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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친절은 한국사회를 파괴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유명백화점 명품관 모습.
 강요된 친절은 한국사회를 파괴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유명백화점 명품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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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상식이 됐다. 이 말은 사실일까? 손님이 왕인지 아닌지는 각자 혈통을 따져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왕은 카트를 밀며 장을 보지 않는다. 종업원과 옥신각신 다투지도 않는다.

'손님은 왕'이란 말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일본 상인들 사이에서 격언처럼 사용되어 온 말이기도 하고, 피터 드러커가 경영학계에 널리 퍼뜨린 말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아예 '고객은 왕'을 넘어 '고객은 신'이라는 말까지 쓰고 있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은 일본 상인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일본의 한 경영학 정보 사이트가 '고객은 왕'과 '고객은 신'이라는 두 가지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은 일본 상인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일본의 한 경영학 정보 사이트가 '고객은 왕'과 '고객은 신'이라는 두 가지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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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누가 처음 썼는지는 알 길 없으나, 분명한 것은 '고객은 왕'이라는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꽤 많은 경영 전문가들이 이 말을 '왕'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낡은 것으로 치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객 비위 맞추기에 초점을 두는 마케팅 전략은 별 효과가 없을뿐 아니라, 자칫하면 사업 자체를 위험 속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이 애용하는 "고객이 '오케이' 할 때까지"라는 슬로건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표어는 한국 재계의 케케묵은 사고를 보여줄 뿐이다. 한국 기업들이 지겨울 정도로 '고객 서비스'를 강조하는 것은, 고객을 끔찍이 아껴서라기보다는 경영진의 무능함을 덮기 위해서다.

투자와 혁신을 통해 상품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판매원들이 얼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웃지 않아도 잘만 사간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보라. '서비스'는 커녕, 욕을 바가지로 먹고, 바가지로 얻어 맞으면서도 먹는다. 애플도 잘 보여 주고 있듯, 최근 부상하는 마케팅은 오히려 '고객이 안달할 때까지'다.

"고객이 '오케이' 할 때까지"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고객이 '오케이'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잘 알지 않는가. 고객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무례하고, 감정적이고, 탐욕스럽고, 뻔뻔한 존재인지 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안락한 회의실에 앉아 '고객 제일주의'를 기획한 장본인들이 고객의 욕설과 포효를 직접 받아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 험한 일은 박봉의 직원들에게 돌아가고, 경영진은 이들을 감시하고 처벌할 뿐이다. 고객이 '오케이'할 때까지.

친절 강요하는 사회

최근 한국에 와서 은행카드 발급신청을 했다. 거래하는 은행 지점에 들러 안내를 받으며 신청서를 써서 냈다. 자상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해 주어 고마웠지만, 마음만은 편치 못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했기 때문이다.

"친절한 게 왜 문제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정상적인 사람이므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자학 성향은 아닌 듯하니) 당연히 친절한 게 좋다. 문제는 이 친절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데 있다. 마지 못해 베푸는 서비스를 즐기면서 더 많은 걸 요구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가학 성향이다.

한국 기업이 자랑하는 '친절 서비스'에는 생존의 절박함이 묻어난다. 기업의 절박함이 아니라, 서비스를 베푸는 직원 개인의 절박함 말이다. 게다가 이 친절은 같은 친절로 보답 받지 못한다. 스스로 왕이라고 믿는 손님으로부터도, 직원의 명줄을 쥐고 있는 고용주로부터도.

한 서울 시내 유명 백화점에서 서비스 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여성들.
 한 서울 시내 유명 백화점에서 서비스 관련 교육을 받고 있는 여성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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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서울의 한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있던 일이다. 시식용 과일을 권하는 점원을 지나쳐 가는데, 손님 한 명이 샘플을 받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점원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손님은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뱉고, 점원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이유가 어떻든, 고객의 태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독이 든 과일을 받아 먹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손님과 점원이 만나는 건 어느 한 쪽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다. 고객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손님과 점원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서로 도움을 베푸는 계약관계에서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건 당연하다. 양자 모두가 사람이라면 말이다. 어느 한 쪽이 '왕'이고 어느 한쪽이 '종'일 수 없다. 

폭정을 일삼으면 왕의 목도 치는 마당에, 왜 직원이 고객의 어처구니 없는 요구와 무례를 끝까지 감내해야 한단 말인가. 뒤에서 자세히 살피겠지만, 고객에 대한 '무한 친절'은 직원과 회사는 물론 고객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친절의 강요가 한국사회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고용주는 차별화도 안 되는 고만고만한 상품을 내놓고 직원들에게 몸으로, 모욕으로 때우라고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고용불안을 악용해 '너 아니어도 쓸 사람은 널렸다'는 뻔뻔한 태도로 직원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 제 목을 조르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용불안정을 만든 주범이 기업 아닌가.

그리고 손님은 유세 떨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생존을 무기로 친절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소비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피해야 할 무례다.

처벌을 위한 '고객만족도' 조사

카드 신청을 하고 나서 몇 시간 뒤 전화가 왔다. 간단히 몇 가지 질문에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이번에는 본사에서 이메일이 왔다. '고객만족도'를 조사한다며, 전화한 상담원을 평가해 달라는 것이다. 1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통화를 한 것 뿐인데 말이다.

나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친절이 의무가 된 사회에서 '평가'란 포상보다는 처벌을 위한 절차라는 걸 말이다. 잘하면 현상유지고, 못하면 목이 날아가는 것이다. 사실 한국 손님들은 나른 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직원에게 강요되는 이 '극진함'은 서비스의 전문성보다는 인사, 말투, 웃음, 인내 등 외적 형식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기분 맞추기'에 초점을 둔 서비스가 경쟁하면 '비굴함'을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고, 여기 익숙해진 고객들은 웬만한 친절로는 성이 차지 않게 된다. 이렇게 잘 못 길들여진 고객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기분이 조금만 상해도 '피의 보복'을 요구하며 난리를 치고, 이들의 지극히 주관적 평가가 직원의 생사를 가른다.

진상손님은 개인의 욕심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무한서비스'를 내세우면서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지우는 기업과, 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뒷짐 진 정부가 가세한 결과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매장 모습.
 진상손님은 개인의 욕심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무한서비스'를 내세우면서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지우는 기업과, 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뒷짐 진 정부가 가세한 결과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매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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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왜 백화점 점원들이 두 손을 모으고 직각으로 인사해야 하는지 말이다. 판매원은 제품에 관한 전문적 식견으로 고객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객은 왕'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고객의 비위를 맞추는 순수한 감정노동자로 전락했다. 여기서 피해를 보는 건 비단 힘 없는 직원만이 아니다.
직원이 행복하지 않은 기업이 성공할 수는 없다. 돈 몇 푼 때문에 자신의 존재까지 회의하게 만드는 회사에 누가 헌신하고 싶겠는가. 게다가 직원은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또다른 고객이 된다. 직원은 가장 먼저 만족시켜야 할 고객이다. 회사는 자기가 왕인 줄 아는 분수 모르는 고객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 고객들의 버릇을 망쳐 놓고 나서 그들의 횡포 속에 직원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종업원에게 무례하게 구는 손님은 스스로 지능을 의심해야 한다. 고객의 무례를 견뎌내는 종업원이 사실은 그 뻔뻔한 고객의 소중한 고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 일방적인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불행해지면, 공동체는 그 몫만큼 더 살기 불행한 사회가 된다. 한국은 그리 큰 나라도 아니어서, 남의 불행이 자신의 불행으로 되돌아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진상'들은 자신이 한국사회의 낮은 행복지수와 높은 자살률에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결과, 안 그래도 비참한 자신의 삶이 더 비참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 필요가 있다. 남에게 존경 받는 사람들 가운데 남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진상손님'은 영혼을 잠식하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한국은 자살률이 높기도 하지만, 자살 양상도 다른 나라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유독 젊은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기 때문이다. 10대, 20대, 30대 모두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자살자 성비도 특이해서, 보통 남성들 자살률이 여성보다 2~3배 높은 데 비해, 한국은 여성 자살률이 남성 자살률보다 높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 보고서를 보면, 1998년에서 2009년까지 20-30대 남성들의 자살 증가율은 10%대였으나, 같은 연령대의 여성 자살 증가율은 100%를 훌쩍 넘었다. 2010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전체 취업자 가운데 약 30%가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고, '서비스 종사자'의 65%와 '판매 종사자'의 51%가 여성이다. 우리가 매장과 식당에서 일상적으로 대하는 종업원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말이다.

"회사에 출근하기도 힘든 거예요. 내가 기분 좋게 출근해서 기분 좋게 일을 하고 집으로 가야 되는데. 내가 얼마를 벌자고 여기 와서. 어쩔 때는 내가 진짜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아, 오늘도 내가 출근해야 되는 구나. 오늘 여기에 또 어떤 사람들이 올까. 이런 걱정을 하고서 출근을 하는 거예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011년 인터뷰한 대형 마트 종업원 이야기다. 고객 개개인의 태도가 서비스 종사자들과 여성들의 행복지수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사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취업, 임금, 승진의 차별과 편견, 성범죄 등 여성에게 가혹한 사회환경이 한국 여성들의 삶을 불행하고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구조적 문제다.

두 번째는 개인적 문제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 법 개정이나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 비교적 오랜 시간이 필요한 반면, 개인의 문제는 당장 집 밖을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다. 당장 나부터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들의 불행이 단지 '여성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여성의 낮은 행복지수가 낮은 출산율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점에서, 여성이 행복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물론 기업과 고객의 미래도 없다.

인권위의 2011년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판매사원들이 '소비자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거나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응답자가 81.2%나 됐다. 자신의 무례한 태도가 종업원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잔인한 사회에 치어 살면서, 스스로 잔인한 가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진상손님 만드는 업주와 정부

얼마 전, 전국 백화점 직원을 공포에 떨게 한 '진상손님'이 경찰에 잡혔다. 이 고객은 사지도 않은 물건에 환불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상품에 문제가 있어 건강이 악화됐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수십 만 원에서 수백 만 원을 뜯어 냈다. 직원이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하면 '고객은 왕'이라며 소란을 피웠고, '본사에 민원을 넣어 불이익을 받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직원들은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강탈한 돈이 천 만원이나 됐다. 모두 직원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이 고객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그의 탐욕과 뻔뻔함을 비난했다. 욕 먹어 싸다. 하지만 '진상손님'은 단지 개인의 욕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한서비스'를 내세우면서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지우는 기업과, 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뒷짐 진 정부가 가세한 결과다.

2011년 11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동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개선 캠페인'에서 인권위 관계자들이 여성감정노동자의 현실에 관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무개념 손님 사절' 2011년 11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동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여성감정노동자 인권개선 캠페인'에서 인권위 관계자들이 여성감정노동자의 현실에 관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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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진상손님'은 결코 특이한 존재가 아니다.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의 2011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서비스직 종사자들 가운데 40%가 인격을 무시당한 경험이 있었고, 폭언을 경험한 사람이 30%에 달했다. 그 결과, 서비스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26.6%가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중증 혹은 고도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진상손님'으로 인한 피해는 점차 늘어갈 것이다.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자영업자와 감정노동 종사자 비율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자영업자들은 먹고 마시는 요식업과 소규모 판매업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이 특별히 식탐이 많거나, 판매에 남다른 열정을 지녀서가 아니다. 한국이 기초생활조차 보장하지 않는 복지 후진국이기 때문에, 위험부담이 높은 미개척 영역보다 수요가 보장된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하므로)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개인, 기업, 국가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로 나타난다. 커피, 통닭, 감자탕, 휴대폰 케이스가 삶에 기쁨을 보태주는 건 분명하나, 국민 대다수가 이 일에 종사하는 게 국가에게도 최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초 복지를 확대해 국민들이 새로운 영역에서 '모험'을 할 수 있게 도와 주는 게 '국가전략산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미래 대비책이 된다.

국민은 복지, 소비자는 교육이 필요하다

시티폰, 와이브로, 4대강 사업 등이 보여주듯, 국가 사업은 실패가 다반사다. 하지만 복지는 실패할 수 없는 투자다. 기초 생활이 보장되면 국민들은 생존보다는 적성과 이상에 따라 일자리를 찾거나 만들게 된다. 부가가치 높은 미래형 사업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날 것은 당연하고, 무엇보다 국민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사업주도 더 이상 생계를 무기 삼아 직원들에게 과잉친절을 강요할 수 없게 된다. 직원은 감정노동에 쏟던 에너지를 창의적 아이디어로 바꿔 회사에 되돌려 줄 것이다.

한국이 자영업 비율이 높고, 그중에서도 요식업과 소규모 판매업에 집중되는 이유는, 기초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빈곤한 복지제도때문이다. 분식점에서 한 종업원이 식탁을 정리하고 있다.
 한국이 자영업 비율이 높고, 그중에서도 요식업과 소규모 판매업에 집중되는 이유는, 기초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빈곤한 복지제도때문이다. 분식점에서 한 종업원이 식탁을 정리하고 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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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면 고용불안에 기생한 '진상손님'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일상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도 늘어날 것이다. 복지가 삶에 여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곳곳에 밴 무례와 뻔뻔함의 상당한 부분은 비인간적 생존경쟁의 결과다.

빨리 손을 써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미 과포화 상태인 소규모 판매업과 요식업 분야에는 머지 않아 젊은 퇴직자들이 대거 몰려들 것이다. 이 좁은 분야에서 경쟁은 가열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직원들의 감정노동 강도와 더불어 고객들의 몰염치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인터넷은 고객의 억지에 무게를 싣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안 그래도 불행한 한국사회는 더욱 불행해질 것이다.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표를 던질 때 복지가 찬성과 반대, 혹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의 존속이 '찬반 문제'가 될 수 없다면 말이다. 아울러 소비자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다. 돈 몇 푼 가지고 상대를 모욕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업주도 경영학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비자를 왕 모시듯 하는 게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소비자조차 직원의 과도한 친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 설문조사에서 60%의 소비자들이 '매장 직원의 지나친 인사가 불편하다'고 답했다. 소비자는 불편하고, 직원은 불행하고, 업주 주머니에는 불리한 일을 왜 강요한단 말인가.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는 어떤 정당이 집권하고 어떤 지도자가 당선되는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시민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를 위해 다시 말해 두건대, 당신은 왕이 아니다.


태그:#복지,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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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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