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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그만, 차별 그만' 13일 4시간 동안 부분파업을 벌인 민주노총 내 최대조직인 금속노조의 파업슬로건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심야노동철폐, 비정규직 철폐, 원하청불공정 근절, 노동기본권 보장을 축약한 것이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심야노동철폐로, '주간연속2교대제'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기아차 소하리 공장노동자들 만나 왜 이 제도가 필요한지를 들어봤다. [편집자말]
13일 오전 8시, 야간 근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정문을 나서고 있다.
 13일 오전 8시, 야간 근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정문을 나서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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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띵하죠. 병원에서 두통약 받아서 먹어요. 빈혈기도 있고, 여기 입사한 지 12년째인데 그동안 10kg 빠졌어요."

금속노조가 '밤샘 그만, 차별 그만'이라는 구호를 들고 총파업에 돌입한 13일, 경기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의 주간근무가 끝날 시간이지만 퇴근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퇴근시간은 원래 6시지만 8시까지 이어지는 잔업 때문이다. 가장 먼저 공장 후문을 나선 신아무개(34)씨는 한 눈에 봐도 몹시 피곤해 보였다. 신씨는 "피곤해서 몸이 축 처진다. 잔업 하기에 너무 피곤해서 먼저 나왔다"고 말했다.

신씨는 공장에서 근무한 12년 동안 계속된 야간노동에 끝없이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국내 제조업 공장 대부분은 '주야간맞교대'로 운영된다. 이 공장의 경우 한 주 주간근무(오전 8시부터 오후 6시)를 하면, 다음 주는 야간근무(오후 8시부터 오전 6시)를 한다. 중간에 2시간씩 비는 시간이 있지만 이날처럼 잔업이 자주 있어 공장은 사실상 24시간 돌아간다.

신씨는 "야간조 때는 거의 4시간 밖에 못 잔다"며 "주간 때는 7시간 정도 잘 수 있다"고 말했다. 야간 근무 후 집에 들어가면 오전 7시다. 물론 잔업이 없을 때다.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다. 멀뚱멀뚱 잠을 기다리다 인터넷 하거나 책을 보다 잠든다. 잠들어도 깨다말다 뒤척이다, 오후 5시 되면 출근을 위해 일어나야 한다. 신씨는 "내 생활이 없다"고 한탄했다.

역시 이날 잔업을 하지 않고 퇴근 하던 김아무개씨(58)도 "야간 근무 때는 매일 커피 세 잔을 마신다. 그래서인지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도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집이 도로변에 있어 낮이 되면 시끄러워 잠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한 주씩 돌아가면서 근무가 바뀌니 월요일, 화요일은 시차 적응하느라 일이 제대로 안 된다"며 "낮에만 일 잘하면 지금만큼 생산량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연속2교대제? 당연히 오케이!"

13일 오전 8시, 퇴근하는 야간근무조와 출근하는 주간근무조가 공장 앞에서 교차한다.
 13일 오전 8시, 퇴근하는 야간근무조와 출근하는 주간근무조가 공장 앞에서 교차한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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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대교'를 건너 '기아로'를 거쳐 공장 앞에 도착했다. 새벽녘 주변은 고요했다. 출퇴근 버스가 서는 정류장도 텅 비었다. 오전 6시가 되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거라는 생각은 빗나갔다. 남는 시간 공장주변을 돌아보니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곳도 있었다. 서울과 바로 접해 있지만 매우 한적했다. 최근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 있는 식당, 노래방, 당구장, 심지어 스포츠센터까지 죄다 '기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1973년 세워진 '소하리 공장'은 기아자동차의 출발점이다. 지금은 경기도 화성공장에 생산량 1위를 내어줬지만 프라이드와 카니발을 생산하며 기아차의 수출량을 상당부분 책임지고 있다. 최근에는 20여 년 만에 공장 증축이 결정되기도 했다. 밤새 불이 꺼지지 않은 공장 건물들이 담벼락 너머로 보였다.

오전 8시, 잔업이 끝나고 근무 교대 시간이 가까워지자 공장 주변은 출근자와 퇴근자들로 뒤엉켰다. 5800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이 서로 마주치며 공장 밖으로, 안으로 움직였다. 통근버스로, 자전거로, 승용차로 공장의 네 개 문으로 쏟아져 나가고 들어왔다.

2시간 잔업을 마치고 오전 8시에 퇴근한 김아무개씨(34)씨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야간근무가 힘들어진다"며 "선배들은 죽는 소리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늘은 귀가해서도 집안일 볼 게 있어서 오후 1시나 돼야 잠들 거 같다"며 "다음 주는 주간 근무라 괜찮다"라고 웃어보였다. 희비가 교차했다. 이날 출근길에 나선 김아무개(46)씨는 "금요일 주간 근무 마지막 날이라 출근길이 무겁다"며 "다음 주면 또 야간이네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은 지난 3월 26일부터 2주간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범 운영했다. 주간근무는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야간근무는 오후 3시부터 오후 12시까지 A, B조로 나누는 시스템이다. 현행 근무형태와 비교하면 10시간에서 9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줄어든다. 잔업이 일상적으로 있는 걸 고려하면 3시간씩 줄어드는 것이다. 주간연속2교대제에 대해 사람들은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환영했다.

25년 일했다는 한 노동자는 "야근 끝내고 1시에 들어와 8시에 일어나니까 정말 꿀맛"이라며 "살면서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밤에 잠 자는 것은 사람 생리에 기본 아닌가"라며 "인생의 절반을 밤에 일하면서 살았다. 연속2교대제로 일하다가 퇴직하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덧붙였다.

주간연속2교대제는 지난해 5월 '밤에 잠 좀 자자'라는 유성기업의 슬로건으로 이슈화되기도 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연봉 7000만원 받는 귀족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쟁'이라 비난했었다. 보수언론들은 '노동 혁명'을 하자는 거라 공격하기도 했다. 기아차 측은 주간연속2교대제 시범 실시 이후 근무시간이 1시간 줄어드는 만큼 생산량 유지를 위해 작업 강도를 높이고 줄어든 시간만큼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날 오전 금속노조 기아차 소하리 지회는 총파업 출범식을 공장 안에서 개최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4시간 부분파업으로 완성차 공장라인이 멈춰 서는 것으로, 2008년 7월 파업 이후 4년 만의 일이다. 이들은 "심야노동철폐,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구호를 내세웠다.

출근하는 노동자들 사이로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요구하는 노조의 현수막이 보인다.
 출근하는 노동자들 사이로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을 요구하는 노조의 현수막이 보인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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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주간연속2교대, #심야노동철폐, #기아차 소하리공장,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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