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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한 노동자가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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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45년 밤샘노동이 끝난다. 67년 울산공장 설립 이후 주야간으로 10시간씩 진행됐던 맞교대 형태가 종료되는 것이다. 30일 임금단체협상에서 현대자동차 노사는 2013년 3월부터 '오전 8시간 + 오후 9시간' 근무형태의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주간연속 2교대제'가 시행되면 1조가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 3시 20분까지 8시간, 이후 2조는 오후 3시 2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 10분까지 9시간 조업하게 된다. 아직 정규직노조 전체 조합원의 찬반투표라는 최종승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노동계의 오랜 요구라는 점에서 통과가능성이 높다.

이런 변화는 현대자동차 몇 개 공장의 근무형태가 바뀌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듯하다. 국내 최대 생산공장의 근무형태 변화는 주야간 맞교대를 시행하는 다수의 제조업체에게 태풍과 같다. 당장 같은 그룹의 기아자동차도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두 회사에 납품하는 부품업체들도 자동차업계의 '적기공급생산' 방식에 따라 완성차 공장에 맞춰 근무형태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전국금속노동조합 산하 자동차 부품사업장 20여 개가 주간연속 2교대제로 전환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GM,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다른 완성차 업체도 영향을 받을 듯하다. GM은 이미 '주간연속 2교대제 추진위원회' 설립을 노사가 합의했지만 지난 17일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이번 현대차 노조의 합의로 GM 사측이 진일보한 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르노삼성은 지난 2006년 이 제도를 시행했지만 새벽까지 조업이 진행돼 유명무실해졌는데, 다시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쌍용차도 구조조정과 법정관리 이후 주간근무만 실시하고 있지만, 이후 생산량이 늘어나면 주간연속 2교대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발암물질 야간노동' 페지... 노동자 삶 질 향상 기대

현대차의 밤샘노동 폐지는 업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우선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강화된다. 그동안 야간 교대근무는 생체리듬을 교란시키는 발암요인으로 지적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는 지난 2007년 생체리듬을 교란시키는 교대근무를 '2A급 발암요인'으로 지정했다. 이는 '2B급 발암요인'인 자동차 배기가스나 다이옥신보다도 한 단계 높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런 이유로 맞교대제가 아닌 3교대제를 시행했다.

또한 야간노동은 급성심근경색이나 수면장애 등 산업재해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왔다. 지난 2009년 한국의 근로자 1만 명당 안전사고 사망자 수는 1.01명으로 일본의 4배, 독일의 5배, 영국의 14배에 달했다. 세계 최장근로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과로사 등 높은 노동 강도로 탓에 산업재해 부분에서도 부끄러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야간노동과 장시간노동 등 산업재해 원인을 차단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은 이러한 지표 개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정희 전국금속노조 정책실장은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주야간 맞교대 시스템은 한국 사회가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라며 "노동력을 보호하고 존중하며 발전시키기보다는 무조건 열심히 일만 하라는 논리가 존재했다, 주간연속 2교대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공장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완성차 업체와 생산시스템이 동기화 돼 있는 부품업체들도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겠지만 문제는 중소사업장"이라며 "납품해야 하는 물량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노동시간이 줄면 노동강도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또 중소업체의 특성상 노동시간이 줄면 임금도 줄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더 과감하게 정책적으로 제도를 전화시켜야 한다"며 "부품업체들의 납품단가를 보장하고 불공정거래를 근절해야 야간노동 철폐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야간노동 문제가 노동강도 문제로

현대차 노사의 이번 합의를 노동계는 전반적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주야간 10시간씩 근무에서 주간연속 8시간, 9시간 근무로 노동시간이 줄었지만 생산대수는 기존의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더 적은 시간에 같은 양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심야노동의 문제를 노동강도의 문제로 옮겨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나누기 효과가 없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노조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노동건강연대 정책위원 유성규 노무사는 31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심야노동에 따른 위험성을 노동강도 증대로 맞바꾼 꼴이 됐다"며 "4600억 원을 들여 설비투자를 한다지만 그게 얼마나 노동강도를 낮출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나중에' 인력확충을 하겠다는 것도 지금 평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에서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기본적으로 잡쉐어링(일자리 나누기)을 위해 시작됐다"며 "수천 억을 들여 설비는 늘리면서 노동강도를 낮출 수 있는 고용인원은 늘리지 않는 모습에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현대차 노사의 이번 합의는 근무시간을 현행보다 3시간 단축하되, 총액임금과 총 생산량을 현행 수준대로 보전한다는 게 핵심이다. 노사는 라인별로 시간당 생산대수 향상과 추가 작업시간 확보를 통해 평일 '10시간+10시간' 근무형태의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회사는 46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실시한다. 그럼에도 노동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과 새로운 고용창출이 없다는 게 유 노무사의 지적이다. 현대차 노조의 일부 현장조직도 이런 문제를 제기하며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운동에 나설 조짐이다.

일단, '주간연속 2교대'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현대차에게는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 임단협 협상에서 특별협의 대상으로 분리시킨 사내하청노동자(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다. 사측은 2015년까지 3000명을 신규채용 하겠다고 했지만 비정규직노조는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규직노조의 역할이 중요한데, 임단협을 마친 상황에서 얼마큼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설지 의문이다.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과 사내불법파견 문제 역시 현대자동차 노사가 키를 쥐고 있다.


태그:#현대자동차, #금속노조, #야간노동, #주간연속 2교대제, #기아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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