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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비록 부스스한 얼굴이지만, 큰 일(?)을 앞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성삼재에서 찍은 출발 전의 모습 이른 아침 비록 부스스한 얼굴이지만, 큰 일(?)을 앞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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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이른 아침, 우리를 실은 25인승 미니버스는 거친 숨소리 같은 엔진의 굉음을 내며 가파른 고갯길을 힘겹게 올랐다. 쏜살같이 올랐다면 못 봤을 지리산 초입 풍광이 창밖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솜사탕 같은 구름이 발아래 깔린 모습을 처음 봤다는 몇몇 아이들은 긴장과 설렘으로 입맛을 다셨다.

올해 학생회 간부들의 여름 수련회는 일찌감치 1박 2일간의 지리산 종주로 계획을 세웠다. 학생회 활동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팀워크다. 이를 위해서 백 번 모여 회의하고 토론하는 것보다 고통 속에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함께 땀 흘리는 단 한 번의 경험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1년 동안 학생회와 소통하며 더불어 일해야 하는 학생부장 입장에서도 아이들의 면면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게 없다.

왜 그런 것 있잖은가. 평상시에는 볼 수 없었던 습관과 행동이 힘든 일을 함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 수업이 없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는 것도, 또 이렇게 방학을 이용해 쉽지 않은 지리산 종주 등반을 하는 것도 교사로서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다.

산 아래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하지만, 산 위는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울 뿐 비교적 선선하다.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에 서면 마치 가을처럼 쾌적할 정도였다. 이번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을 해발고도 1000미터가 넘는 성삼재로 잡았다. 화엄사에서 오르는 일정도 생각해봤지만, 아파트 뒷산조차 올라보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분명 무리일 듯했기 때문이다.

첫째 날,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거쳐 벽소령까지

이때까지만 해도 여유가 있었다. 탁 트인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을 지날 때면 서로 감상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 첫째 날 산행길, 주변 풍광을 즐기는 아이들 이때까지만 해도 여유가 있었다. 탁 트인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을 지날 때면 서로 감상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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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시작은 즐거운 법. '파이팅'을 외치는 스물한 명 아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이 정도쯤이야'라는 표정이다. 등산화에 배낭과 모자, 등산용 스틱까지 갖춘 모양새가 흡사 지리산을 족히 대여섯 번쯤 완주한 이들 같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돌아갔고, 이틀간 30킬로미터가 넘는 산길을 어쨌든 견뎌내야 한다.

노고단 오르는 가파른 고갯길에 잠시 헉헉대긴 했어도 임걸령에 이르는 동안은 능선길이 비교적 완만해서인지 서로 대화를 나누고 귀에 꽂은 MP3 플레이어 속 노랫소리를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마치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간단한 게임을 하며 걷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주능선에서 반야봉에 오르는 갈림길인 노루목에서부터 아이들의 입은 굳게 닫혀버렸다. 말하기조차 힘들었던 거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종주의 시작이다.

뱀사골계곡이 시작되는 화개재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부터는 아이들의 '본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기 배낭이 더 무겁다고, 등산용 스틱이 없어 무릎이 아프다고, 심지어 날씨가 덥고 산에 식수를 보충할 곳이 부족하다는 등 딱히 해결해줄 수 없는 내용의 불평과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작 가도 가도 끝없는 가파른 오르막 때문이다.

물보다 소금을 찾는 아이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급기야는 배낭을 아이들끼리 나눠 매는 일이 속출했다. 채 10분도 못 걷고 털썩 주저앉을 만큼 가다 쉬다 하기 일쑤고, 연신 대피소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묻고 또 묻는 아이들. 씻을 곳이 마땅치 않으니 선크림을 바르지 말라고 사전에 그토록 강조했건만, 흐르는 땀에 선크림이 눈에 들어가 쓰라리다는 아이까지... 한마디로 '아우성'이었다.

산에 오르면서 '거의 다 왔다'는 얘기는 더 이상 거짓말도 아니다. 물어보는 이나 대답하는 이나 그저 '힘내라'는 뜻이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가파른 토끼봉을 넘어선 후부터는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앞사람 발뒤꿈치만 따라 걸을 뿐, 힘들다는 푸념조차 들을 수 없었다.

1학년 한두 아이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워졌다. 얼굴은 물론, 머리카락 전체가 흡사 물폭탄이라도 맞은 듯 땀으로 흥건했다.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탓이다. 걸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보니 대피소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적잖이 걱정됐다. 자주 쉬게 하고, 챙겨온 죽염을 건네는 것 외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두워지면 위험해!"... 귀담아듣는 아이는 없었다

시간이 가뭇없이 지체됐다. 아침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예상대로라면 오후 4시 남짓에 숙소인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그 시간 모두가 파김치가 된 채 가까스로 연하천 대피소에 다다랐다. 3.5킬로미터를 더 가야 하는데, 배낭을 내팽개치고 등산화 끈을 풀어버린 모습을 보아 이미 절반 가까이는 체력도 의지도 모두 소진된 모양새였다.

산에선 해가 빨리 지고 어두워지면 산행이 위험하다고 연신 다그쳤지만, 귀담아듣는 아이들은 없었다. 되레 더 이상 못 걷겠다면서 이곳 대피소에서 1박을 하자고 떼쓰듯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리가 풀린 친구들을 위해 여태껏 짐을 나눠 든 아이들조차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차라리 2박 3일의 일정으로 계획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드는 순간이었다.

서둘러 걸어도 족히 한 시간 반은 더 가야 한다. 아이들의 몸 상태로 보아 여기서부터는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으로 버텨내야 하는 구간이다. 아닌 게 아니라, 너덜지대가 많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리 험한 곳이 아닌데도, 아이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가장 힘들었던 구간으로 손꼽았다. 오후 6시를 넘겨서야 천신만고 끝에 벽소령에 닿았다. 주위는 이미 어둑해졌다.

모두가 허기져 했지만 누구 하나 취사 준비에 나서지 않았다. 배고픈 것보다 당장 드러눕고 싶을 만큼 피곤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중 대피소라는 곳이 낯설기 그지없는 아이들의 입장에서야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만 멀뚱거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자기 손으로 밥을 지어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그러다 보니 버너에 가스를 끼울 줄 몰라 헤매고, '왜 대피소에는 수도꼭지와 쓰레기통이 없냐'며 고개를 갸웃거리기 일쑤다. 개별적으로 준비한 밑반찬이 하나 같이 햄과 소시지뿐이고, 숫제 세 끼 모두 라면만 끓여 먹을 요량인지 배낭 속엔 그런 것들만 그득하다.

벽소령을 휘감은 구름 속에서 저녁식사를 마치니 이내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채 아홉 시도 안 됐는데 곳곳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학기 중이라면 잠자기는커녕 야간자율학습도 끝나지 않은 '초저녁'인데, 산중에서는 이미 '삼경'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 이곳까지 걸어온 게 기적이라며 스스로 대견해하는 수군거림을 들으며 이내 잠이 들었다.

둘째 날, 벽소령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이곳만 넘으면 고지(?)가 보이는데... 이 길목에서 적잖은 아이들이 탈진 증세를 보였다. 그다지 힘든 코스는 아닌데도, 무척 힘들어했다.
▲ 세석평전에서 장터목 가는 길 이곳만 넘으면 고지(?)가 보이는데... 이 길목에서 적잖은 아이들이 탈진 증세를 보였다. 그다지 힘든 코스는 아닌데도, 무척 힘들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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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마치 주검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의 휴대전화 알람이 동시에 곳곳에서 시끄럽게 울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긴 중간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났을 때, 잠꼬대처럼 한숨 섞인 아이들의 앓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어제 하루가 그만큼 힘들었던 거다.

마음 같아서는 한두 시간이라도 더 재우고 싶지만, 하산과 함께 버스가 오기로 한 시간이 약속돼 있어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서둘러 아침을 먹고 배낭을 다시 꾸려 길을 나서야 한다. 그런데, 다들 밥 먹는 것조차 귀찮다는 표정이다. 하긴 여태껏 한 번도 깨 본 적 없을 새벽녘에 주섬주섬 옷 챙겨 입고 일어나는 것 자체가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아침을 챙기느라 천금과 같은 두 시간을 허비한 채 오전 7시가 다 돼서야 둘째 날 산행이 시작됐다. 잠도 덜 깼는데 벌써부터 헉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벽소령에서 세석 대피소에 이르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는 데다 길기도 길어서, 페이스를 잘 조절하지 못하면 자칫 시작부터 체력이 바닥날 수 있는 구간이다.

전날에 비해 쉬는 시간이 잦아지고 길어진다. 대개 어릴수록 전날 아무리 피곤해도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체력이 회복되기 마련인데,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어깨부터 허리, 무릎, 종아리, 발목과 발바닥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며 온몸에 페인트칠하듯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댔다.

두 끼 분이 빠졌으니 짐은 분명 가벼워졌을 텐데, 아이들은 되레 무거워졌다며 하소연을 했다. 마치 자기 배낭만 무거워진 것 아니냐며 친구들을 의심하는 아이마저 있었다. 코펠과 버너 등 쇠붙이는 말할 것도 없고, 쌀과 참치 캔, 심지어 쓰레기 담은 비닐봉지조차 무겁다며 서로 떠넘기는 모습이었다.

먹을 때는 앞서 달려들지만, 그것을 들 때는 슬그머니 뒷걸음질치는 건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 모른다. 선뜻 짐을 더 지겠다는 경우가 없다면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엔 몰래 흘리기 일쑤다. 잃어버린 거라고 항변하지만, 실은 무게를 줄이려고 의도적으로 버린 것이다. 쌀이나 가스, 레토르트 포장된 카레 등 부피에 비해 무게가 나가는 것들이 주로 버려진다. 심지어 랜턴과 전날 입었던 젖은 옷가지를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세석 대피소를 지나면서부터는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한 시간 이상으로 벌어졌다. 다리에 쥐가 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고, 그만큼 산행은 더뎌졌다. 천왕봉은 아직 멀기만 한데, 아이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대로 강행하느니 차라리 대피소 한쪽에서 잠시 눈을 붙이게 한 뒤 가는 게 나을 성싶었다. 그렇게 속절없는 시간이 흘렀다.

"1등으로 정상 밟겠다"던 학생회장의 '희생'

천왕봉을 코앞에 둔 장터목 대피소에서 결국 올 것이 왔다. 배낭은커녕 손에 든 등산용 스틱조차 버거워하던 1학년 한 아이가 탈진했다. 계속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호소했고, '괜찮으냐'는 질문에는 "우리 집에 다 왔느냐"고 엉뚱하게 반문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황급히 대피소 안에 눕히고 소금물을 챙겨 먹이는 등 응급조치를 한 후, 다 같이 모여 어떻게 할지를 상의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상이 불과 1.7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는데 포기해야 한다면 너무 억울할 것이라며 어떻게든 데리고 가야 한다"고 했지만, 인솔교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않은 상태에서 평지도 아닌 가파른 오르막을 한 시간 동안 걷게 하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대피소 직원 역시 무리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솔자 중 한 명과 함께 먼저 하산시키기로 결정하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만약 정상이 한참 거리였다면 함께 내려가길 바랐을 아이들이 적잖았을 것이다. 수직에 가까운 가파른 오르막을 기어가듯 오르면서도 "죽을 만큼 힘들지만 지금껏 걸어온 30킬로미터가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갈 것"이라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정상을 향하다 앞장선 자리에서 뒤돌아보니 누군가 따라오지 않고 있음을 직감했다. 황급히 조별 인원파악을 지시했더니, 그제야 학생회장이 탈진한 후배 곁에 남았다고 실토했다. 여태껏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던 데다가 "맨 먼저 천왕봉 정상에 오르고 싶다"며 벼르고 별렀던 아이인데, 리더였기에 자청해서 낙오한 것이다.

고맙고 든든했다. 후배를 위해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인솔자의 손에 이끌려 탈진한 그 아이의 하산하는 길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들은 장터목 대피소에서 한 시간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중산리 쪽으로 내려와 일행과 합류했다.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에 표정만큼은 밝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세 명이 먼저 하산해서 출발 때보다 세 명이 부족하다.
▲ 천신만고 끝에 오른 천왕봉 정상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에 표정만큼은 밝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세 명이 먼저 하산해서 출발 때보다 세 명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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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반이 돼서야 비로소 천왕봉에 닿았다. 온통 구름으로 덮여 발아래 깔린 운해는 고사하고 산자락조차 볼 수 없었지만 아쉬워하는 아이는 없었다. 그저 정상을 알리는 표석을 신기하다는 듯 만지작거리며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예정대로라면 버스와 만나기로 약속한 중산리 주차장에 닿을 시간. 정상에 오른 기쁨을 나눌 여유도 없이 단체사진 한 장 찍고 서둘러 하산했다.

천왕봉에서 중산리에 이르는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차라리 오르막이 좋았다고 푸념할 만큼 힘든 계단길이다. 더욱이 지칠 대로 지친 아이들의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할 거리를 세 시간도 넘게 걸어야 했다. 지리산 종주의 끝은 천왕봉 정상이 아니라 하산 후 주차장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중산리에서 완주를 자축하며 파이팅을 외쳤지만,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렸고, 온 몸에 붙인 파스가 누더기처럼 너덜거렸으며, 땀에 절은 옷에서는 쉰내가 풀풀 났다. 아이들은 "지리산은커녕 '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끝내 해냈다는 성취감에 표정만큼은 모두 밝았다. 인근 시골 목욕탕에 들러 피로를 털어낸 후, 밤늦게 광주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가 다 됐다.

녀석들의 반응, "하산 후 목욕이 최고"... 의외네

지리산 종주의 끝은 천왕봉 정상이 아니라, 하산 후 주차장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빨리 목욕탕에 가자고 아우성이었다.
▲ 중산리에서 찍은 완주 기념사진 지리산 종주의 끝은 천왕봉 정상이 아니라, 하산 후 주차장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빨리 목욕탕에 가자고 아우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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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벨소리 때문에 잠이 깼다. 방학 보충수업 기간인데, 학생회 간부들이 대부분 결석했다는 연락이다. 피로가 쌓인 데다 밤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에 아직 자고 있을 게 뻔하다. 그러나 오후 들어 스마트폰이 바빠졌다. '정신이 돌아온' 아이들이 자신들의 소감을 사진에 담아 보내왔기 때문이다.

답장 삼아 아이들에게 이번 산행에서 무엇을 얻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들이 돌아왔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거나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였다'는 등의 '근사한' 답변을 내심 바랐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산 후 목욕했던 기억이 가장 좋았어요. 낡아빠진 구식 목욕탕이었지만,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거든요. 개운한 그 느낌,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질 못했어요."
"장터목에서 끓여먹은 라면 맛이 최고였어요. 김치도, 계란도,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이었어요."

"벽소령 대피소 아래 약수터에서 등목을 한 기억이 단연 으뜸이죠. 졸졸 나오는 계곡물을 코펠에 받아다 그 물로 등목을 했는데, 얼마나 시원하던지 하루의 피로가 단번에 날아가는 듯 했어요."
"아무렴 정상에 올랐을 때의 강렬한 기억만한 게 있을까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힌 표석을 보자 갑자기 뭉클해지던데요."

고개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한 아이가 똑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선생님은요?"

개인적으로는 벌써 열 번째 종주라 완주가 주는 느낌은 딱히 새로울 게 없었다. 순간 함께한 스물한 명의 이름과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갔다. 이번 산행의 가장 큰 수확이 바로 이것이라고 답했다.

기실 2학년 간부들은 수업시간에 만나는 까닭에 익숙하지만, 이번 산행 전까지만 해도 1학년 아이들은 이름은커녕 얼굴조차 낯설었다. 그런데, 이젠 그들의 성격과 말버릇, 식성까지도 알게 됐으니 함께 땀 흘린 보람이 있었다. 몇몇 1학년 아이들이 가끔 나를 '선생님'이 아닌 '형'으로 부르는 실수를 하곤 했는데, 그만큼 이번 산행으로 아이들과 친해졌다는 뜻이리라. 그나저나 대화 도중 한 아이의 상태 메시지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지리산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산이 아니다.'

천왕봉을 코앞에 두고 학생회장 형의 손에 이끌려 하산했던 그 1학년 아이가 남긴 것이다. 그에게도 이번 산행이 가장 '임팩트' 있는 경험이었다는 걸 고백한 셈인데, 재도전 의사인지, 다시는 안 가겠다는 뜻인지 알쏭달쏭할 뿐이다.


태그:#지리산 종주, #학생부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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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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