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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와 전주대 사이의 협상이 타결됐다. 파업한 지 65일 만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북평등지부(평등지부)는 지난 11일 전주대와 교섭을 벌여 '노동조합 10대 요구안'중 5개 조항에 합의했다. 만족할 만한 성과라고는 할 수 없지만 파업은 종지부를 찍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6일, 현장으로 복귀했다.

이번 파업에서 34인의 청소노동자와 함께했던 민주노조 전북평등지부. 그 가운데는 49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던 이태식 지부장이 있다. 현재, 단식을 중단하고 전주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 지부장을 지난 13일 만나봤다.

49일의 단식을 끝내고 치료중인 이태식 지부장.
 49일의 단식을 끝내고 치료중인 이태식 지부장.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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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한번 해보세요. 해볼 만합니다."

건강상태를 묻는 첫 질문에 이 지부장은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얼굴은 생각보다 밝았다. 현재 미음과 효소 엑기스로 식사를 대신하고 있는 이 지부장은 단식보다 더 어렵다는 '보식'의 단계를 밟고 있었다. 단식투쟁을 시작한 지 47일째 되는 날, 이 지부장은 어지럼증과 구토를 호소했다. 이후 이 지부장은 서울 인근의 한 병원으로 보내졌고, 단식 시작 49일째 되는 날 단식을 중단했다. 현재 그는 전주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파업 협상안이 타결된 것에 대해 '축하' 인사를 건네자 이 지부장은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두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통해 어렵게 얻어낸 결과였기에 당연히 기뻐해야겠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전주대 측에서 우리 노동자들을 안쓰럽게 생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자신들을 향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전주대(원청) 측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줬다는 입장이에요."

이번에 평등지부와 전주대가 합의한 5개 조항은 ▲ 일방적 임금과 노동조건 저하 금지 ▲ 시급 4590원에서 4700원으로 인상(7월부터) ▲ 용역계약서상 책정한 인력 유지·차별없는 업무배치 ▲ 학교 내 청소노동자 휴식공간 확보 ▲ 파업과 관련한 민·형사 소송과 부당노동대우 금지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바로 노조 측에서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노조 존재의 인정'이다. 현재 전주대·비전대에는 2개의 노조가 있다. 지난해 6월,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설립된 이후, 고용업체인 온리원 측에서는 노조를 하나 더 만들었다. 노조 인원도 며칠 새 2백여 명으로 늘었다. 온리원 측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주장하며 '어용 노조'와 얘기하려 할 뿐, 민주노총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지부장은 "이것이야말로 복수노조법을 악용하고 있는 전형적 사례"라고 파업 초기부터 강하게 비판해왔다.

'단식', 없는 자들의 가장 절박한 항변

전주대 총장실 앞 계단에 걸려있던 현수막.
 전주대 총장실 앞 계단에 걸려있던 현수막.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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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는 '파업'이라는 말이 '바겐 세일'이라는 말만큼 흔해져 버린 느낌이다. 파업하면 으레 '시위'가 나오고, 머지않아 '단식'이 등장한다. 단식은 곡기를 끊는 것이다. 즉, 누군가의 목숨을 거는 일과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단식'이라는 무언의 항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 왜 하필 단식이었죠? 단식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지난 5월 7일 파업을 시작하고, 5월 8일 총장과 면담을 했어요. 그리고 5월 10일, 다시 만났는데, 총장에게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능력이 없는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단식에 들어갔죠. 총장 측은 온리원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학교 운영이 힘들다고 하더군요.

저희도 물론 알고 있죠. 그냥 저희 노조를 인정해달라는 것뿐인데 하지 않더라고요. 파업한 뒤 일주일 지나니까 학교 측에서 아예 나 몰라라 하더군요. 그때부터 단식을 하게 됐죠. 단식은 우리처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절박함을 표현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니까요."

- 전에도 단식한 적이 있었나요?
"전에 두 번 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길지는 않았어요. 47일쯤 되니까 구토 증세가 나타나더라고요. 만약, 열흘쯤 더 굶어서 해결 국면에 접어든다면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단식 더 가봐야 소용없겠더군요.

지금에 와서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얘기지만 남상훈 (전북고속) 위원장이 49일 단식했잖아요. 남상훈 지부장이 단식을 마쳤던 49일에 맞춰 저도 49일째 그만뒀죠. 그래야 이후에 단식하는 사람이 덜 힘드니까요. 어떤 사람이 (단식을 하다가) 49일 못 넘겨봐요. 세상 사람들이 어디 꿈쩍이나 하겠어요? '(이태식도 49일을 했는데) 그 정도도 못하면 단식이 아니지'라면서요. (웃음) 그런데 그런 일(단식)들은 처음부터 없어야겠죠."

- 서울 밀알학교에서 12일간 노숙 투쟁을 했습니다. 홍정길 신동아학원 이사장(서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에게는 왜 갔나요?
"갈 데가 없어서요. 처음에 온누리교회에 갔는데 전주대 총장을 비롯한 신동아학원 이사들이 기미도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홍정길 이사장이 설립한 밀알학교에 찾아갔죠. 사실, 홍정길 이사장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는 신동아학원의 그냥 상징적인 존재거든요.

그런데 홍 이사장도 이사들로부터 보고 받는 입장이었죠. 나중에는 자기도 답답했는지 이사회 측에서 보내준 자료를 제게 보여주면서 '이것 좀 봐라, 내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하더군요. 그럼에도 밀알학교에 갔던 이유는 전주대·비전대 측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그럼 (전주대 측이) 홍 이사장에게 미안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설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요."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동자 탄압의 대표적 사례"

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 중 한 조합원. 그녀는 태어나서 대자보를  처음 써보았다고 말했다.
 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 중 한 조합원. 그녀는 태어나서 대자보를 처음 써보았다고 말했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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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식 지부장은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제일 심각한 원인으로 '교섭창구 단일화'를 꼽았다. 복수노조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긴 해도 복수노조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게 이 지부장의 생각이다. 현재의 교섭창구 단일화 체계 아래서는 사용자가 노조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지부장은 "이런 교섭창구 단일화야말로 사용자가 노동자를 탄압하는 법의 악용 사례"라고 강조했다.

"창구단일화를 할 경우, 사용자가 시간 끌려고만 하면 두 달 정도를 끌 수 있어요. 두 달이면 노조는 다 깨집니다. 민주노조가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짧은 시간에 투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창구단일화를 악용해 시간을 끌자고 하면 할 수 있어요. 8월에 민주노조 총파업이 계획돼 있는데, 창구단일화를 없애는 노동법을 개정해달라는 것을 주로 요구할 계획입니다."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은 애초에 한 달을 예상했단다. 그러나 어느새 두 달을 넘겨버렸다. 이 지부장은 "사측이 해결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을 때는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함께 해준 34인의 조합원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지난 파업 중에, 34인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 몇 분을 만나봤습니다. 그분들을 만나보니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결의가 단단하기도 했습니다. 노조가 뭔지 잘 모르셨던 분도 계셨는데... 그분들을 이끌어가시는 입장에서 어떠셨나요?

"많이 고맙죠. 저 혼자만 짊어지고 가던 짐을 34명과 나눠서 진 느낌입니다. 노조에 대한 인식,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아주머니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이 시급을 4700원으로 올린 것보다 더 큰 수확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보통 사람들한테 '노조 만들어서 권리 찾아야 한다;고 백 번 말하는 것보다 평범한 아주머니가 한마디 해주는 게 훨씬 더 가슴에 와 닿거든요. 앞으로 그분들이 제 역할을 대신 많이 해 줄 거라고 믿어요."

- '보식' 중에 이런 질문이 죄송하긴 하지만...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이번 협의사항 중에 시급 인상 건이 있었죠. 현재 4593원에서 4700원으로 인상하는 거요. 한 달에 2만 원 정도 올라가는 건데, 그렇게 하면 학교 측에서는 약 2천만 원 정도 더 지출됩니다. 그런데 전주대 예산이 얼마인 줄 아세요? 1800억 원이에요. 그중에서 2천만 원이입니다. 그거 하자고 싸운 건 아닌데... 우리의 최종 목표는 노조를 더욱 굳건히 세우는 겁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만약 학교 측에서 우리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어물쩡 넘기려 했을 때는 또 파업을 하겠죠."

- 두 달 동안 너무 고통스러우셨을 텐데...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 난 이상 파업을 두 번 다시 하기 싫을 것 같은데요?
"물론 힘들죠. 그런데 파업은 여성들이 아이 낳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해요. 낳을 때는 아파죽겠다 싶어서 다시는 (출산)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또 아이를 낳잖아요. 파업도 이런 출산의 고통과도 같지 않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그가 노동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8년 전, 평등지부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출산 휴가 간 직원 대신 일을 하게 된 것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는 이태식 지부장.

"노동운동을 왜 하냐면... '정' 때문에 해요. 제가 노동운동을 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정말, 그냥 정 때문에 합니다."

이 지부장은 곡기를 끊었던 49일 동안 먹고 싶은 음식은 없었지만 딱 하나 몹시 그리웠던 게 있었다고 한다. 바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눠 마시는 술 한잔이었다. 그는 몸이 회복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막걸리를 나누고 싶단다. 그게 지금 이 지부장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태그:#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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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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