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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토론? 뭘 얼마나 더 우려먹으려고 맨날 저 소리고? 서민들 살림살이 다 끝장 내놓고 저희끼리 모여 옥수수 까먹으면서 경제가 큰일이라고?"

친구와 소주 한잔하기 위해 들른 선술집. 에어컨도 켜지 않고 TV를 쳐다보던 아주머니. 일행이 들어서자 혼잣말 한마디 툭 던지고 채널을 돌려 버린다. 에어컨 대신 벽걸이 선풍기를 켜면서 메뉴판을 내밀고는 주방으로 들어가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어둡다. 우리가 첫손님이라는데 술집을 나올 때까지 새로운 손님은 들지 않았다.

경제단체장들과 머리 맞대고 끝장토론?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내수활성화를 위한 민관합동 집중토론회.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내수활성화를 위한 민관합동 집중토론회.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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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부진, 최악의 경기라는 말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가계부채가 1000조에 달하며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고,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불'이라는 제목을 단 뉴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온라인 공간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서민들은 줄여서 사는 것이 아니라, 줄이고 빚내서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내수시장은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빚더미에 올라 앉아 사는 서민들, 멈춰버린 내수시장, 가뭄에 연못 바닥에서 숨만 꼴딱거리며 목숨을 연명하는 물고기 신세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의 대응은 안일하다 못해 의도적인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빚더미 서민경제, 멈춰버린 내수시장을 두고 내놓은 진단과 처방은 상식과는 전혀 상반되기 때문이다.  아전인수식 진단과 오히려 서민 경제를 더 큰 나락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는 처방.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은 둘째치고라도 그 진정성을 의심 받기에 충분하다.

언론은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내수활성화를 위한 민관합동 집중토론회'를 끝장토론이라 불렀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한덕수 무역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 경제 4단체장을 포함 관광공사 사장과 정부 관료 42명의 난상토론은 야식으로 찐감자와 옥수수를 먹으면서  자정을 넘겨 9시간 45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소비 활성화와 부동산 경기 활성화, 투자 활성화 세 가지 주제로 나눠 진행된 이번 토론은 세계 경제 침체를 내수 활성화를 통해 사전에 대비하자는 의도로 마련되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재건축부담금 부과 중지 등은 5·10 부동산대책에서 DTI(총부채상환비율)규제 완화와 함께 빠져있었다. 효과를 예측할 수 없을 뿐더러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었다. 최근까지도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인 1000조에 이르러 DTI 규제를 풀면 국제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도 있다며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끝장토론'에서 부동산 경기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마지막 남은 규제 장치마져 풀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17번 반복된 부동산 대책 '하우스푸어 돌려막기'

ⓒ 오마이뉴스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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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4년, 17번의 부동산 정책이 쏟아져 나왔고,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투기와 집값 안정을 위한 안전 장치는 하나 둘 해체되었다. 설명은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을 위한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추락하는 집값을 떠받치려는 거품 만들기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정책들은 서민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을 제공하는데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 아니라, 거래활성화가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극심한 전세난에 내놓은 대책이 건설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임대사업자에게 세제 혜택을 늘리는 조치인 점 하나만 보더라도 이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우스푸어 계층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 아닐까? 2008년 6월 11일 취득세, 등록세를 감면하고 1가구 2주택 중복 허용기간을 늘리면서 미분양 대책은 마지막 기회라는 솔깃한 유혹으로 집사기를 유도했다. 돈 없는 서민에게 은행의 대출을 알선하고, 경제지와 보수 언론들은 곧 집값이 상승될 것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반복적으로 흘려 보냈다. 그래서 털컥 집을 산 사람들, 끝도 없이 떨어지는 집값과 은행 대출이자 압박에 사면초가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우스푸어의 비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원금 상환과 이자를 같이 갚아야 할 시기는 점점 더 임박해져 오고 있고, 세계적 경기 침체는 저금리 기조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집값 올리기 정책은 전혀 약발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5.10 부동산 대책에서 내놓은 강남 3구 투기지역해제 조치조차도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거품으로 지탱되어왔던 집값이 제자리를 찾는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정권이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이런 시기에 대출 받아 집 사기를 권할 것이 아니라,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하고, 부동산 정책을 투기와 투자의 개념보다 주거의 개념을 중심에 두고 바꿔놓아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집값 떠받치기 정책은 이런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고 결국 집값의 하락 속에 하우스푸어 계층만 대량으로 양산하고 말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끝장 토론에서 만들어낸 DTI 규제 완화나 1가구 다주택자 양도세 부담 완화는 또 다른 집값 띄우기 일 뿐이며, 하우스푸어 돌려막기에 지나지 않는다 할 수 있다.

서민들 살림살이 끝장날까 두렵다

서민들 주머니에는 현재 돈이 없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오르는 공공요금, 물가 폭등, 유가 폭등에 '오르지 않는 것은 아빠 월급뿐' 이라는 웃지 못 할 농담은 사실이 되었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라고 하지만 삼성을 위시한 대기업은 해마다 전년도 기록을 갈아 치우는 흑자 행진이 계속되고 있고,  대기업 자본은 골목시장을 유린하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 자본의 탐욕을 제어해야 할 정부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했고,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과 관련 오히려 기업의 편을 들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대형마트의 무분별한 확장에도, 시장의 자율 운운하며 영세상인 보호에 소극적이었으며, 정유사의 막대한 이익과 기름값의 절반이 넘는 유류세는 손볼 생각도 없이 알뜰 주유소를 만들어 상인들 간 갈등만 키웠다. 결국 747의 화려한 눈속임 공약으로 출발한 이명박 정권은 가계부채 1000조. 평균 가구당 5200만원의 빚더미 위에 서민을 올려놓았다. 대학 등록금 대출, 창업자금 대출, 자영업자 대출, 주택담보 대출. 주머니가 빈 서민들에게 정부가 한 일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노동에 부합하는 보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 대출 알선이었다. 17차례나 반복되었던 부동산 대책도 이런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켜 경기를 살리겠다는 발상, 위험하기 짝이 없다. 세계 어떤 나라도 집값에 거품을 만들어 경제를 부흥시킨 예는 없다. 미국의 서브프리임모기지론 사태의 교훈조차 답습하지 못한 이명박 정권. 경제 활성화의 해법이 고작 DTI 규제를 풀고 인구의 2.7%가 즐기는 골프장 소비세를 인하라니. 부자들을 위한 노력이 참 눈물겹다.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에 대한 비난에도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국민들의 고통을 감내하라던 이명박 정부.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책으로 고사된 내수 시장, 이제사 살리겠다는 발상도 어이없지만, 더욱 이해 안 되는 것은 탐욕의 주체였던 경제단체장들과 머리 맞대고 부동산 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런 블랙코미디가 없다. 한참 유행하는 광고처럼 잘못되어도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 9시간 45분이나 옥수수와 찐감자를 먹으면서 했다는 내수활성화 집중토론회 끝장토론. 발표된 대책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서민들 살림살이 끝장낼까 두려운 이유다.


태그:#하우스푸어, #부동산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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