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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산별노조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2012 노동 있는 민주주의와 노사관계개혁을 위한 연속기고 -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연중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2012년 권력교체기, 한국 사회에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 담론 확산과 산별노조운동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내 인생의 중요한 고리인 금속산업연맹과 금속노조 시절은 산별교섭을 잉태하는 과정이었다. 1800여 개의 금속 사업장 중 4만 명을 조직해 2001년 금속노조가 출범했다. 그 당시 필자는 산별추진팀장을 맡아 전국 사업장을 돌며 400여 회가 넘는 간담회와 회의, 워크숍을 통해 산별노조의 기반을 다졌다.

초창기에는 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았지만, 6년의 시간이 지난 뒤 주력 대기업 사업장들이 결합했다. 당시에도 기업별 교섭의 관성이 남아 있었지만, 초기 산별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역별 공동교섭을 바탕으로 산별중앙교섭을 성사시켰고, 2003년 산별중앙교섭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노동조건 개선 및 임금삭감 없는 주5일제를 쟁취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 주5일제는 법제화됐고, 2004년 7월부터 시행되기 이르렀다.

나의 경험으로는 산별의 힘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산별노조는 노동자 계급의 요구를 분명히 담아내고 정책적 대안을 가져야 한다. 산별노조, 그리고 산별교섭은 기업별 노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트너십 속에서 상당한 역량을 투입해야만 산별체제가 유지된다.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 산별교섭의 교착상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가장 큰 문제다. 금속노조 내 조합원 10만을 차지하고 있는 완성차 지부들이 산별중앙교섭에 참가하고 있지 않고, 2009년 사용자단체 해산 이후 보건의료노조도 산별교섭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비단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재와 같은 산별교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인 힘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를 위해 2000년 민주노동당에게 그 역할을 맡긴 것이다. 필자의 역할도 그러한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산별교섭의 제도화가 입법으로만 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산별교섭을 제도화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노조 내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노조의 역할과 산별교섭을 가로막는 구조적인 장애물을 제거하는 정치적인 역할이 절묘하게 결합돼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기업별 노조체제에 깊숙하게 젖어들어 있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별 노조관행에 익숙한 상황에서 산별노조운동이 가지는 매력을 분명히 조합원들과 국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산별교섭은 기업의 담장만 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업종, 산업을 가로지르는 정책적 요구로 대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운동이 요즘 시쳇말로 대세인 '경제민주화' '복지체제'에 기여한 바를 독일을 비롯된 유럽 산별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쉽게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산별교섭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담을 양질의 컨텐츠를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법으로 만들어 놓고 콘텐츠를 채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콘텐츠를 누가 생산하는가. 결국 조합원들과 국민들의 소통과 요구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조합원과 국민들은 산별교섭의 콘텐츠를 모른 채 기업별 노조체제의 향수를 찾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노사관계는 그 기본적 속성이 힘의 관계다. 따라서 지금의 역학관계가 분명 노조에 불리하다는 것은 맞다. 현재 노조조직률은 9.8%, 단체협약적용률은 10%대로, 산별노조체제로 전환과 산별교섭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업별 노조체제에 안주하는 경향은 제도로도 강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노조의 주체적인 실천으로 정면돌파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가령 산별 체계 내 지부의 권한을 회수하는 일, 산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부, 지회의 인적·물적 자원을 산별노조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법이 나설 문제가 아니다. 결국 상당한 시간과 노력, 자원이 필요한 산별교섭체계의 구축이 법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산별교섭이 현재 기업별 노조체제에 기반한 노동법 체계에서는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하다.

산별교섭 자체를 강제하는 것과는 별도로 사용자 측 교섭당사자를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용자단체 구성을 강제하는 것도 법적 문제가 있겠지만,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과 같이 사용자단체가 해산한 경우도 문제다. 물론 사용자단체가 없다고 교섭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별교섭의 취지가 몰각될 수 있다. 따라서 동종업종의 이익증진을 목적으로 한 단체를 사용자단체로 의제해 산별교섭의 상대방을 확정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복수노조의 교섭 창구단일화는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 산별교섭이 제대로 정착되면 이중교섭, 이중파업의 문제는 발생될 여지가 거의 사라진다.

협약적용률의 확대를 위해 산업·지역·업종을 적용범위로 하는 산별협약의 효력을 최저기준으로 해야 한다. 이 또한 산별협약의 일반적 구속력과 지역·산업·업종 단위의 효력확장을 통해 협약적용률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산별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근로시간면제제도를 폐지하지 하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 산별 전임인력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체단체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경우, 노동조건이 법률이나 조례, 기타 법령 보다 유리한 경우에는 그 효력을 당연히 인정하고 국회 또는 지방의회의 승인을 얻어 단체협약에 합치되도록 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단체협약의 효력이 부인돼 사실상 공공부문 산별교섭이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산별교섭체제로 체질변화를 위한 기본적인 것들이라고 본다. 노동법 체계를 산별체계에 적합하게 바꾸는 작업은 한 번의 입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산별교섭 체제를 형성하기 위한 조건을 최적화하기 위한 시작이며, 통합진보당에서 이미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노조의 제도화 관철 노력과 기업별 노조체계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거쳐 산별교섭의 의미 있는 성과가 축적돼야 한다.

이러한 성과들은 산별교섭체제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기업의 태도를 점차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무엇보다 산별체제가 우리 사회와 노사관계에 더 유익한 것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노동자들과 국민들의 공감대가 확대되면, 산별교섭을 꺼리는 경영계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들이 숙성될 때 산별교섭의 제도화는 더욱 단단한 지형 위에 성을 쌓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산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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