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온 한문 공부를 하는 사람. 올레길 여행 갔다가 머무른 제주 강정마을에서 삶이 변하게 되었고, 그 후 쌍용자동차 분향소에서 들은 이야기로 공장노동자에 대한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생산직 여성 노동자의 삶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직접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기자 말> 

7월 9일 드디어 첫 출근이다. 안전교육, 위생교육 등을 이유로 8시에 출근하라는 말에 도착해보니 담당자는 아직 출근 전이었다. 10여 분 동안 들은 교육의 결론은 본인 부주의로 다쳤을 때는 공장에서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이었고, 그 후 내밀었던 문서는 공장의 사정에 따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야간업무를 한다는 동의서였다. 주간으로 취업했다는 내 말에 담당자는 원래 형식적으로 받는 동의서라며 날 안심시켰다.

담당자에게서 위생복을 받고 따라 들어가니, 현장 입구에서 위생이 가장 중요하다며 락스 물이 풀어진 세족대와 세면대에서 소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식품 공장이라 위생이 가장 중요하며, 품질 검사팀에서 불시에 검사를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몇 번의 에어 샤워기를 통과한 뒤 현장에 들어가니, 출근 카드를 찍어야 한다며 출근카드 찍는 법을 알려주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벽면에 붙어 있는 이어캡 착용 필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이어캡을 발급받지 못했다. 현장에서는 사람 목소리와 기계 소리가 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공장현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이모라고 부른다면서 본인을 조장이모라고 부르면 된다고 소개한 파란 모자를 쓴 조장이모는 기본 오후 10시 퇴근이라고 말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일주일을 출근한 뒤다. 지금 생각해보면 취업공고와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특히 기본적인 퇴근시간이 달랐다. 본인들은 인력관리 때문에 아가씨보다는 아줌마를 원하고 6개월 이상 장기알바를 원한다고 말했다. 6개월 후에 정직원으로 채용된다는 아웃소싱업체의 말과 다른 말이었다.

"사람이 없어서 한 사람이 두 라인을 봐야 돼요"

내가 하기로 했던 업무는 맛살을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맛살을 포장재에 넣는 이모의 옆에서 쌓이는 맛살을 한번에 4개를 포장할 수 있는 실링기로 옮긴 후 진공 포장, 포장된 맛살을 멸균기로 들어가는 레일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맛살 생산 기계에는 재료를 넣은 순간부터 맛살이 나올 때까지의 속도가 표시되는 전광판이 걸려 있었고, 벽면에는 각 생산 라인의 속도가 표시되는 전광판이 걸려 있었다.

맛살 포장현장에서 가장 늦게 입사한 사람은 25살의 도연(가명)이었다. 입사 3주차인 도연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공장에서 일을 해왔고, 9월까지만 일한 뒤 미용학원에 들어가 헤어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오래 근속한 사람은 조장이모로 20년이 되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자주 그만두어 인력난에 힘들다면서 오래 일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위생복을 입고 생산라인 앞에 늘어선 여성 노동자들.
 위생복을 입고 생산라인 앞에 늘어선 여성 노동자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맛살을 포장하는 데에도 요령이 있었고 네 개의 맛살을 포장하는 생산라인에 있는 이모님들은 날 보며 새로운 사람이 왔다고 이것저것 물었다. 내가 본 이모님들은 말을 하면서도 손을 가만두지 않았다. 맛살을 포장하다가도 중량이 모자라거나 성형이 잘못되는 등의 불량이 나오면 이모들은 기계를 멈추고 이 맛살의 포장지와 속 재료를 구분하는 작업을 했다.

이렇게 불량이 된 맛살을 따로 모으라고 말해준 도연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도 말해주었다.

"사람이 없어서 한 사람이 두 라인을 봐야 돼요."

첫날인데다가 한 번도 공장 일을 해본 적 없는 내게 빠르게 돌아가는 공장 일은 낯설었고 손은 당연히 느렸다. 원래 집에서 살림을 해도 느릿느릿하기로 유명한 나였기에 공장의 일은 정신이 없었다. 그런 나를 다른 이모님들이 커버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은 항상 같았다.

"그만두면 안 돼. 알았지?"

일 못한다 소리 안 듣던 나인데... '이모'들은 정말 대단

선풍기와 에어컨이 작동되고 있었지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내 몸과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위생복은 어느새 땀범벅이 되었고 화장을 하고 나온 내 얼굴은 땀에 지워져 번들거렸다. 한참 일하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은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였다. 위생복을 벗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탈의실로 들어가니 방바닥이 뜨끈했다.

"이모들이 바닥에 찜질을 해야 몸이 풀리신대요."

도연이의 설명이었다. 바닥에 누운 이모들은 잠을 청하거나 옆에 앉은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 이야기, 자식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이었다. 또 새로 온 나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히 섞여 나왔다. 도연이는 그동안 본인이 일했던 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잔업이랑 특근을 해야 돈이 돼요. 다른 데는 쉬는 시간이 있는데 여긴 없어요. 여긴 그래도 이모들이 텃세가 심하지 않고요. 다른 데는 진짜 심한 말 많이 하거든요. 본인이 눈치 빨리 움직이면 일하기 편해요. 근데 힘들긴 힘든가 봐요. 저 들어온 지 3주 됐는데 5킬로그램 빠졌어요. 언니 이런 일 처음 해봤죠? 언니 대학 나왔어요? 대학 나온 거 같은데. 언니 오래 다닐 거죠? 나 이모들이랑만 있다가 언니 들어와서 좋은데."

안 그래도 혼자 공장에 들어와서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도연이가 옆에서 이것저것 얘기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어디서 일 못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않는 나인데 이곳의 이모님들은 내가 볼 때 정말 대단했다.

실링기가 맛살을 포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5초. 그동안 1㎏·500g짜리 맛살은 한 번에 4봉지, 275g·300g짜리는 8개, 150g·160g짜리 맛살은 10개씩 포장하라는 설명을 들었다. 실링기는 양쪽을 왔다 갔다 하는 기계였는데 한쪽이 포장되는 중에 다른 쪽에 맛살을 포장할 곳에 놓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진공포장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지연시키거나 멈추게 되면 내 옆에 포장될 맛살들이 성처럼 쌓이고는 했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첫날 근무가 끝났다. 근무가 끝난 시간은 6시. 첫 근무이기 때문에 일찍 보내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다른 공장사람들은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올라갔다. 그날 하루 나는 4만 원을 벌었다.


태그:#공장, #여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