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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운동장이 휑하니 비어있다. 더위도 한풀 꺾인 데다 점심시간인데도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고작 10분짜리 쉬는 시간에도 헐레벌떡 뛰어나와 놀다 시작종에 맞춰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많았고, 점심시간이면 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로 운동장은 늘 만원이었다.

점심을 먹고 급식소를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뒤따라 가봤다. 골대 앞에서 페널티킥 골내기를 하는 아이들과 운동장 한쪽 구석에서 야구 글러브와 공을 들고 캐치볼 하는 아이들 몇몇이 전부일 뿐, 운동장은 썰렁하다. 볕 좋은 날이면 잘 가꿔진 산책로를 따라 친구들과 함께 거니는 얘들이 제법 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체 다 어디로 간 걸까.

점심을 먹어도 허기가 남았는지 매점에 가는 아이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교실로 들어간다. 교실은 책상이 삐뚤빼뚤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아이들은 각자 자기 책상에 앉아 무언가에 몰입되어 있다. 가까이 가보니 그들의 손엔 하나같이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없는 얘들은 화면이 넓은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를 중심으로 왁자지껄 모여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동완(가명)이도, 자칭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전문가'인 정빈(가명)이도, 농구광인 광호(가명)도 모두 각자 스마트폰 게임에 푹 빠져있다. 스마트폰만 없었다면 점심을 먹자마자 운동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뛰노느라 교복이 땀에 축축하게 젖었을 아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스마트폰 게임을 하기 위해 밥 먹는 시간마저 아끼고 있는 거다.

학교에서 요즘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면? 둘 중 하나다.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등하교할 때 버스 안에서, 길을 걸으면서도 손에는 어김없이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하긴 아침에 잠에서 깨어 충전된 스마트폰을 켜 간밤에 온 문자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이미 생활의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데다 학생인권조례가 본격 시행되면서 학교가 아이들의 스마트폰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기는 어렵게 됐다. 학교와 학원, 독서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순례하듯 다녀야하는 아이들의 일상은 웬만한 직장인의 하루보다 바쁜 탓이다. 이른바 '2G폰'이 스마트폰으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에서 '모래알' 가족끼리의 유일한 연락 수단이다.

기술의 발달로 가격이 내린 탓인지, 아니면 현란한 광고의 힘인지 근래 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됐다. 불과 한두 해 사이에 나타난 현상으로, 인터넷 보급률에 이어 스마트폰 확산 속도 역시 세계 1, 2위를 다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전화로만 사용하거나 이름 그대로 '스마트'하게 활용하는 아이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혹자는 '잘 만 활용하면 최고의 학습 도구'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지만, 한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들의 과잉 의존은 되레 공부를 방해하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학생인권조례에서 스마트폰 소지와 사용 관련 조항만큼은 삭제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의 부작용에 대한 학교의 우려는 딱 거기까지였다. 자칫 공부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서 당최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 줄 모른다는 것, 곧, 한데 모여 몸을 움직여 하는 놀이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얼레를 감으며 연을 한 번이라도 날려봤는지, 팽이치기, 자치기, 비석치기, 아니 또래 친구들과 함께 그 흔한 닭싸움과 구슬치기라도 직접 해본 적이 있는지를. 놀랍게도 모두가 교과서를 통해 들어본 적은 있어도 직접 경험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마치 그런 것들을 왕조시대 전통 풍습인 양 여기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선생님, 스마트폰에 '구슬치기 앱'이 있어 해본 적은 있어요. 스마트폰만 켜면 다 경험할 수 있고 훨씬 재미도 있는데, 굳이 번거롭게 모이고 만들고 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모일 시간도, 공간도, 놀 아이들도 없어요. 다 아시잖아요. 뭘, 새삼스럽게..."

아이들에게 유일하다시피 한 놀이는 컴퓨터 게임이고, 그밖에는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스마트폰의 확산은 이를 더욱 부추겼고, 자극적이고 다양한 게임의 개발과 보급은 아이들의 스마트폰 소유욕에 다시 불을 지피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이들 말마따나 함께 규칙을 정하고, 직접 손으로 만들어 즐기는 놀이는 이제 교과서에서나 배울 수 있는 '지식'이 됐다.

학교마다 연중 가장 큰 행사인 체육대회도 예전만 못하다. 남학교조차 씨름이나 배구 같은 건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축구나 농구, 족구 같은 종목조차 몇몇 동아리 아이들의 몫일 뿐 별 인기가 없다. 운동장에 인조 잔디가 깔린 뒤로는 체육대회의 상징과도 같았던 줄다리기조차 하기 어렵게 됐다.

명색이 체육대회인데, 달리기를 제외하면 OX 퀴즈나 복불복 게임 같은 놀 거리 위주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다. 운동이든 뭐든 땀 흘리는 것 자체가 싫다는 듯. 그나마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늘이 드리워진 스탠드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할 뿐, 학급별로 박수와 함성을 보내며 응원하는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주는 응원상은 응원을 열심히 한 학급에 주는 게 아니라, 운동장 뒷정리를 하라는 의미에서 주는 '봉사상'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오죽하면 정부가 난데없이 교육과정에 '학교 스포츠'라는 과목을 끼워넣고 아이들더러 밖에 나가 놀라고, 뛰라고, 땀을 흘리라고 강제하는 지경이 되었을까.

아이들이 체육대회를 기다리는 이유는 딱 하나, 하루 종일 아무런 눈치 안 보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라고 주저함 없이 말한다. 한 담임교사가 어느 아이와 상담을 하면서, 자녀로서 부모님께 가장 바라는 걸 한 가지만 말해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적었더란다. "원 없이 스마트폰을 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자녀가 고작 한둘인 핵가족 시대에 아이들이 가정 내에서 어울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다. 이는 곧 학교라는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간만 덩그러니 주어진다고 저절로 해결될 수는 없다. 그곳엔 아이들이 몸을 서로 부대끼며 땀 흘릴 수 있는 놀이가 있어야 한다.

함께 어울릴 줄 모르는 아이에게 협동심이 발휘될 수 없고, 다른 친구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왕따 문제와 같은 학교폭력이 늘어나는 환경이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가해자를 일벌백계한다고 해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구슬치기조차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혼자 즐기는 요즘 아이들의 체력 또한 걱정이다.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라는 10대 후반 아이들의 체력이 40대 교사들만도 못하다며 한숨짓는 요즘, 스마트폰이 대학입시로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아이들의 몸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고 탓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아이들의 비만과 스마트폰 보급률의 상관성을 살펴보고 싶을 정도다.

부디 스마트폰의 올바른 사용법을 가정과 학교가 교육시키면 될 일 아니냐고 쉽게 말하지 않길 바란다. 이게 어디 가정과 학교에만 책임을 떠넘길 문제인가. 아이들이 시나브로 스마트폰의 '노예'가 돼가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교실과 복도엔 스마트폰에 머리를 파묻은 채 손가락을 바삐 놀리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태그:#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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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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