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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5·16 쿠테타에 대해서 했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박 의원은 이 날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어 박 의원은 "당시 가난하고 안보적으로 위험했던 상황이었고, 나라의 발전이라든가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5·16이 초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 당시 밝힌 "5·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라던 기존의 입장과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이에 각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민주통합당 대권주자 문재인 의원은 "참담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은 독재에 항거했던 민주화 운동이며, 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상식이다. 이런 '역사적 진실'에서 너무나 비껴서 있는 '비상식적 역사관'이 불러올 미래의 암담함을 심히 걱정한다"며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도 발표한 논평에서 박 의원의 역사관을 지적했으며,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를 비롯한 학계도 거들었다. 심지어 박 의원과 같은 새누리당 소속인 김문수 경기도지사, 임태희 후보, 이재오 의원도 박 의원의 역사관을 비판했다.

박근혜 의원 발언에 누리꾼들 술렁, 고 스베틀라나 인용해 비판

누리꾼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지난 17일 제헌절 하루 동안에만 수백차례 박 의원의 발언이 리트윗되면서 퍼져나갔고, 대다수는 고 스베틀라나의 발언과 비교하며 비판하는 모습이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나도 공범자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내가 그 잘못을 안고 가겠다" - 고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
"5·16은 아버지의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

지난 2011년 사망한 스베틀라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악명높은 독재자, 스탈린의 딸로 유명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1926년 스탈린과 그의 둘째 부인 나데즈다 알릴루예바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67년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 뒤 공개적으로 소련 여권을 불태우는 등 파격적 행보를 이어간 스베틀라나는 평생 여러권의 회고록을 써냈으며, 누리꾼들에 의해 인용된 발언은 그 중 하나인 <스베틀라나의 고백>의 한 부분이다. 책에 기술된 부분을 직접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가 독재할 때, 여러분은 왜 침묵하셨습니까? 그건 공모입니다. 나도 아버지가 잘 하는 줄 알고 침묵했습니다. 나도 공모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이제 아버지에 대한 비판과 욕을 나에게 하십시오. <스베틀라나의 고백 中에서>

그녀는 이후에도 독재자였던 스탈린과 소련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스탈린이 자신의 아버지였음에도, 소련이 조국이었음에도 감싸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에 누리꾼들의 반응은 독재자를 아버지로 두었던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박 의원의 역사의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정말 비교되네요. 눈에 잘 들어옵니다" - @sojun*****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 @hans****
"이런 것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이 새겨들어야 할텐데요" - @mett*****
"스탈린의 딸 만도 못한 ㅂㄱㅎ" - @dog***

박 의원의 발언과 대비되는 스베틀라나의 발언이 비교되는 글들이 온라인으로 퍼져나감으로써, 박 의원에 대한 누리꾼들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마저 "5·16은 쿠테타"...박근혜 사면초가

현재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채택되어 쓰이는 역사 교과서에는 대부분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이 일으킨 쿠테타로 쓰여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교과서들이 좌편향이라 문제라던 보수단체가 편찬한 대안교과서에는 어떻게 나와있을까. 뉴라이트 성향인 교과서포럼에 의해 편찬된 <대안교과서-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보았다.

<대안교과서-한국 근현대사>는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북한 현대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서 5·16에 관한 내용은 '5부-근대화 혁명과 권위주의 정치'이고, 관련부분 저자는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와 김세중 연세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나와있다.

단원의 가장 첫번째 단락인, '5·16 쿠테타'에서는 제목에서부터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비합법적인 정치활동'을 뜻하는 쿠테타가 명시되어 있다. 해당 교과서에서는 이후에도 23차례나 '쿠테타'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그 중 한 곳은 "5·16은 일부 군부 세력이 헌법 절차를 거쳐 수립된 정부를 불법적으로 전복한 쿠데타"라고 기술하고 있다. 박 의원의 지지세력 중 하나인 뉴라이트마저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동을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행위라고 명확하게 의견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독재자 아버지를 둔 박근혜 의원...두둔이 아닌 반성이 필요하다

박근혜 의원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녀가 독재자였던 박정희의 딸로 태어난 것은 그녀의 의지 밖의 문제이고,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아버지의 과오를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그녀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라고.

적극 동의한다. 그녀가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유신독재를 펼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태어난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녀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 점에 대해서는 박 의원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박 의원이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되려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박 의원이 "유신 체제하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죄송하다"는 사과를 한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5·16과 유신독재의 행위만큼은 정당했다"는 발언은 당시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유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으며, 헌법질서와 민주주의를 어지럽힌 사건을 옹호함으로써 역사관을 의심받을 수 있는 일이다.

어느 누리꾼은 댓글에서 "박근혜 의원에게 스베틀라나의 회고록과 헌법 전문을 읽어보길 권한다"고 적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분명 '4·19 민주정신을 계승한다'고 적혀있고, 이러한 민주정신을 짓밟은 사건이 바로 5·16 쿠테타였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진정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될 자격을 갖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나 자기 두둔이 아닌 진심어린 반성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정치인이 아닌 삶을 살아갔던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가 해낸 것처럼 말이다.

박 의원의 대선출마 슬로건처럼, 대통령의 자리는 '국민의 꿈'을 이루기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곳이지, '내 꿈, 혹은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곳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박 의원이 지금이라도 진정성있는 반성과 국민들을 향한 사과를 하여,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과거를 청산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태그:#박근혜, #스베틀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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