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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개시 33일 만인 지난 2일에서야 개원한 제19대 국회가 시작부터 볼썽사납다. 아예 시작부터 싸잡아 욕을 먹기로 작정한 듯하다. 광주시민들을 총칼로 살육하고 집권한 '전두환 군사정권'의 상징인 '하나회' 출신 새누리당 강창희 의원을 국회의장에 내세우는가 하면 지난 18대 국회에서 불법도청 의혹의 장본인인 인물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위원장으로 내정해 공분을 사고 있다.
  
새누리당 친박계인 한선교 의원을 19대 국회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문방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거니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새누리당이 당에 배분된 9곳의 상임위원장 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문방위원장에는 한 의원만 단독 등록했다. 상임위원장 후보자는 6일 열리는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결정되고, 이후 열리는 국회에서 최종 결정한다고 하지만 이미 내부에서는 확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선교 의원, 그가 누구인가. 지나온 그의 족적, 특히 18대 국회에서 그가 행한 업적(?)들을 복기해 보면 그가 문방위원장에 앉을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끝나지 않은 국회내 도청사건 의혹

한선교 한나라당 간사가 2011년 6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의 비공개 회의 녹취록이 적힌 종이를 들고 읽고 있다.
 한선교 한나라당 간사가 2011년 6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의 비공개 회의 녹취록이 적힌 종이를 들고 읽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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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4일. 18대 국회 문방위 간사였던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KBS 정치부 장아무개 기자로부터 KBS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민주당의 비공개회의 녹취록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 의원은 전날 열린 KBS 수신료 인상 관련 민주당 비공개 회의록을 읽어 내려가면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당시 민주당은 한 의원을 상대로 도청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의뢰했지만, 경찰은 도청 당사자로 지목된 KBS 해당 기자를 3차례 소환하고 한 의원을 한 차례 서면조사했을 뿐, 의혹만 남긴 채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말았다. 경찰이 4개월 이상 시간을 끌면서 수사를 마무리함에 따라 무능력한 수사, 눈치 보기 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경찰은 2011년 11월 2일, 한 의원과 KBS 장 기자를 증거 불충분에 따른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로 끝났다. 민주당 대표실 불법도청 의혹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지 2개월 만에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해서 불기소처분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무능경찰'에 이은 '무능검찰'의 진면목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검찰과 경찰 모두 여당 국회의원과 방송사 앞에서 눈치 보기로 일관하며 '무능', '무소신', '무원칙'이란 '3무'의 칭호를 받은 사례다. 국회 내 야당 대표실이 도청된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이지만 도청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수사결과를 믿을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수신료 인상 '날치기 5적'... 총선서 낙선대상자로

한선교 의원은 방송사 아나운서 출신이다. 그가 국회에 입성하자 언론계 일각에서는 기대를 나타내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실망이 돌아왔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여당 문방위 간사를 맡아 활동 하면서 <조선><중앙><동아> 등 거대 보수신문들에게 방송(종편)의 날개를 달아주는 이른바 '언론악법' 날치기를 주도했다.

2009년 언론악법 날치기 이후 국내 언론시장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돼 지역 언론시장을 더욱 황폐화됐다. 이뿐 아니다. 언론장악 및 통제 가속화는 물론 공영방송 최장 파업 등이 벌어졌다. 이로 인한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언론자유가 과거로 순식간에 회귀하고 말았다. 이런 과정에서 한 의원은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2009년 언론악법 처리는 물론 2011년 KBS 수신료 인상안을 문방위에서 날치기 상정함으로써 '수신료 인상 날치기 5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KBS 수신료 1,000원 인상안을 국회 문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강행처리한 가운데, 2011년 6월 21일 오전 여의도 국회앞에서 KBS수신료인상저지범국민행동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이 '수신료 인상 날치기 5적,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수신료 인상 5적으로 규정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 5명(한선교, 강승규, 조윤선, 김성동, 김창수 의원)의 사진을 들고 나와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KBS 수신료 1,000원 인상안을 국회 문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강행처리한 가운데, 2011년 6월 21일 오전 여의도 국회앞에서 KBS수신료인상저지범국민행동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이 '수신료 인상 날치기 5적,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수신료 인상 5적으로 규정한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의원 5명(한선교, 강승규, 조윤선, 김성동, 김창수 의원)의 사진을 들고 나와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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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은 지난해 7월 14일 경기도 용인 수지구 한선교 의원 지역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한 의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집회가 지역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열려 이목을 끌었다.

언론노조는 "한선교 의원은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수신료 인상을 사회적 합의 없이 '일사부재리' 원칙 위반과 국회법 절차도 어기는 무리수를 두어 강행하면서 조중동 방송의 약탈적 광고 직거래를 막고, 언론의 공공성과 다양성, 지역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미디어렙 법안 논의는 모르쇠로 일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낙선대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총선을 앞두고 "MB정부 언론장악의 핵심적 역할을 했던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을 포함한 홍준표, 박선규, 김회선 후보 등 11명을 '낙선운동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한선교 새누리당 후보(경기 용인 병)는 KBS 수신료 인상과 관련한 민주당 대표실 불법도청 사건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면책특권을 내세우며 경찰수사를 수차례 거부해 낙선 대상으로 지목됐다"고 설명했다. 낙선 대상자였던 한 의원은  다시 19대 국회에 입성해 문방위원장 자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뿐 아니라 그는 당선이 되고도 도덕성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4월 30일. 한 의원은 음주 뺑소니 차량에 동승해 물의를 일으킨 데 이어 사고 직후 경찰조사 중 소란을 피웠다는 제보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한 의원이 만취 상태의 음주 뺑소니 차량에 동승한 것에 대해 경찰조사를 받으며 '서장을 불러오라'고 말하는 등 소란을 피웠다는 제보가 당에 접수됐다"고 전했다. 이어 민주당은 "한 의원이 경찰조사 과정에서 고압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국회의원의 신분을 남용한 것으로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한 의원이 동승한 차량의 운전자 40대 여인은 지난 4월 26일 밤 용인시 한 아파트 앞에서 만취 상태로 승용차를 몰다가 뺑소니 사고를 낸 것으로 언론은 일제히 보도했으나, 한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은 공당으로써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아님 말고식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스스로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수준 낮은 정치공세를 당장 중단하고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박근혜의 언론관 반영?

사진은 박근혜 전 대표가 2010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및 최고위원 선출경선에 후보로 나선 한선교 후보의 이동식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한 후보와 악수하고 있는 모습.
▲ 친박 한선교 의원의 문방위원장 내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표가 2010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및 최고위원 선출경선에 후보로 나선 한선교 후보의 이동식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한 후보와 악수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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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선교 의원의 문방위원장 내정은 박근혜 의원의 언론관을 보여줬다는 지적을 사기에 충분하다. 논란이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친박'이라는 이유로 그를 문방위원장에 내정한 것을 두고 새누리당 안에서 '벌써 친박 세상이냐'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경민 의원은 "한선교 의원 문방위원장 내정은, 실질적인 인사권을 지닌 박근혜 의원의 인사관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며 "성추행 의혹을 받는 의원을 여성가족위원장으로 내정한 것과 다름없다, 청문회 방해 의도가 아니면 인사를 다시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 서울과 전국 각지에선 MBC와 YTN 구성원들이 피를 토하듯 '공정방송'과 '낙하산 사장 퇴진'을 외치며 거리에서 5일 현재 각각 128일째, 1499일째 파업 중이다. KBS와 <연합뉴스>, <국민일보> 등도 95일에서 173일까지 파업을 하다 최근에야 종료됐지만 아직도 앙금의 불씨는 계속 남아 있다. 이들 언론사 노조원들은 권력과 자본의 언론장악에 의한 불공정·편파보도를 지적하면서 낙하산 사장 퇴진, 언론의 권력화 또는 시녀화를 경계하며 반대하고 있다.

지속되는 파업에 대해 국민들은 제19대 국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MB 정부의 출범 초기부터 일관되게 진행돼 온 방송사 측근 낙하산 사장 임명 등 언론장악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해 줄 것을 선거과정에서부터 유권자들은 숱하게 주문해 왔다. 이대로 가다간 대선에서도 지난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파업을 빙자한 또는 낙하산 사장들로 인한 불공정 편파보도가 극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막중한 책무를 맡은 19대 국회 문방위가 지난 18대 국회에서 언론 퇴보정책에 앞장서 온 의원을 위원장에 앉힌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처사다.

"언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결여되고, 18대 국회에서 불법적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19대에서 문방위원장이 되는 것은 국민과 언론을 무시하는 일"이라며 스스로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야당과 시민·언론단체의 주장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태그:#한선교, #문방위원장,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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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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