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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관여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상 일부 사항만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지침'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1998. 2. 23. 노동부예규 제369호로 개정된 것. 제4조, 제8조 제1항 및 제17조).

헌법재판소는 산업연수생 관리지침이 외국인근로자의 권리에 대하여 내국인 근로자와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판결함으로써, 그동안 '현대판 노예제도'라 불려왔던 '산업기술연수생 제도'에 대한 역사적 단죄를 내린 것이었다.  

2007년도 헌법재판소 판결은 당시 산업연수제가 이미 폐지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판결은 근로의 권리에 관한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명확히 한 판결이었고, 산업연수제가 위헌적 토대 위에서 이익 집단의 배를 불려 왔었던 악한 제도였음을 확인해 준 판결이었다.  

산업연수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과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산업연수생 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며, 산업연수제 폐지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었다. 숱한 인권침해 사례와 송출 비리 등으로 인한 비등한 폐지 여론에도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던 산업연수제는 지난 2004년 8월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사실상 폐지되어 이주노동자 차별과 인권침해를 당연시하던 야만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제보다 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무시하고, 산업연수제보다 더 교묘하고 악랄하게 이주노동자의 권익을 짓밟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이주노동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야만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주인권,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고용허가제는 시행 당시부터 근무처 변경 제한 등과 같은 독소조항을 갖고 있어서 산업연수제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지만, 그나마 고용허가제가 산업연수제와 달리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다는 명분 때문에 일부 비판적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관련단체들은 고용노동부가 8월 1일 자로 시행하기로 고지한 내용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 이는 그동안 고용허가제의 독소 조항이라고 불리던 사업장 이동 제한을 강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단순히 제도의 퇴행이나 산업연수제로의 회귀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8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내용은 '사업장 변경 신청 외국인 구직자' 관련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고용노동부 안내문에 의하면, 우선 고용노동부 고용센터는 이주노동자 구직자에게 구인 사업장 명단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 말은 이주노동자는 구직 신청을 할 수는 있지만, 구인업체를 전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이는 상식적인 선에서, 구직을 하는데, 구직하고자 하는 업체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다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인데, 이게 고용노동부가 야심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의 핵심이다. 이어지는 구직 과정의 유의사항을 보면 더 더욱 할 말을 잃게 한다.

1. 구직자인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에 먼저 연락을 할 수 없고, 사용자의 연락에 의하여만 채용 절차가 진행되게 된다.
2. 따라서 구직자는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할 때,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한 전화번호 등을 반드시 기재하고, 사업장 변경 기간 중에는 연락처 변경도 하지 말아야 한다.
3. 이주노동자 구직자는 3개월간의 구직 기간이 끝날 때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반드시 출국해야 하고, 고용센터의 알선에 따른 사용자의 면담 요청 등에 적극 응해야 한다.
4. 만약 합리적 이유(합리적 이유란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없이 구인 사용자의 면접 요청이나 채용 의사를 거부할 경우 2주간 알선이 중단되는 불이익을 당한다.
5. 구직 희망자는 관할 고용센터에서만 사업장 알선을 받을 수 있다.

알선제도 변경에 따른 외국인 구직자 유의사항에 대해 적혀 있다.
▲ 사업장 변경 신청 외국인 구직자 안내문 알선제도 변경에 따른 외국인 구직자 유의사항에 대해 적혀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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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사업장 변경 신청 외국인구직자 안내문에 나와 있는 '외국인 구직자 유의사항'을 천천히 읽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는 노예다'라고 공포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니 건성으로 읽는다 해도 과연 21세기 대한민국 정부가 발표한 안내문인지 몇 번이나 묻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반인권적인 내용이라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 옮길 생각, 꿈에도 꾸지 마!

이번 조치를 요약하면, 이주노동자는 근로조건이고 뭐고 따지지 말고 회사 옮기지 말고, 한 곳에서만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사업주들은 줄기차게 구인난을 핑계로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에 불만을 제기했다. 근로계약이 만기된 이주노동자들이 근로조건이 좀 더 나은 곳으로 옮기려할 때마다 발목을 잡고자 했던 사업주들은 이번 조치를 통해 사업장 변경 의사를 갖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운신의 폭을 줄일 수 있게 됐다. 결국 이번 조치는 근무처 변경에 부정적인 고용주들의 입장만을 고용노동부가 적극 수용하고, 이주노동자의 권익은 나 몰라라 하는 태도다.

지금까지 고용센터에서는 사업장 변경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구직자 명부를 갖고 있는 사업주들과 마찬가지로 복수의 구인사업장 명단을 제공했다. 그러면 사업주나 이주노동자가 서로 연락을 하여 조건이 맞으면 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국내에서의 이주노동자 근로계약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런 식의 계약을 원천 봉쇄하고, 사업주들에게만 일방적으로 구직자 정보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마치 왕조시대에 간택을 기다리는 여인처럼 사업주의 연락을 마냥 기다려야 하고, 간택 받지 못한 자의 운명이 쓸쓸한 퇴장과 함께 이어지는 죽음이듯이 사업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질곡의 '미등록'이라는 멍에가 지워지게 된다.

이 정도 되면 사업장 변경을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이나 진배없다. 게다가 사업주가 채용하고자 하는데 이주노동자가 거부하면 2주 동안이나 알선을 중단하겠다고 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사업주에게 철저히 종속시키겠다는 공언이다. 국격을 논하는 한 국가의 정부부처가 내놓은 안내문이라기보다는, 밉보이면 국물도 없다고 협박하는 시정잡배와 다를 바 없는 안내문이다.

황당한 제도 변경 사유의 역설-브로커 개입 제도화하려고?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구인 사업장 명단을 이주노동자들에게 발부해 주면, 사업장 변경 과정에 브로커들이 개입하여 고용허가제 공공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즉 사업장 변경 브로커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선 고용노동부가 고용허가제 근로계약 만기자가 증가함에 따라 가장 우려하는 것이 미등록자 증가인데, 과거 산업연수제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업장 이동이 엄격하게 제한될수록 미등록자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 실시 직전 연수생 출신 미등록자가 전체의 60%를 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고용노동부는 미등록자가 대폭 증가할 여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실상 이번 조치는 사업주들의 이주노동자 구인신청 관련 업무 등을 대행하며 사업주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브로커들에게 사업주와 이주노동자 양측으로부터 이권을 챙길 수 있는 구조만 만들어 줬을 뿐이다. 사업주의 연락만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된 이주노동자들은 3개월 내에 구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초조한 마음에 브로커를 찾을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브로커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구인구직 과정에 적극 개입하려 들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점에서 고용노동부의 조치가 한심하다 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가능하면 근로조건이 좋은 곳으로 근무처를 이동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제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구촌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요, 비열한 인종차별이다. ILO나 앰네스티를 비롯한 국제기구로부터 다시 현대판 노예제도를 운영하려 하느냐는 조롱을 받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위헌 판결받은 제도도 이렇게 악하진 않았는데

헌법재판소가 2007년 8월에 산업연수제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을 당시, 헌재 판결 후속 작업으로 산업연수생에 대한 기본권적 노동권을 억압했던 주체들에 대한 단죄나 책임자 문책 등이 이뤄져야 했으나 유야무야된 점은 지금처럼 고용허가제가 퇴행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압류, 급여 강제적립과 통장 압류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탈을 막으려 했던 산업연수제는 그 과정에서 숱한 인권침해를 일으키며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하여 내국인 근로자와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위헌 판결을 받았던 '외국인 산업연수제도 운영에 관한 지침(중소기업청)'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우선 연수업체 자격요건을 보면, 5인 이상 300인 이하 중소기업에 한하고 있어서, 지금처럼 내국인을 한 명도 구하지 못해 이주노동자만 있는 업체는 이주노동자를 쓸 수 없었다. 그리고 연수업체는 기숙사 및 3식 무료 제공을 의무적으로 요구받았고, 유망 중소기업이나 매출액중 수출비중이 20% 또는 연간수출실적이 50만 달러 이상인 업체, 중소기업 우수제품마크 인증업체, ISO9000 인증획득업체, 품질경영 우수업체, KS표시 허가업체 등의 기준에 부합할 경우 누계 점수에 따라 연수생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현재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업체들은 산업연수생을 고용하던 업체들에 비해 더 영세하고, 근로조건이나 생활여건이 나쁘다. 더 열악해진 환경에 이주노동자들을 몰아넣고, 최소한의 권리마저 빼앗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제헌절을 보내며, 헌재가 위헌 판결을 했던 제도보다 못한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정부가 법을 제대로 지킬 의사는 있는지 묻고 싶다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관련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경기남부이주공대위'는 17일 오전에 과천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고용노동부가 고용센터를 통해 사업장 변경 신청 이주노동자에게 구인 사업장 명단 제공을 거부하겠다는 안내문을 배포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항의하며, 이번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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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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