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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부업 시장으로 내몰렸던 사람들, 그 과거와 현재' 토론회에 참석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두 피해자, 송태경 보좌관(최재천 의원실)
 8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부업 시장으로 내몰렸던 사람들, 그 과거와 현재' 토론회에 참석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두 피해자, 송태경 보좌관(최재천 의원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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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오그라진 삶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박지연(37·가명)씨는 한때 직원 12명을 두고 모자 도소매업을 하던 '사장님'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쇼핑몰의 등장으로 사업이 휘청거리기 시작한 2005년 그는 일수업체에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500만 원으로 시작한 대출금은 쌓이고 또 쌓여 1억 원을 넘겼다. 이자는 200~300%에 달했다. 박씨가 돈을 제때 갚지 못하자 사채업자는 장애가 있는 큰 아이의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 쓰는 중형차를 가져가 팔아버렸다. 그래도 빚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가게에서 물건 하나 못 건진 채 야반도주하듯 도망쳤다.

죽고 싶은 심정만 가득하던 박씨는 셋째 아이를 임신하며 다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임신성 당뇨와 중독증으로 신발을 신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부었는데도 '태어난 아이 분유 값은 마련하겠지'란 생각에 맨발로 경찰서와 법률구조공단, 법원을 드나들었다. 겨우 사채 빚은 정리했지만 간암을 앓던 아버지가 지난해 세상을 떴다. 아버지의 빚은 고스란히 박씨와 그의 어머니 몫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남편은 '벌면 병원비로 나가는 이 삶이 싫다'며 집을 나갔다.

박씨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부업 시장으로 내몰렸던 사람들, 그 과거와 현재' 토론회에 참석,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는 내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한 번 무너진 생활 탓에 '학원 보내달라, 간식 사달라'는 아이들의 자그마한 소망도 이뤄주지 못한다"며 "운이 좋아 로또를 맞거나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나지 않는 한, 우리 아이들에게 가난은 대물림될 것"이라고 말했다. 눈과 콧등이 뻘겋게 된 채 "이자가 그렇게 과한 것을 알았다면, 은행 문이 조금만 넓었다면, 정부가 사채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제가 사채를 쓰고, 태교 대신 쌍욕을 들었겠냐"고 물었다.

"정부가 사채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대부업계 피해 여전히 심각

우리나라의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아래 대부업법)'은 지난 2002년 제정됐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을 이용 못하는 서민들이 대부업체에서라도 자금을 융통할 수밖에 없으니 이를 양성화하여 관리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빌리긴 쉬워도 이자가 높아 되갚기 어려운 게 대부업이다. 소득과 신용이 불안정한 계층일수록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지만, 제때 갚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2006년 정부가 최소 추정치로 내놓은 대부업 이용자 수는 328만 명이었다. 그보다 2년 전 공식통계에 신용불량자로 잡힌 사람은 380만 명이었다. 전문가들은 대부업 이용자와 신용불량자의 실제 숫자는 각각 5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내다본다.

이날 토론회를 진행한 송태경 보좌관(최재천 의원실)은 "대부업법을 아예 없앨 수는 없지만, 지혜롭게 수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보좌관은 19대 국회에서 일하기 전부터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에서 불법금융업 피해자 상담과 무료법률지원을 해온 불법사금융 전문가다. 23일 토론회는 그가 일하는 최재천 의원실과 경향시민대학이 주최하는 '민생고 희망찾기 토론회'의 두 번째 자리였다. 

빚으로나마 서민들의 숨통을 트여주려했던 입법 취지와 달리, 대부업법 제정 후 서민들은 대부업시장을 거쳐 벼랑으로 내몰렸다. 또 다른 피해자 강선영(59·가명)씨는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복요리전문점의 매출이 떨어지자 2007년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금리가 12% 정도'라던 상담원의 설명과 달리 그가 감당해야 했던 이율은 연 80%(현재 대부업법 최고금리는 39%)가 넘었다.

2009년 법 개정으로 대부업자가 받는 모든 것을 이자로 규정했지만, 당시에는 연체이자율, 대출이자율에 따라 내용이 달랐다. 특히 대출이자율 등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던 탓에 강씨에게 고금리로 돈을 빌려준 저축은행은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었다.

결국 사채까지 손을 대야 했던 강씨는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사채업자가 낸 소송에 휘말렸다. 그는 "송 보좌관과 민생연대의 도움으로 무죄판결을 받았고, 택배 일을 하며 살고 있다"며 "당시는 하루하루가 악몽의 날들이었다"고 털어놨다. "불법사채라는 사회의 독소를 즉시 잘라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불법사채는 사회의 독소" "대부업 규제 안 하면 중산층 몰락"

8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부업 시장으로 내몰렸던 사람들, 그 과거와 현재' 토론회에 참석한 피해자들이 자신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8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부업 시장으로 내몰렸던 사람들, 그 과거와 현재' 토론회에 참석한 피해자들이 자신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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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로 참석한 제윤경 희망살림 상임이사는 "피해자 두 분도 중산층이었다" "한국 가계부채의 70%가량이 중산층에 몰려있다"고 지적했다. 지금도 빚이 많지만 경제사정이 나빠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제1·2금융권에서 대출받을 수 없다. 결국 대부·사채업체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즉 많은 중산층이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거나 대출받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고, 자연스레 대부업시장에 발을 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제 이사는 "대부업시장을 규제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중산층은 몰락할 것"이라며 "중산층에게 햇살론, 희망드림론 같은 '서민금융'을, 저소득층에게 '복지'를 주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빚이 아니라 '빚 독촉'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며 "선진국처럼 채무자의 방어권을 반드시 입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은 법률 등을 잘 모르기 때문에 빚 독촉을 당하면 당황할 뿐 아니라 대처할 길을 찾기 힘들다. 제 이사가 "(채무자 방어권을 법에 명시) 전문가를 거쳐 상환을 요구하도록 해 많은 채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제안한 배경이다.

이형주 금융위원회 서민금융과 과장은 "(피해자들이) '은행 문턱이 조금만 낮았더라면, 정보 제공이나 교육이 제대로 됐다면 이런 피해를 당했겠느냐'고 질책한 부분이 가슴 아팠다"며 정부가 최근에서야 불법사금융 대책을 시행하고 있는 점을 아쉬워했다. 또 법이나 제도 개선 이전에 피해가 발생한 부분이나 사각지대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정책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지난 4월 '불법사금융 척결방안'을 발표, 피해자에게 금융·법률지원하고 업체 단속을 강화하는 등 '불법사금융 피해구제 체계' 마련을 추진 중이다.

김의승 서울시 경제정책과 과장은 "(사채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곳을 확인한 결과, 약 90%가 미등록업체여서 다양하게 불법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록업체가 적은 편도 아니다. 2012년 7월 말 기준으로 서울시 등록 대부업체는 4730개소이다. 임대차계약서, 대부업교육 이수증 사본 등만 제출하면 끝나는 간단한 등록절차 때문이다. 김 과장은 "폐업을 해도 등록제한 기간이 있어 얼마든지 재등록이 가능하다"며 "등록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 1월부터 대부업 피해를 '7대 민생침해 분야'로 선정해 피해신고시스템을 마련했다. 법률지원·종합상담센터 설치와 대부업체 단속 강화 등도 추진하고 있다.


태그:#대부업, #사채, #최장집, #최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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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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