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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신교와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 왔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간 것과, 군대 생활하면서 '초코파이'를 먹으러 교회에 간 게 전부다. 자취할 때 주인집 아주머니와 함께 성경책을 읽은 것도 종교 생활이라면 종교 생활이다. 이런 종교관을 갖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의 큰언니인 큰이모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 어머니 역시 영향을 받았다.

내가 까마득히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가사일과 바깥일을 도맡아 하셨고 삼남매를 키우느라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만 했다. 가끔 절에 가서 불공도 드리지만, 가족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있으셨다. 자라면서 지적 호기심이 생기고 종교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궁금함 이상이 아니었다. 철학과 문학에 심취하면서 '인간'에 대해서 성찰하는 것이 종교를 대신했다.

시민K, 교회를 나가다
 시민K, 교회를 나가다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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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특징이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신학의 방외자를 자처하는 김진호 목사의 <시민K, 교회를 나가다>(현암사 펴냄)를 읽으면서 한국 개신교의 과거와 현재를 알게 되었는데,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생존'이었다. 종교는 어떻게 사람을 만나게 되고, 사람들은 종교에서 위안을 얻는가 하는 주제는 일제시대, 6·25, 현대사 혼란이라는 극적인 환경으로 인해 더 강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에게 훈계하는 목회자들의 극성스러운 모습을 이해하는 기회도 되었다.
특히 개신교의 '과거'에 대해서 페이스북 친구들이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김문성씨는 "일제하 기독교가 신사 참배에 그렇게 많이 굴복했다는 사실과 그 굴욕과 심리적 상처를 반공주의에 투신하면서 만회해 갔다는 설명은 놀랍고 흥미롭다"고 말했다. 구유리씨 역시 "일제강점기 부터 여러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함께 해온 기독교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고 말했다. 특히 일제시대와 6·25 이후는 우리나라 대중들의 정치적 지형, 즉 반공과 극우가 기원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김세교씨는 이와 관련해 "북한지역에서의 토지개혁 등으로 인해 교회 및 신자들이 재산을 상실하고 고향을 떠나 월남하게 된 점과 한국 개신교 초기 주류였던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관에 의한 반공주의가 주 원인"이라고 짚었다.

책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그 유명한 '평양대부흥회'가 형성된 과정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며 극도의 공포에 시달린 평양 주민들은 미국 선교사들의 교회를 만나 생명을 부지하였고 깊은 영적 감화를 받게 된다. 이들이 사회의 주축이 되어 개신교인들이 한국사회의 전면에서 활약하게 된다. 나는 위키리크스가 고발한 주한 대사관 전문을 통해 한국 고위급 관료와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김용진 저, 개마고원 펴냄)이 생각났다. 고위급 지도자들은 왜 '뼛속까지 친미' 근성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왜 미국을 국가 이상의 존재로 바라볼까. 이것이 항상 궁금했는데, 이 역사를 보고 나서 이해가 되었다. 저자는 종교사회학자이자 세계적인 성서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슬리의 말을 빌려 미국이 전세계에 영향력을 지속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은 미군의 주둔지가 외적 군사기지로서만이 아니라 종교적 심성 내면에 설치된 신성기지로서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성스럽고 절박한 '인간 생존 극장'

처참한 식민과 전쟁의 땅에서 메시아의 복음을 최초로 들은 자들에 의해서 본격적인 생존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때로는 극성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절박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생존'의 이름으로 묶인다. 저자 역시 개신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책을 썼으니 어쨌거나 '생존'이다.

고은애씨가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말을 했다.

"재밌는 것은 순복음교회와 같이 큰 교회가 생겨나는 과정 속에서 - 한국 경제성장의 밑거름이지만 열매는 나누지 못했던 - 도시 근로자와 이농민이 중심이었다는 겁니다."

평안도의 주민들이 생명의 은인이자 메시아를 만나 종교적 엑스터시에 취하고 있었을 때 미국의 선교사들은 현지의 정보와 주민들의 성향에 대한 분석을 본국으로 타전하며 소통했고, 제3세계 식민지로 교회의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평안도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북장로회 선교사로 미국 내에서도 가장 수가 많고 활동적이었다.

선교사들과 평안도 주민의 공생 구도는 1970~80년대에 진행된 교회의 대형화 현상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군사정권, 독재정부에 협조하면서 세력을 키운 교회는 극심한 사회변화로 하층민으로 전락한 도시 이주민들을 품어 안음으로써 세력을 확장하는 한편 정권에게는 안전판의 역할을 했다. 신자의 대부분인 도시 이주민들은 기초생활조차 보장되지 못한 혹독한 주거와 노동 조건,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는 가운데 교회에서 평온을 찾았다. 한편 재산의 축적과 건강을 영적 축복과 연결해 부유한 자들의 '마음의 집'이 되어 준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번영신학은 종교의 대중화에 기여한 대신 인스턴트 식품처럼 개신교를 '값싼 위로'의 온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김경련씨가 경험한 것처럼 부흥회에서 행해지던 모습들은 "난감하고 오히려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연례적인 교회행사 역시 흥이 없었다. 설교를 위한 인터넷 설교 자료 제공서비스에 대리집필, 표절, 그리고 큰 교회는 설교보조자에 설교문 아웃소싱이 일상화될 정도로 종교행위 자체가 형식적이 되어버렸다.

Hongki Kim씨는 "행복의 기준을 돈이라고 여기는 일부 인식이 교회에도 그대로 배어있지는 않을까요"라는 질문으로 교회의 간편한 신앙 공식을 지적했다. 상처받은 민중들을 위로해줬던 종교의 역할은 어느덧 희미해지고, 교회의 홍보를 위한 무리한 단기 선교 같은 요식행위가 고도화되어 버렸다.

종교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영혼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실천과 사랑,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종교의 가르침에 진정 감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의 수와 사세 확장, 대형화를 지향하는 순간, 김세교씨의 말처럼 "예수의 정신을 앞세우기 보다는 예수의 이름을 파는" 한낱 영업행위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조미란씨가 지적한 '이웃 없는 종교'도 같은 이치다.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축복받은 사람들, 즉 부를 누린 사람들끼리 이웃을 맺고 선을 그어오면서 이웃이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에는 '이웃 없는 종교'가 되어 버린다. 무서운 속도로 신자를 늘려가던 개신교는 2005년을 기점으로 신자들이 줄어들어간다.

문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성찰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대안 역시 보이지 않는다. 김세교씨는 '멀티 신자' 이야기를 인상깊게 보았다고 말했는데, 개신교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멀티 신자가 되는 까닭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기독교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레이디 가가를 사탄이라고 비난하면서 공연을 못하게 할 정도로 경직되고 겁 많은 모습, 불교를 비난하는 신문광고, 우상숭배를 한다며 사찰에 가서 '땅밟기'를 하는 모습. 이것은 절박한 위기감의 표출은 될 수 있겠으나 적절한 대안은 될 수 없다.

그러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무엇일까?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켰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실타래를 가위로 잘라버리고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거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컨대 개신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개신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같은 질문을 통해서만 문제의 원인과 대면할 수 있다. 사소하고 번잡한 생존을 고민하다 보니 진짜 살아야 할 이유를 잊어버리지 않았을까? 교회 식으로 질문을 바꾸면 김영헌씨의 말이 결론이 될 수 있다.

"교회가 이웃과 같이 하기 위해서는 본래적인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의 가르침, 차별없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김진호 지음, 현암사(2012)


태그:#시민K, 교회를 나가다,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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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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