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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준하 선생의 셋째 아들 장호준 목사.
 고 장준하 선생의 셋째 아들 장호준 목사.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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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누군가 미리 알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고 장준하 선생 셋째 아들 장호준 목사(53)의 목소리는 37년 전 그날의 일을 담담히 전했다. 장호준 목사는 "아버지가 죽은 건 오후 1시 30분이고, 일행이 산을 내려와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린 것은 오후 3시 이후"라며 "하지만 이미 오후 1시 누군가 집으로 '아버지가 크게 다쳤다'고 전화를 해왔다, 휴대전화가 없는 시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를 당한 지 37년 만에 타살 흔적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장 목사는 "이미 당시 박정희 정권의 누군가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두개골에 6cm 크기의 구멍이 있는 사진을 보니 생각보다 큰 도구로 아버지가 살해당한 것 같아 많이 놀랐다"며 "누가 지시를 했고, 어떤 해머나 도끼로 아버지를 내려쳤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목사는 당시 의문의 전화를 받은 후, 어머니 김희숙씨와 함께 경기 포천군 이동면으로 향했다. 그는 가족 중 가장 먼저 장준하 선생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현장을 확인했다. 그는 닷새 뒤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고인의 영정을 들었다. 장 목사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원수를 갚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후 학업을 중단하고 낮에는 가게 점원으로, 밤에는 포장마차에서 일했다. 이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군대에 끌려갔다. 군생활 중 휴전선을 바라보면서 목사가 돼 한국을 떠나겠다고 다짐한 그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88년부터 싱가포르에서 마약중독자 상담원으로 일했다. 이어 1999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박정희 옹호' 박근혜 후보, 대통령 되면 안돼"

1975년 8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장례식에서 당시 열여섯 살의 장호준 목사가 고인의 영정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1975년 8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장례식에서 당시 열여섯 살의 장호준 목사가 고인의 영정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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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 코네티컷 주 윌링턴에 살고 있는 장 목사는 17일 오후(한국 시각)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과거 역사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서 가해자의 진심 어린 과거사 청산 노력을 강조했다.

장 목사는 과거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 가족에게 정당한 역사 평가를 요구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09년 박 전 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를 막으려 했던 박지만씨에게 쓴 공개편지에서 "역사는 결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우려 할수록 번지는 것이 역사이며, 지만씨의 행동은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장준하 선생 유족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 후보의 화해 시도에 대해 "내가 박 전 대통령 가족을 용서할 수 있다고 하면, 싸구려 황색소설이 될 것"이라며 "역사에 굴곡을 만들어놓고 화해를 하겠다고 한다면, 이완용이 한민족 앞에 용서를 구할 경우 화해를 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장 목사는 "아버지는 생전에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있어도, 박정희는 안 된다'고 한 적이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체성 자체를 부정한 사람이다,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대선 국면에서 아버지의 의문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며 "아버지가 1944년 일제 관동군에 강제 징집 당한 뒤 탈출해 눈 속에서 발톱이 빠져가면서 죽음의 길을 걸어 광복군에 합류했고, 이후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과 싸우고 투옥됐고 의문사를 당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음은 장호준 목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아버지 장준하 선생의 죽음, 누군가 미리 알고 있었다"

지난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지난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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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미 37년 전에 알고 있었다. 아버지 장준하 선생이 박정희 정권의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다. 다만, 당시 작은 도구로 살해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두개골에 6cm 크기의 구멍이 있는 부검 사진을 보니, 큰 도구로 살해당했구나 싶어서 많이 놀랐다. 누가 지시해서 어떤 해머나 도끼로 아버지를 내려쳤는지 밝혀져야 한다."

- 37년 전의 일을 기억하나?
"1975년 8월 17일 일요일 오후 1시께 누군가 서울 상봉동 집으로 전화해 '장 선생님이 산행 중에 많이 다쳐서, 여러 사람이 와서 모셔가야 한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어머니와 함께 택시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경기도 포천(경찰서) 이동파출소에 도착한 게 오후 4시였다. 파출소 순경은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순경과 함께 택시를 타고 현장으로 추측되는 곳에 갔다. 순경과 함께 산길을 오르다가 상점에서 '사고당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 어떤 생각이 들었나?
"산길을 내려오면서 순경에게 '아버지는 살해당한 것이고,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경은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 왜 타살이라고 생각했나?
"아버지가 사망한 시각은 오후 1시 30분경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 발견자) 김용환씨가 장준하 선생의 사망 소식을 일행들에게 알리고, 일행들이 산에서 내려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알린 것은 오후 3시 이후다. 하지만 이미 오후 1시께 누군가로부터 장준하 선생이 다쳤다고 전화를 받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그날 저녁 누군가가 함석헌 선생에게 전화해 '장준하 선생이 돌아가셨다'고 전화했다. 아직 누나와 이모·이모부 등이 있던 집에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은 때였다. 누군가는 미리 죽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누군가가 아버지를 살해하려 하지 않았어도 최소한 겁을 주거나 다치게 할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 박정희 정권에 의한 타살이라고 보나?
"아버지 사망 후 우연히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중앙정보부(중정) 요원에게 '우리가 죽이지는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정희 정권에서 아버지를 죽일 수 있는 기관은 중정 아니면 청와대 경호실이다. 하지만 당시 그런 이야기가 공론화되지 못했다. 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해 지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아버지의 살아온 궤적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를 감히 도전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와의 화해? 이완용과 화해할 수 있나?"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에서 열린 '장준하 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에서 부인 김희숙씨와 백기완 선생이 고 장준하 선생 흉상앞에 서 있다.
▲ 고 장준하 선생 흉상 제막식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에서 열린 '장준하 공원 제막식 및 제37주기 추도식'에서 부인 김희숙씨와 백기완 선생이 고 장준하 선생 흉상앞에 서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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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하 선생 유족은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 후보와 화해할 생각은 없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씨를 만나 '진심으로 위로 드린다'면서 화해를 시도한 바 있다.)
"어머니는 철저한 신앙인의 자세로 모든 것을 포용해 줄 자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역사와 신앙은 다르다. 박정희 가족이 화해를 시도해 내가 용서한다고 하는 것은 싸구려 황색소설 같은 얘기가 아니겠나. 과거는 우리 앞에 던져진 현재이고,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과거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국 역사가 지금까지 이 모양이 된 것은 과거사 청산 문제 때문이 아닌가. 역사에 굴곡을 만들어놓고 화해를 하겠다고 한다면, 이완용이 한민족 앞에 용서를 구할 경우 화해를 할 수 있는 것인가."

- 박근혜 경선 후보가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 역사를 되돌리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5·16 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됐는데, 누가 탱크를 몰고 와서 쫓아내도 '구국의 결단'이라고 할 수 있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역사를 1961년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있어도, 박정희는 안 된다'고 한 적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체성 자체를 부정한 사람이다,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

- 대선 후보들이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을 언급하고 있다. 타실 의혹이 대선 쟁점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선국면이기도 하고 아버지와 정치를 분리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의 삶이 재조명됐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1944년 일제 관동군에 강제 징집 당한 뒤 탈출해 눈 속에서 발톱이 빠져가면서 죽음의 길을 걸어 광복군에 합류했고, 이후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과 싸우고 투옥됐고 의문사 당했다는 사실이 재조명됐으면 좋겠다."


태그:#장준하,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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