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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17일 경운궁에서 어전회의가 열렸다. 5시간 동안 열렸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토 히로부미는 하세가와 군사령관과 헌병대장을 대동하고 일본 헌병 수십 명의 호의를 받으며 경운궁 안으로 들어가 위협과 공갈로 협박했다. 한규설 참정대신이 통곡했다. 히로부미는 "너무 떼를 쓰거든 죽여버리라"고 급박했다. 민영기 택지부대신, 이하영 법부대신은 무조건 '불가'(不可)를 썼다.

하지만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가'를 표기했다. 그렇게 하여 "일본국 정부는 재동경 외무성을 경유하여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하며, 일본국의 외교대표자 및 영사가 외국에 재류하는 한국인과 이익을 보호한다"와 더불어 5가지 내용으로 된 을사조약이 체결된다. 하지만 이것은 '조약'(條約)이 아니라 '늑약'(勒約)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일제 총칼에도 '불가' 적은 대신도 있었는데

을사늑약 5조에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5조를 두고 <청토오적소 請討五賊疏>를 올려 오적을 처단하라고 촉구했던 최익현 선생이 1905년 12월 5일 "황실의 보존과 안녕이라는 그들의 말을 진실로 믿으십니까?"라고 고종에게 상소를 올린다. 이 상소에 대해 매국노 이완용은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린다. 최익현 선생에 대한 답이다.  

"새 조약의 주된 취지에 대해 말하자면, 독립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묘사직은 안녕하고 황실도 존엄합니다. 다만 외교상의 한 가지 문제만 잠시 이웃나라에 맡긴 것인데, 우리가 부강해지면 되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 <이완용 평전>(한겨레출판) 208쪽

일제 군대가 총칼로 위협해도 '불가'를 외쳤던 대신들이 분명 존재했다. 그런데 108년이 지난 이명박 정권은 밀실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의결했다. 그것도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왜 2012년 6월 26일 대한민국 각료 중에는 '한일군사협정'은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한 이들은 없었을까?

당연히 국민들은 "제2의 을사늑약"이라며 분노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대변인은 "반일감정"이라며 오히려 비판하는 사람들을 탓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사전에 몰랐다"는 어처구니 없는 해명을 내놓았다. 만약 사실이라면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국군통수권자 대신에 일본과 군사분야 협정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이 "국방부 장관이 쿠데타라도 일으켰단 말이냐"고 직격탄을 날린 이유다.

새누리당 "반일감정"·청와대 "몰랐다"& 국민들 "제2을사늑약"

국회비준이 필요 없다면서 29일 오전까지 대통령 재가를 받은 후 신각수 주일대사가 서명할 것이라며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안에서 조차 "협정은 취소해야 하고 총리가 사과를 해야 한다"(정몽준), "전범국가 일본과 무엇이 급해 정부는 국민여론을 무시한 채 졸속으로 한일 군사협정 체결을 처리했다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김을동)는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반일감정" 운운하며 정부편을 들었던 새누리당은 '친일정권'이라며 촛불까지 들겠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결국 협정 보류를 요구했고, 정부는 결국 연기했다. 하지만 보류했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분노를 자초했고, 역사의식 부재를 드러냈으며, 외교 무능과 신뢰마저 잃었다. 

먼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 정부 정책은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2008년 '새 중학교 사회과목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가 자국 땅임을 명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본, 독도 집요하게 침탈 단계 밟아

지난 2011년 4월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심의회를 열고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하거나 기술한 중학교 사회교과서 18종에 대해 승인했다. 이들 책 중에는 "한국은 일본 영토인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도덕교과서에 해당하면서 일본에서 채택률이 가장 높은 동경서적의 교과서는 "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다.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에 계속 항의하고 있다"며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하게 드러냈다.

지난 2007년 4월 20일 배진수 동북아역사재단 제3연구실장(국제관계학 박사)은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독도아카데미(교장 고창근 경희대 교수) 강좌에서 강연문 '일본의 독도 침탈 6단계 전략' 아래와 같이 밝혔다. 

①명분축적용 독도 영유주장 계속 ②독도 문제 본격화 추진 여건 조성 ③독도 문제 유엔총회 상정 추진 ④군사위기 야기 후 유엔 안보리 개입 유도 ⑤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⑥패소국의 ICJ판결 불복과 그 이후의 군사분쟁화-2007.04.23 <조선일보> "일본, 독도 침탈 6단계중 이미 2단계에"

일본은 이처럼 독도를 자기 땅으로 만들기 위해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이제 그 막바지에 이른 느낌이다. 얼마 전에는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까지 박아 국민들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전혀 헤아리지 않고, 한일군사보호협정을 밀어붙인 것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은 커녕 왜곡도 서슴치 않는 일본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데 있다. 역사를 앎으로써 사회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을 다룬다. 사람이 살아왔던 시간과 공간을 앎으로서 과거와 미래를 서로 공유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 사람들이 세계의 일원임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이 대통령도 과거보다는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역사 의식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결국 이번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청와대, 외교부 바보로 만들어 물 먹여

청와대는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대통령 사전 승인 없이 외교부와 국방부가 군사협정을 일본과 체결할 수가 없다. 외교부가 29일 오전까지만해도 '서명'만 남았다고 한 이유도 청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연기를 요청하고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보류됐다. <세계일보>는 외교부 관계자는 "과천에 교육받으러 가 있었는데 그 사이 세상이 바뀌었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고 보도했다. 외교부로사는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 썼고, 완전히 물 먹어 버렸다.

이런 일일수록 청와대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자신들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이 최종 책임을 져야하지만 외교안보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청와대를 믿고 어떻게 외교안보부처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일본에도 신뢰 잃어...

일본도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뷰스앤뉴스>는 일본 <지지통신>이 일본정부 대변인인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은 이날(29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당일 예정됐던 한일군사협정 서명이 한국 정부 요구로 연기된 데 대해 "오늘 중에 사인할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안타깝다"고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양국간 협정 서명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연기해버리는 대한민국 정부를 일본은 어떻게 생각할까? 신뢰하기 힘들 것이다.

지난 4일 동안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한일군사협정' 사태는 MB정권 외교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일군사보호협정, #이명박,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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