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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이 3년 간의 복역을 마치고 화성교도소 밖으로 나오고 있다.
 5일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이 3년 간의 복역을 마치고 화성교도소 밖으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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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지부장이 출소를 축하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상균 지부장이 출소를 축하하기 위해 나온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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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교도소에서 걸어 나왔다. 검은 티셔츠와 등산바지를 입었다. 밖에서 넣어준 새 옷이다. 자정이 다 됐지만 교도소 앞은 낮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 뜨거웠다. 문 앞에서 많은 이들이 그를 기다렸다. 3년 전 경찰서로 연행될 때 그가 입었던 노동조합 조끼를 아직도 입고 있는 사람들이다. 0시 2분. 이 남자는 문밖을 나서며 주먹을 쥔 오른쪽 팔을 높게 치켜들었다. 밝은 조명이 그를 비춘다. 새 옷을 입은 그와 땀에 젖은 조끼를 입은 이들이 서로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5일 한상균 전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장이 경기도 화성교도소에서 3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다. 김정우 지부장을 비롯한 쌍용차지부 조합원들과 시민 300여 명이 그를 맞았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한 전 지부장이 카메라를 보고 서자 일제히 플래시가 터졌다. 대개 출소한 사람들이 그렇듯 하얀 두부가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두부를 먹이지 않았고 한 전 지부장도 찾지 않았다. 사람들은 손에 든 두부를 교도소 안쪽으로 힘껏 던졌다. 죄 없는 노동자가 두부를 먹을 게 아니라는 표현이다.

지난 2009년 8월 6일, 당시 한 지부장은 77일 공장 옥쇄파업을 끝내고 사측과 합의서를 작성했다. 회사 구조조정으로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내쫒기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무급휴직자의 복직 약속을 비롯해 해고자들의 최소 생계를 위한 방안이 들어갔다. 합의서가 도출되자 공장 밖으로 나가야 하는 조합원들이 짐을 꾸리고 마지막 결의대회를 열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조합원들은 길게 줄을 섰다. 한 지부장은 밖으로 나가는 동료들 한 명 한 명을 끌어안고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파업에 모든 책임을 떠안은 그는 경찰서로 향했다. 쌍용차의 법정관리가 끝났다는 소식도, 인도의 마힌드라가 회사를 인수했다는 소식도, 함께 싸운 그의 동료와 그 가족 22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감옥 안에서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 없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볼 수 없는 그곳에서 한 전 지부장은 속이 끓었다. 그는 "맨 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웠다, 신문을 들춰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며 그 마음을 표했다. 덥수룩한 수염은 전과 같았지만 살이 빠져 수척한 모습이었다.

"어제가 아내의 생일, 못 챙긴 3년치 생일 축하한다"

한 전 지부장은 화성교도소 앞에 마련된 '3년을 기다렸다 한상균'이라고 적힌 무대를 배경으로 자신을 찾아와준 사람들 앞에 섰다. 그는 보름에서 조금 살이 빠진 달을 가리키며 "그해 여름 공장 옥상에서도 저 달을 보며 우리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매 순간순간 동지들을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시간이었다"며 "동지들의 생존권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징역을 산다면 평생도 살 수 있지만, 이명박 정권의 노동자 말살정책에 쌍용자동차가 희생양이 되는 모습을 보는 시간은 길기만 했다"고 출소 소감을 전했다.

사실 한 전 지부장은 출소 직후 대한문 앞에 차려진 분향소로 갈 예정이었다. 동료와 그 가족들의 죽음은 무엇보다 그의 수감생활을 힘들게 한 일이었다. 일정을 하루 미뤄 6일 방문하기로 했지만, 그는 "피와 눈물이 담긴 술 한 잔을 올리는 게 아니라 대한문에 갈 내 마음을 먼저 영혼들에게 전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어서 노동자로 살아도 조금은 행복할 수 있는 세상 만들었다고 보고하겠노라고 이야기 했습니다"라며 추모의 마음을 보냈다.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이후 3년을 복역한 한상균 전 지부장이 5일 출소해 부인과 포옹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이후 3년을 복역한 한상균 전 지부장이 5일 출소해 부인과 포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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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 지부장은 부인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가 해고되고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의 부인은 작은 식당을 하나 냈다. 한 전 지부장은 "오늘 김밥을 싸느라 노곤해서 못 올 줄 알았다. 정말 고생만 시켰는데, 몇 분 지난 어제(4일)가 생일이기도 하다"며 "3년의 시간을 혼자서 견디면서 어느새 저보다 강한 동지가 되어 주었다. 늦게나마 몰아서 3년치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환영행사를 마친 한 전 지부장과 참가자들은 이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으로 이동했다. 3년 전 감옥으로 떠났던 그 자리다. 그곳에는 한 전 지부장을 환영하는 잔치가 준비돼 있었다. 동료들과 해고노동자 가족들이 소박하게 음식을 준비해 밥 한 끼를 같이 먹는 자리다. 김정우 지부장과 막걸리 한 잔을 나눠 마신 한 전 지부장은 자리 곳곳을 돌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위해 공장 앞으로 자리를 옮긴 한 전 지부장은 공장 출입문을 잠시 바라보다 "여기도 많이 변했네"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정문에는 전자식 출입통제가 이뤄졌고, 사측이 고용한 용역경비가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다. 한 전 지부장은 인터뷰에서 "8·6합의가 이렇게까지 안 지켜질 줄은 몰랐다"며 "회사 스스로가 자본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상균 전 지부장이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이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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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만에 출소한 소감이 어떤가?
"지나고 보니까 시간은 금세 간 것 같다. 힘들어 하는 동지들 곁으로 올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활력을 찾은 것 같다. 이 짧은 시간에도 희망을 느꼈다."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의 가족 22명의 연이은 죽음이 쌍용차 사태를 사회적 문제로 만들고 있다. 소식을 들을 때 어땠나?
"맨정신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지금 맨정신 같아 보이지만 나도 진단을 한 번 받아봐야 할 거 같다. 밖에 있었으며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과 보지 못한 것은 차이가 크다. 독방에 있으면서 22명의 만장을 벽에 걸어 놨다. 혼자서 추모하는 건데 그게 거의 매일의 일상이었다. 그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것에 자괴감이 많았다. 심정을 표현하기 어려운데, 신문을 들춰보는 일이 힘들었다. 무서울 정도였다. 배달이 오면 바로 보지 못하고 한참 뒤에 들춰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랬다. 그런 시간이 지속됐다."

- 돌아가신 분 가운데 특별히 기억하는 조합원이 있나?
"특별하게 누군가를 구분하기 어려운 문제다. 돌아가신 가족들은 제가 확인할 수 없지만 조합원들은 전부 다 또렷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

"이 나라에 존재해야 할 공장의 모습 찾아 반드시 돌아가겠다"

- 지난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로 희망버스가 주목을 받았다. 안에서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다.
"희망버스에 나 역시도 희망에 대한 간절함을 담아 보냈다. 이 사회의 연대가 현재 침체돼 있는 노동운동을 과시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자발적 노력들이 보이는 건 큰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그 폭이 넓어지면서 자본과 정권이 하려는 노동자 죽이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 옥쇄파업을 마치고 '8·6합의'를 이끌어냈다. '1년 후 무급휴직자 복직' 등 합의 사안이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는데, 합의서를 만든 주체로서 어떤 생각을 하나?
"당시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큰 아픔을 가진 상태에서 합의를 했다. 어떤 조건이나 문구의 문제라던가 이행의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 뒤로 잉크도 마르기 전에 모든 사안을 어기고 갔기 때문에 회사 스스로 자본의 본질이 이렇다라는 걸 뚜렷하게 보여줬다. 쌍용차가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정권이 개입한 이후로 변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박한 자본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 정치권에서 '쌍용차특위' 등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권을 떠나서 쌍용차 문제가 사회적 공분으로 되고 있다. 해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는 상황이다. 사람이 죽는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본질에는 정리해고가 있다. 자본이 노동자들을 소모품화하고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는 본질들이 있다. 그것에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편을 들면서 노동자들은 억압한다. 지금은 합법적 파업을 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제 정말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건 식은 죽 먹기가 됐다. 이런 것을 바꿔가는 게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 등 뒤로 공장이 있다. 공장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지금 안에는 노동자들이 훨씬 더 땀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들었다. 사측에서 결단을 해야 한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해고노동자, 무급휴직자, 징계해고자 누구 할 거 없이 내가 청춘을 바친 공장에서 다시 볼트를 조이고 차를 만들고 퇴근길에 동료들과 해장국을 먹고 싶은 마음이다. 그것이 현재 이 나라에 존재해야 할 공장의 모습 아닌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반노동정책들을 뚫고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

-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미안하다. 이 운동을 하면서 가족을 돌아보지 못했다. 3년 기다려준 것만으로 큰절을 몇 번은 해야 할 거다.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한 번도 챙겨주지 못한 딸과 아들이 있는데. 굴곡 없이 자라줘서 그것만으로도 아빠가 힘을 내고 있다. 고맙다." 


태그:#한상균, #쌍용자동차, #화성교도소, #쌍용차,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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