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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중국 북경에서 1년간 중국인 집에 세들어 산 적이 있다. 중국인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서 방 한 칸을 빌린 것이다. 중국인의 눈에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한국인의 눈에는 좀 특이한 장면이 이 집에서는 매일 벌어졌다.

불법 자가용 영업(흑차 영업)을 하는 주인집 남편은 식사 때만 되면 어김없이 귀가해서 음식을 만들었다. 남편은 이 외에 세탁과 청소도 담당했다. 일주일에 3일 정도 버스 차장을 하는 부인은 이따금씩 청소만 좀 거들 뿐이었다. 좀 불공평해 보일 수 있는데도, 남편은 항상 기꺼운 마음으로 역할을 다했다.

중국에서 본 여성의 지위

이처럼 남편이 가사를 더 많이 분담하는 예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중산층 가정의 상당수가 그랬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필자가 몇 번 놀러간 적이 있는 어떤 가정에서는, 손님이 오면 부부가 함께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준비하곤 했다.

중국 가정에서 아주 흔한 이런 장면을 보고,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 여성의 지위가 한국 여성보다 높다고들 말한다. 이런 시각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유교가 한국을 지배하기 전에는 정반대였다. 한국 여성의 지위가 훨씬 더 높았던 것이다.

무측천(측천무후) 상상화.
 무측천(측천무후) 상상화.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중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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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사라진 지 22년 뒤인 서기 690년, 중국에서는 전직 황후인 무측천(측천무후)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무주'라고도 불림)를 세운 뒤 성신황제라는 타이틀로 즉위했다. 이 나라는 705년에 멸망했고, 당나라가 15년 만에 부활했다.

이렇게 무측천은 15년간 엄연히 주나라 황제였는데도, 중국 역사학계는 공식적으로 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다. 618년에 건국된 당나라는 690년에 무측천에 의해 생명이 끊겼는데도,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618년부터 907년까지 289년간 존속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 무측천과 주나라는 공식적으로는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다.

중국 역사학계는 고작 3년간 유지된 후한(947~950년)도 왕조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15년 만에 멸망했다는 이유로 무측천의 나라를 부정하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또 그들은, 한나라를 멸망시켰다가 15년 만에 한나라 후손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왕망의 신나라도 왕조로 인정한다. 따라서 당나라 황실의 손에 도로 넘어갔다는 이유로 무측천의 나라를 부정하는 논리 역시 성립할 수 없다.

이런 모순은 오랫동안 중국 사회에 존재했다. 무측천의 주나라가 멸망한 뒤로 역대 중국 왕조와 역사학계는 정당한 사유 없이 무측천과 주나라를 부정해 왔다. 만약 무측천이 남자였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 통치자에 대한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거부감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중국 남자들이 아내를 위해 가사분담, 나아가 가사전담까지도 불사하는 것은 아름다운 장면이다. 하지만, 이것만 보고 중국 사회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여성 통치자를 괜히 거부하는 정서가 오랫동안 중국 사회에 존재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대 국가의 여성 지위, 지금보다 높았다

그에 반해, 고대 한국에서는 여성의 정치적 지위가 높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도 별로 없었다. 이 점은 선덕·진덕·진성이라는 세 명의 여왕을 배출한 신라의 사례에서 가장 극명하게 입증된다. 

고려시대 유학자인 김부식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선덕여왕 편에서 "어찌 할머니들이 안방을 나와 국가의 정치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선덕여왕에 대해 무조건적 혐오감을 표출했지만, 이런 감정은 신라 백성들의 일반적인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비담 같은 사람은 '여왕은 안 된다'며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선덕여왕릉. 경북 경주시 보문동 소재.
 선덕여왕릉. 경북 경주시 보문동 소재.
ⓒ 문화재 공간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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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뿐만이 아니다. 신라에서는 여신의 존재도 인정됐다. 제1대 박혁거세의 왕후인 알영부인, 제2대 남해왕의 왕후인 운제부인, 충신 박제상의 부인인 치술공주는 국신(國神)으로 추앙을 받았다. 이렇게 신라에서는 국가적으로 여신을 숭배했다.

남해왕의 누이가 박혁거세의 제사를 주관한 사실이 증명하듯이, 신라에서는 여성 사제의 존재도 인정됐다. 또 두 명의 왕실 여성이 팔월 한가위 때 길쌈 시합을 주관한 사실이나, 여성이 원화제도(화랑제도의 전신)의 수령이었다는 사실 등은, 신라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광범위하게 인정됐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신라만 그랬던 게 아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따르면, 백제에서는 주몽의 부인인 소서노가 국가적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소서노도 일종의 여신으로 승격된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역사학자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백제의 시조는 온조가 아니라 소서노 여제였다"고 언급한 바와 같이, 백제에서도 여왕의 존재가 인정됐을 가능성이 있다.

소서노는 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세운 뒤, 두 아들인 비류·온조를 데리고 백제를 건국했다. 그는 백제 건국 이전부터 이미 정치적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분석해보면, 소서노가 백제 초기 12년간 통치자의 역할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된다.  

백제본기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소서노와 온조의 관계가 나빴고, 소서노가 쿠데타로 해석되는 재앙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소서노가 죽자마자 온조가 도읍을 옮기고 궁궐을 지었다는 점이다.

두 모자의 관계가 나빴다는 점은, 소서노가 죽은 지 4년이 되도록 온조가 어머니의 사당을 짓지 않으면서도 자기 궁궐을 얼른 지은 사실에서 추론된다. 정상적인 모자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소서노가 단순히 왕의 어머니에 불과했다면, 쿠데타 세력이 그를 노릴 이유도 없었고, 그가 죽자마자 온조가 도읍을 옮기고 궁궐을 지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소서노가 백제 초대 임금이었다고 생각하면, 이런 점들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소서노가 죽자마자 온조가 도읍과 궁궐을 신속히 마련한 것은, 온조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백제 초기 12년간 정치적 기반을 갖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점들은 신채호의 말대로 백제에서도 여왕이 인정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설령 백제에서 여왕이 인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신이 인정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소서노가 현실 대한민국 정치를 본다면?

드라마 <주몽>의 고주몽(송일국 분)과 소서노(한혜진 분).
 드라마 <주몽>의 고주몽(송일국 분)과 소서노(한혜진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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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를 계승한 국가이고, 부여는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다. 그러므로 백제에서 여신이나 여왕이 인정됐다는 점은, 다른 한민족 왕조에서도 유사한 전통이 있었을 가능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신라나 백제의 사례를 볼 때, 고대 한민족은 중국과 달리 여성 통치자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유학이 한민족을 지배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고대 한국인들이 현재의 대한민국 정치현장을 본다면, 단순히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신기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필요하면 누구라도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는, 서민과 부유층을 동시에 위할 것인지 부유층만을 위한 것인지는 따지지 않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정치인에게 막연한 기대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고대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여성 지도자를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여성이든 남성이든 정치인은 본질적으로 다 똑같다는 점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인의 성별보다는 정치적 성향을 훨씬 더 중시했을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서민과 부유층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사람만이 그들에게는 진정한 통치자였을 것이다. 


태그:#대통령후보, #여성 대통령, #선덕여왕, #소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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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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