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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 학교폭력 방지 우수학교인 여주중학교를 방문, 학생들과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 학교폭력 방지 우수학교인 여주중학교를 방문, 학생들과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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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 해결 기여교원 승진 가산점 부여방안'(시안)을 발표했다. 학교폭력 해결에 기여한 교원에게 가산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업무 담당자, 적극적인 예방활동으로 학교폭력 발생을 현저하게 줄인 자, 학교폭력을 조기에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해 해결한 자 등이 '가산점 부여 대상'이 된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손대지 말고 다음 정부에 맡기길 그토록 바랐건만, 또 하나의 기상천외한 학교폭력 대책이 나오고 말았다. 아무리 시안이라지만, 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스타일로 미루어보건대, 올해 말부터 교사에게 승진 가산점을 부여해 학교폭력을 해결하겠다는 방안이 추진될 모양이다.

승진 가산점 제도가 우리 교육의 병폐 중 하나라는 수많은 교사의 지적에 귀를 닫아 버린 걸까. 더욱이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일이 무슨 교사 개인별 장기자랑인 줄 아는 모양이다. 왜 정부는 내놓는 것마다 하나 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대책뿐일까. 그렇게 하면 정말 학교폭력이 줄어들 것이라 여기는 걸까.

'승진 가산점' 부여로 학교폭력 해결? 황당하다

승진 가산점은 교사들 간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문제다. 교장, 교감으로 승진하지 못한 채 정년퇴직을 하면 무능한 교사로 은근히 낙인찍히고, 평교사에서 교육청의 장학사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영전'이라고 여기는 현실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승진에 자유로울 수 있는 교사는 거의 없다.

오로지 승진 가산점을 0.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해 이른바 '연구학교' 지정을 자청하고, 기꺼이 주무를 맡으며, 교무부장, 연구부장 등 그 힘들다는 행정업무도 마다하지 않은 채 차곡차곡 승진 점수를 저축해가는 교사가 적지 않다. 다만, 안타깝게도, 승진에 목매단 교사일수록 정작 '교육'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거칠게 말해서, 가르치는 것보다 '연구'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업무 편중으로 인해 교사들 간에 불신이 야기되며, 나아가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여유조차 없는 것 등은 승진을 염두에 둔 교사의 '업보'다. 곧, 승진을 향한 교사 개개인의 노력과 열정은 분명 인정받아야겠지만, 그것이 교육의 질적 향상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단언컨대, 승진 가산점은 우리 교육을 위한 '당근'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고 본다.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상이 입시에 점수로 반영되는 순간 변질됐듯이, 교사에게 가산점도 그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입시를 위해 독서교육을 시키고, 숭고한 봉사활동이 점수로 바뀌어 희화화된 것을 교사로서 가슴 아프게 지켜보고 있지 않나. 학생과 교사의 그것이 과연 다를까.

학교 밖 시선에서야 대단해 보이겠지만,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승진이라는 관문을 통과했다고 해서, 아이들로부터, 동료 교사들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오죽하면 교육청 인사팀에서 승진 대상자의 재직 당시의 평판을 알아보기 위해 근무했던 학교까지 시간을 내 방문하겠는가.

백 보 양보해서, 승진 가산점을 준다고 학교폭력에 대한 없던 관심이 생겨날까. 학교폭력은 '문화'의 범주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아이들끼리의 밑도 끝도 없는 성적 경쟁이 이구동성 학교폭력의 주범이라는 판에, 교사들끼리 승진 가산점 취득 경쟁을 붙여 학교폭력을 해결하려는 발상이 대체 가당키나 한가.

총론이 엉뚱하니 각론 역시 황당할 수밖에. 적극적인 학교폭력 예방활동으로 사건 발생을 현저하게 줄인 자, 학교폭력을 조기에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한 자. 이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기준이란다. 숫제 일선 학교에 학교폭력을 은폐, 조작하라는 의미로 읽힐 수 있으며, 거칠게 말하자면, 제자를 신고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가산점 정책, 부작용 속출할 것

학교폭력의 해법은 무엇일까
 학교폭력의 해법은 무엇일까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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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점이라는 개량적인 잣대를 학교에 들이미는 순간, 모든 업무와 절차는 순식간에 형식화된다. 아닌 게 아니라,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해당 교사가 학교폭력 해결 추진실적을 제출하도록 돼 있다. 캠페인 몇 회, 가정통신문 발송 몇 회, 훈화교육 몇 회, 학급당 사건 발생 수 몇 회 감소 따위의 '숫자놀이'가 실적이랍시고 학교마다 난무하게 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고, 근거자료로 첨부해야 할 실적물이야 널리고 널렸다. 그래놓고 정부는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면서 학교폭력이 줄어들었다는 '숫자놀이' 자료를 우스꽝스럽게 내놓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그저 누이(승진 대상자) 좋고 매부(정부) 좋은 '뻘짓'인 셈이다.

사건을 조기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건 또 뭔가. 학급 내에서 왕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가해 학생을 찾아내 상담하고 처벌하는 일련의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라는 의미라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승진 대상자 선정을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되는 순간, 아이들의 일상 속 소소한 다툼이 학교폭력으로 비화되는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이번 대책이 자칫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교사들의 승진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어떻든 이것이 본격 시행되면 학교운영위원회에 승진 가산점 대상자 선정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고, 가선정 절차와 실적 자료 공개, 이의가 있는 교사의 이의 제기와 재심사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잡무'만 한 가지 더 늘게 될 듯하다.

서류상으로야 무슨 일을 못할까마는, 제시된 기준으로 공정한 절차에 따라 가산점 부여 대상 교사를 선정하는 학교는,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없을 것이다. 학교폭력 예방과 대응, 해결 관련 실적을 동질적으로 계량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부장과 담임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가산점을 받는 방식이 될 게 뻔하다.

굳이 이번 대책의 장점이라 할 만한 게 있다면, 학교 내 '3D 업종'이라며 기피하는 학생부장과 담임에 대한 인센티브 의미 정도다. 학교폭력 예방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학생부장들을 위로한답시고 세금 들여 방학 중에 단체로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기실 학교폭력은 학교 내 '유능한' 교사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거세된 아이들의 메마른 정서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획일적 학교문화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자, 시나브로 깊게 뿌리내린 '문화'다.

그렇잖아도 연이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교사들에게 가당치 않은 승진 가산점이라는 미끼를 던져 자존감에 생채기를 내지 말고, 일제고사로 아이들의 숨을 옥죄고, 성과급으로 학교와 교사들의 서열을 매기는 무한경쟁체제를 성찰하는 등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우리의 엄혹한 교육현실은 변죽만 울려도 될 만큼 한가하지 않다.


태그:#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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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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