책임을 온전히 엄마에게 돌리며, 엄마를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문제의 핵심을 비켜 나가고 있다.

안 그래도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직장맘들은 최근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아이 양육을 위해 직장을 포기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저출산이 문제이니 아이를 많이 낳으라며 양육비를 지원하면서, 한편에서는 아이 양육의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부담시키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여자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묻기 전에, 과연 이 사회가 아이를 낳아서 키울만한 사회인가를 질문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본다.

사형제의 부활... '공포정치'가 성폭력 끝낼 수 있을까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 거리에 불심검문을 위해 배치된 경찰들이 거리를 살피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 거리에 불심검문을 위해 배치된 경찰들이 거리를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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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동 성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데도 경찰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구시대의 진부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난 3일 경찰이 발표한 성폭력방지 종합대책이라는 것은 불심검문을 부활하고 전담팀을 구성하며, 아동포르노대책팀을 설치하여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의 비장한 발표에도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대책이 가지는 시대착오성과 무능함 때문일 것이다. 마치 오래된 흑백TV를 통해서 과거 노태우 정권이 시행한 '범죄와의 전쟁'을 다시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과거 '범죄와의 전쟁'이 노동 인권 및 민주화 요구 등에서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정책으로 악용되었듯이, 현재 성폭력방지종합대책 또한 사형제 부활 등 인권문제를 악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경찰은 성폭력범죄자를 잡기 위해 불심검문을 한다고 하는데,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자처럼 불온서적을 소지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과연 무슨 방법으로 성폭력범죄자를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불심검문을 통해서 검거할 수 있는 성폭력범죄자는 과거 범죄전력이 있는 재범자 정도이며 초범자의 경우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성폭력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매우 신고율이 낮다. 2010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전국성폭력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시 경찰 신고율은 강간의 경우 12.3%, 심각한 성추행의 경우는 5.7%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신고되지 않은 90% 이상의 성폭력범죄자가 법망에 잡히지 않는 것이 현실인데, 불심검문을 통해서 성폭력범죄자를 검거한다는 방안은 사실상 실효성이 별로 없다. 지난 2009년 벌어졌던 아동 성폭력 사건은 온 국민을 분노케 했던 참혹한 사건이었지만, 정작 가해자였던 조두순은 그 사건 이전에 아무런 범죄 경력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고 보면 과연 불심검문이라는 것이 정말 성폭력범죄를 단속하기 위한 것인지, 정부의 형벌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최근 정부는 한 술 더 떠 사형제 부활에 대한 논의를 슬그머니 끄집어내며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추세이다. 과연 현재 한국의 성폭력 범죄 정책이 강력한 처벌책이 없어서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난 2년 사이 분노에 찬 여론을 등에 업고 충분한 검토나 준비과정도 없이 전자발찌, 성충동 약물치료요법(화학적 거세) 등 온갖 극단적인 가해자 처벌정책이 우후죽순으로 입법화됐다.

그럼에도 최근 화학적 거세도 모자라 물리적 거세를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으며,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형제 부활도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강경일변도 정책에도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버젓이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으며, 정부는 이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있는 실정이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 및 왜곡된 성문화를 바꾸는 것 없이, 강력한 가해자 처벌정책만을 마구잡이식으로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질문하게 되는 시점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이름 악용해 '인권' 후퇴시키지 말아야

'성폭력범죄자 예방 및 약물치료에 관한 공청회'가 지난 11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려 배규한 청소년보호위원장(국민대 사회학과 교수,가운데)이 성폭력범죄 예방을 위한 사회학적 접근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성폭력범죄자 예방 및 약물치료에 관한 공청회'가 지난 11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려 배규한 청소년보호위원장(국민대 사회학과 교수,가운데)이 성폭력범죄 예방을 위한 사회학적 접근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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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은 15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서 실질적으로는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단지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을 찾고자 일부 성폭력범죄자에게 사형을 집행한다면 15년 동안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했던 일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만약 일벌백계로 삼기 위해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고 해도 이후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는 더 이상 도입할 수 있는 강력한 처벌책이 바닥난 상황에서, 사형을 남발하는 것 이외 별다른 대안이 없을 수도 있다.

정부는 사형제 부활을 내세우면서 성폭력 범죄를 근절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형을 집행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성폭력 피해자의 이름으로 사형을 부활하는 것이 정말로 성폭력 피해자가 바라는 일일까?

얼마 전 상담하다가 알게 된 한 성폭력 사건은 1심에서는 1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되었는데 2심에 가서 무죄가 되는 바람에, 오히려 기고만장해진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했다고 한다.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는 증거 불충분으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가해자에게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아니면 가해자가 번듯한 직장인이라거나 사회적 공헌을 했다는 이유로 터무니없이 가해자의 양형이 낮아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정말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현실에서 법망을 빠져나가거나 제대로 단죄되고 있지 못한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통해 성폭력에 대한 전반적인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지, 일부 성폭력 범죄자에게만 본보기식 과잉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이름으로 집행된 사형은 성폭력범죄자 뿐만 아니라 살인범, 방화범을 사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공안사범, 노조활동가 등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는데 악용될 수도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높이는 일은 한국 사회 다른 인권을 보호하는 일과 대립하는 일이 아니다. 문제는 성폭력 피해자의 이름을 악용하여 한국 사회의 인권을 후퇴시키려고 하는 정부 및 정치권의 근시안적인 관점의 협소함이다. 발등의 불을 끄는 식으로 강력한 처벌정책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성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태그:#나주 초등생 성폭력, #사형제 부활, #화학적 거세, #아동 성폭력, #공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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