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실시간뉴스 [오마이포토] 그룹 S, '기분 좋은 떨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1일 국회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질문이 열린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인혁당 사건'에 대한 1975년 대법원의 판결에 정당성을 부여한 게 논란이 되자, 다시 '인혁당 관련자들이 (사건이 조작된 게 아니라고) 증언하고 있다'고 논거를 댔지만, 역사에 대한 공부 부족만 드러내고 말았다.

박 후보는 1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으로 가면서 기자들과 만나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발언에 논란이 일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어제(10일) 말한 대로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답했다.

박 후보의 이날 발언은 하루 전 자신의 인혁당 관련 발언이 논란이 된 상황에서 자신의 발언에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성격으로 나왔다. 박 후보는 하루 전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한 인터뷰에서 인혁당 사건 사과 여부에 대해 "그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또 어떤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답을 제가 한번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박 후보가 말하는 '두 번의 대법원 판결'은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한 1975년의 판결과, 32년 뒤인 2007년 유가족 등이 제기한 재심에서 서울중앙지법이 당시 관련자들의 무죄와 국가배상을 판결한 일이다. 국제적으로도 '사법살인'이라고 평가되는 유신상황에서의 재판과 민주화 이후의 재판에 동등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선 후보인 박 후보의 역사인식이 퇴행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박 후보는 '인혁당 사건이 조작된 게 아니다'라는 일각의 주장을 부각시켜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가 말한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는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에는 대표적으로 박범진 전 신한국당 의원이 있는데 그는 "나 자신이 인혁당에 입당해 활동했다. 그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인혁당 관련자는 아니지만 인혁당을 "4·19 이후 최초의 좌익운동"으로 평가하면서 인혁당의 실재를 주장하고 있다.

'인혁당 실재' 주장은 64년 인혁당, 74년 '사법살인'과 연관 없어

얼핏 보면 박 후보가 인혁당의 실재를 논거로 반격에 나선 것처럼 보이지만, 박 후보의 반론은 논점을 벗어났다. 박 후보가 '두 번의 대법원 판결'을 언급한 인혁당 사건은 1974년의 2차 인혁당 사건이고, '최근 여러 증언이 나오고 있다'고 한 인혁당 사건은 1964년의 1차 인혁당 사건이다. 

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은 1964년 8월 중앙정보부의 발표로 시작돼 1965년 1월 도예종, 양춘우 등만 징역 3년과 2년이, 나머지 11명은 무죄 판결이 나왔다. 검찰이 항소해 그해 5월 13명 모두에게 유죄가 선고됐지만, 수사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 등 검사 3명이 '기소할 가치가 없다'고 사표를 냈고, 결국 구속마감일에 숙직검사의 서명으로 기소장이 작성됐다는 일화는 무리한 사건 조작 정황을 뒷받침한다.

2차 인혁당 사건은 1974년 4월의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최근 박 후보의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중앙정보부는 '인혁당이 재건됐고 민청학련이 이들의 배후조종을 받고 있다'고 발표했고, 180명이 군사법원에 기소됐다. 1975년 4월 대법원은 도예종 등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7명에 사형을 확정했고, 사형은 18시간 만에 집행됐다.

그러나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이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결론냈고, 중앙정보부의 사건 관련 보고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도 보고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2007년 2차 인혁당 사건 유가족과 관련자들이 낸 재심청구에서 1975년의 판결은 고문과 조작에 의한 것이었고, 사건 관련자들은 무죄라는 판결이 나왔다.

1·2차 인혁당 구분 못한듯... '사법살인' 몰이해도 문제

 '유신, 그 고통의 기억' 사진전이 8월 27일부터 오는 31일까지 국회의원회관 신관 1층에서 민주통합당 의원들과 민주평화국민연대 공동주최로 열리고 있다. 사진전에는 정수장학회, 김대중 납치사건, 민청학련사건, 인혁당사건, 장준하 의문사 관련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1974년의 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 '박정희 유신독재 하에서 일어난 사법살인에 대해 박정희의 딸이자 새누리당 대선 후보인 박 후보가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은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최근 박 후보의 광폭행보 때문에 그 가능성이 자주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 후보는 '두 개의 판결'을 근거로 대면서 이를 회피했고, 비판에 직면하자 다시 1964년의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 '그 실재를 증언하는 이들이 있다'고 반박한 것.

2차 인혁당 사건의 사법살인과 1차 인혁당의 실재 여부는 전혀 다른 문제다. 2차 인혁당 사건의 본질은 정권이 체제 유지를 위해 고문과 증거 조작으로 사건을 만들어내고, 독재정권 하의 사법부가 용인했다는 점에 있지, 1차 인혁당이 실제로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1차 인혁당의 실재를 주장하는 안병직 교수도 2차 인혁당 결성과 활동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혁당 관련자 7명과 민청학련 관련자 7명에 사형이 선고된 데에 "이 같은 형량은 사법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저서 <보수가 이끌다-한국 민주주의 기원과 미래>)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후보가 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1차 인혁당의 실재 가능성을 언급하며 반론한 것은, 10년을 간격으로 일어난 1·2차 인혁당 사건을 같은 사건으로 오인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국제법학자회의가 '세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기도 한 2차 인혁당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외면한 결과이기도 하다.

헌법재판관 후보자들 "뒤의 판결이 효력 있는 것"

 민주통합당 박범계 의원(사진 오른쪽)이 10일 오전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김창종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 '사법살인'이라고 불린 인혁당 사건 8인의 사형집행을 예로들며 사형제에 대한 입장을 후보자에게 묻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후보가 2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 '두 가지의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두 판결 모두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도 사법체계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경우다. 

김이수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1975년의 판결과 2007년의 판결 두 가지 판결 중 어느 판결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최종적인 판결이 판결로서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창종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10일 인사청문회에서 "(대법원 판결은 2개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재심이라는 것은 (앞의 것이) 잘못돼 뒤의 것으로 수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모바일앱 홍보 배너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법조계 취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법은 어렵네요.더보기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4 OhmyNews오탈자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