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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밥이라도 사주고 오지?"

지난주에 '용역 알바 대학생'을 인터뷰한 후배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지난 7월 27일 직장 폐쇄한 만도기계의 강원도 문막 공장에 투입됐던 정창수(가명)씨는 '용역 깡패'라는 언론의 질타 속에 속을 끓이다 한 인권단체에 메일을 보냈다.

"저희와 맞서 싸우는 노조분들께도 죄송하고 스스로 두려움을 만드는 선택을 한 제 자신에게도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학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부산의 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28살의 늦깎이 대학생인 그는 메일에 이렇게 썼다.

정창수는 "우리도 저거랑 같은 옷을 입었어요"라고 말하며 컨택터스 관련 뉴스 화면을 지켜봤다. 그는 종종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본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들리는 '용역깡패'라는 말이 마음을 짓누른다고 했다.
 정창수는 "우리도 저거랑 같은 옷을 입었어요"라고 말하며 컨택터스 관련 뉴스 화면을 지켜봤다. 그는 종종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본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들리는 '용역깡패'라는 말이 마음을 짓누른다고 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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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시 그는 "집안 형편 때문에 공사장이나 발전소 막노동을 주로 했는데, 많이 다쳤다. 하지만 일에 비해 일당은 6만7000원 정도로 낮다. 용역은 10만 원을 준다. 이번에 돈 벌면 (학기 중에는) 공부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매학기 등록금 300만 원과 생활비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는 "다시 일을 구했고, 곧 일을 하러 가게 되는데 이 일 역시 시설경비 용역"이라고 했다. 일당이 센 용역일로 등록금과 생활비에 쓸 250만 원을 더 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마이뉴스>에서 일했던 대학생 인턴기자 중에서도 "등록금 때문에 휴학 중인데 복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어두운 표정을 짓던 이들이 꼭 한둘은 있었다. 대학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은 익히 알려진 것이지만, 학비에 쫓겨 진짜 전쟁터 다음 쯤은 되는 노사 충돌 현장에 '알바'로 나서는 학생들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기사가 나간 뒤, 그를 욕하는 댓글이 적지 않게 붙었다.

"돈 때문에 이런 짓 했다고 자기 합리화하면 강도나 도둑하고 뭐가 다릅니까."
"저도 그렇고 제 친구들도 잠을 줄여서 방학 때 3탕 4탕씩 알바를 하고 했습니다 저 학생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요? 자신의 보다 편하고 보다 높은 임금을 위해서 타인을 괴롭히다니요... 전 이해가 안 됩니다."

당연히 나올 비판이지만, "다른 대학을 다녔는데 학비 때문에 그만두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 막노동으로 학비를 벌었다"는 그였다. "(일하면서 공부하기 위해) 이틀 동안 안 잘 때도 있고, 빨리 일어나기 위해 자더라도 눕지 않는다"는 그는 "예전엔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술집이나 막노동하면서 보는 게 밝은 게 없다"고 했다.

"용역인력 30~40%가 학생"... "대학생 알바는 방패막이"

2일 오후 직장폐쇄된 경기도 안산 SJM공장에서 용역업체 '컨택터스' 직원들이 철조망이 겹겹이 쳐진 정문안쪽에서 방패를 들고 서 있다.
 2일 오후 직장폐쇄된 경기도 안산 SJM공장에서 용역업체 '컨택터스' 직원들이 철조망이 겹겹이 쳐진 정문안쪽에서 방패를 들고 서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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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에 따르면, 노사 충돌 현장에 투입되는 용역 인력의 30~40%는 대학생이다. 이들은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할까. 이번에 안산의 자동차부품업체 SJM 노조를 박살 내 '용역폭력'의 대명사가 된 컨택터스의 전 팀장도 "용역의 상당수가 대학생들인데, 얘들은 정말 불쌍하다"며 "이 친구들은 돈 벌려고 나오고 용역은 살려고 그 애들 쓰는 거다, 자기들이 앞에 서면 맞으니까 방패막이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정규직 또는 일용직 형태로 일하는 경비직원은 14만여 명. 정씨 등의 말대로 단순 계산해 보면 이들 14만 명의 30%, 4만2천 명이 학생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를 정확한 통계로 보긴 어렵다. 게다가 학생들이 용역에 뛰어든 이유도 제각각이겠지만, 꽤 많은 학생들이 학비와 생존을 위해 노사 충돌과 철거 현장 등 각종 분규 현장에 가진 자들의 '사병'으로 동원되고 있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사용자들과 보수언론이 '노조 천국'이라고 우겨대는 한국의 올해 노조 조직률은 10.1%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0년에 9.8%였던 것이 '사회 양극화·노동조건 악화'로 겨우 10%를 넘어섰으나, 노동자 10명 중 겨우 한 명이 노조 원인 수준이다. OECD 30개국 중에서는 끝에서 세 번째다.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파업의 핵심 이슈는 '정리해고 반대'였고, 몇 년 전부터 '비정규직 철폐'가 나란히 제기됐다. 여기에 임금문제와 근로조건 개선이 더해지는 것이 노동자 대부분이 파업 경험이 없는 이 나라의 파업 이슈다. SJM도 그 자신이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임에도 중국산 부품을 수입해 원청회사에 납품하는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 정리해고의 불안감이 번진 것이 갈등의 계기가 됐다.

그나마 활발하게 움직이는 노조들은 존립을 위해 싸워야 한다. 컨택터스의 전 팀장은 "특히 (민주노총의 핵심인) 금속노조하고 많이 싸웠는데, 3M·상신브레이크 다 깼다"며 "컨택터스 때문에 노조가 깨진 곳이 많다"고 말한다. 이 기업들 외에도 발레오만도·KEC·유성기업·만도기계는 사측이 직장폐쇄를 강행하고 경비용역업체를 대규모로 투입한 뒤, 노조들이 금속노조를 탈퇴하거나 새로 들어선 사측 노조에 밀려 단체교섭권을 잃어버리면서 무너졌다.

가깝게는 SJM, 멀게는 쌍용차에서 나타난 용역폭력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에서 벗어나려는 노동자들과 역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학생들이 맞부딪친 현장이었던 것이다. 정작 이런 상황을 만든 이들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결국 '용역폭력 사태'는 우리 사회가 똑같이 생존권의 위기에 몰린 노동자들과 학생들을 쇠파이프와 쇳덩이들을 들고 죽기 살기로 싸우게 만드는 '야만적인 사회'임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안은 없다... '용역알바 학생'들에게 반값등록금 적용됐다면

지난 7월 27일 전국에서 모인 용역업체 직원들이 인천 문학경기장에 집결한 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지난 7월 27일 전국에서 모인 용역업체 직원들이 인천 문학경기장에 집결한 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다.
ⓒ 한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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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국회에서는 '폭력 전과자 및 조직폭력배의 용역경비직원 취업 금지' '허가 취소된 업체의 임원은 이후 5년간 경비업체 임원직 불가' '경비원의 불법적 물리력 행사에 경찰의 개입 의무' '용역업체를 고용한 회사에 책임 추궁' 등을 담은 경비업법 개정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학비를 위해, 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알바'와 비정규직으로 용역업계에 뛰어든 이들에 대한 대책은 없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용역 폭력'은 아니더라도 "OO분들께도 죄송하고, 이런 선택을 한 제 자신에게도 미안"한, 다른 일들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중에 서울시립대 복학생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행한 '반값등록금'제도로 인해 '0원 등록금'고지서를 받았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 역시 '반값등록금'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면 '용역 알바'로 고민하고 있는 정씨는 어떻게 했을까.


태그:#용역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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