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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전 전시 첫날 노화랑 입구 풍경
 황주리전 전시 첫날 노화랑 입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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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작가 황주리 (Hwang Julie)의 첫 그림소설 <그리고 사랑은>(예담 펴냄) 출판기념회를 겸한 '사랑의 풍경'전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대표 노승진)에서 오는 6월 30일까지 열린다. 2010년 갤러리현대(강남)전 이후 황 작가의 신작도 볼 수 있다.

황주리 작가는 이화여대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와 미학을 전공했고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뉴욕 두 곳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북한산 작업실에서의 오랜 활동을  접고 이촌동에서 작업을 한다. 그는 화가이면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등 수필집을 낸 산문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2009년부터 웹진(나비)의 권유로 이번에 그림소설집도 냈다.

황주리의 쓴 '첫 소설', 또 하나의 도상

황주리 첫 소설, '그리고 사랑은' 표지(2012)
 황주리 첫 소설, '그리고 사랑은' 표지(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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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사람이 소설을 썼다는 건 분명 외도다. 그런데 황주리는 예외다. 그의 아버지는 단행본, 월간지 등을 내는 큰 출판사를 경영했고, 그의 어머니는 소설지망생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원고지를 달고 살았다. 그가 초기작을 원고지에 그린 것도 그렇고 소설이 나왔다는 것도 자연스럽다.

황주리는 5살부터 그림을 그렸고 15살부터는 에세이도 썼다. 중고생 시절 에세이가 더 적성에 맞는다는 선생님말씀에 소설은 접었다. 2009년에 웹진을 만나면서 마침내 소설을 토해냈다. 박수근 화백의 아들 박성남 선생은 황주리와 30년 친구인데 전시회에 와서 이 소설을 보고 "원고지에 갇혔던 문자가 폭발했다"고 한마디 던진다.

시서화가 하나인 게 동양전통이지만 황주리에게 글과 그림의 관계는 독립적이면서 상호보완적이다. 러시아 미술이 문학성이 풍부하듯 그의 그림은 시정(詩情)과 서사적 상상력으로 넘친다. 이번 전은 작가의 탯줄 같은 '식물학' 연작에 그동안 써온 아이콘을 맘껏 펼친다.

80년대 한국적 표현주의, 신구상의 기수

황주리 I '식물학'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복합매체) 130×162cm 2011
 황주리 I '식물학'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복합매체) 130×162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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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는 80년대 한국적 표현주의를 개척한 신구상의 기수였다. 80년대 억압된 사회적 정서와 절망을 담은 민중미술과 70-80년대 TV광고와 대중소비문화를 예술화한 팝아트를 자기만의 화법으로 소화해냈다. 하지만 이런 걸 표내지 않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독신여성의 소수자적 관점과 문명에 대한 비평적 관점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위 작품은 근작이나 황주리의 독특한 화풍을 잘 보여준다. 색채는 강력한 원색이고 내용은 불온해 보일 정도로 도발적이다. 이런 화풍은 황주리는 10여년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하는 중에 생겼다. 그는 한때 뉴욕시당국으로부터 뉴욕 지하철 공공미술작가로 선정돼 한 구역을 맡기도 했는데 그래선가 팝아트 요소도 강하다.

사랑의 상처가 크나 그게 오히려 삶을 구원

황주리 I '식물학'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복합매체) 130×162cm 2011
 황주리 I '식물학'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복합매체) 130×162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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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설 뒤표지에 '사랑은 아프고, 인생은 무겁지만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라는 부제가 적혀있다. 삶은 희비가 엇갈리나 아름답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랑이 상처를 주나 그게 오히려 인간을 구한다는 역설적 의미가 그의 첫 소설의 주제가 아닌가 싶다.

천재와 바보, 사랑과 미움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다. 앤디 워홀도 지옥과 천국이 한끝 차이라고 했던가. 그는 황홀한 사랑에 빠지는 것과 자살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가깝고 머냐고 묻는다. 그의 소설은 위에 활짝 열린 창문에 해바라기를 그린 것처럼 사랑과 인생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선물하려는 것 같다.

하찮은 물건, 흔한 오브제와 관계 맺기

황주리 I '의자에 대한 명상' 의자에 아크릴물감 2012. 의자는 휴식의 의미도 있다. 투박한 나무의자와 화려한 색채가 참 잘 어울린다
 황주리 I '의자에 대한 명상' 의자에 아크릴물감 2012. 의자는 휴식의 의미도 있다. 투박한 나무의자와 화려한 색채가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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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I '의자에 대한 명상' 의자에 아크릴물감 2012
 황주리 I '의자에 대한 명상' 의자에 아크릴물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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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은 "우리주변에는 시가 차고 넘친다"고 했지만 사실 우리 주변은 창작의 소재로 넘쳐난다. 다만 그걸 보지 못할 뿐이다. 현대미술이란 것이 원래 사람들이 버린 걸 다시 주워와 거기다 뭔가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데서 시작된다.

황주리는 하나하나 다른 돌멩이를 보고 2005년 전시부터 '돌에 관한 명상' 연작을 선보였다. 물론 전후로도 안경이나 의자 등 오브제에 유머러스한 조형언어로 옷을 입혀왔다. 하긴 사랑도 예술도 실은 물질로 죽어가는 정신에 생명을 불어넣는 노하우가 아닌가.

독서, 영화, 여행에 심취한 자의 그림

황주리 I '식물학'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복합매체) 130×162cm 2011
 황주리 I '식물학'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복합매체) 130×162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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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를 이야기하면서 독서, 영화, 여행을 뺄 수 없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과 함께 자랐고 영화마니아로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홀로 영화를 즐겼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네팔, 이집트, 크로아티아, 중국, 러시아 등 수십 개국을 누비고 다녔다. 이런 열정은 작가로서 자유를 최대로 살리면서도 보다 나은 창작을 위한 일종의 모험이자 탐색이리라.

위 사진은 3년 전 작가가 그리스 산 토리니 섬에 여행 갔을 때 찍은 것이다. 30년 전 이곳을 처음 갔을 때 받은 인상이 너무 좋아 또 간 건데,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던 할머니들은 오간 데 없고 관광업자만 수두룩했단다. 그런 와중에 옛 추억을 떠올리는 할머니를 뵙고 너무 반가워 이 사진을 얻은 것이다. 그 아련한 추억이 작품으로 복원된 셈이다.

작은 일상에서 숨은 축제 찾기

황주리 I '식물학'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1. 관객 중 정현종시인(1939-)도 있다
 황주리 I '식물학' 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11. 관객 중 정현종시인(1939-)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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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는 숨은 보물찾기를 하듯 작은 일상에서 숨은 축제를 찾는다. 위의 작품에서는 하찮아 보이는 골목계단에 샛노란 해바라기를 화사하게 피어냈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찾는다고 할까. 삶이란 원래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아내는 것이 아닐런지.

주변에 널린 사물과 보통의 사람 그리고 낯익은 풍경이 그에게 그림의 소재가 된다. 이런 화풍은 관객에게 친근감을 주고 공감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우리가 똑같은 24시간을 살지만 작가는 그 중에서 죽은 시간 말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간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니 거기에는 그 어떤 삶에 대한 비관이나 허무, 절망이 들어설 틈이 없다.

'아침의 나라'가 '25시의 나라'가 된 건

황주리 I '사랑의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44×184cm 2012
 황주리 I '사랑의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44×184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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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흑백그림 '사랑의 풍경'은 90년대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청춘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마치 영화장면 같다. 거기 담긴 뜻은 역으로 우리가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고 또 우리가 물질적 풍요에도 사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뜻이 되리라.

이 작품을 보니 불현듯 살 수도 죽을 수 없는 시간을 의미하는 '25시'가 떠오른다. <25시>는 원래 게오르규가 쓴 소설이다. 이 유명한 루마니아 소설가가 1974년 3월 <문학사상>지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는 지도를 보면 한국이 열쇠처럼 생겼다며 세계사의 난제를 풀 '열쇠의 나라'고, 25시의 절망에서 인류를 구할 '아시아의 보석'이라고 했다.

하지만 게오르규의 예상은 빗나갔고 그가 찬양한 아침의 나라 한국은 지금 OECD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돈을 신주단지처럼 여기다 보니 일상 속에 숨어있는 축제를 찾지 못하고 이를 즐기지 못한다. 남녀만 아니라 정치도 남북문제도 그렇다. 그는 문명 비평적 관점에서 이런 장벽을 좀 허물고 싶었나보다.

50대, 나보다 남에게 더 관심 둘 때

소설집을 구입한 관객에게 사인을 해주는 황주리작가
 소설집을 구입한 관객에게 사인을 해주는 황주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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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도 이제 50대 중반에 들어선다. 에세이가 나를 성찰의 글이라면 소설은 남의 입장을 돌아보게 하는 장르라고 말한다. 거창한 게 아니라 글과 그림으로 소소한 일상 속에 숨겨진 행복의 가능성을 찾아주는 것이다. 최근엔 붓다 그림을 그린다고 들었는데 하여간 그의 심경에 변화가 온 게 분명하다.

21세기는 예술이 종교가 되는 시대라고도 한다. 전시도록에 '사랑, 그건 꽃이다. 우리네 삶처럼 꽃은 피고 진다. 비록 질 때 지더라도 우리들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이다'라고 적어있는데 비가 오면 꽃이 하루밤 새 다 지지만 그래도 모든 꽃은 다 아름답다는 게 이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세계의 골자가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전시장 소개] 노화랑 www.rhogallery.com 종로구 관훈동 103번지 전화 (02)732-3558 무료입장



태그:#황주리, #그림소설 '그리고 사랑은' , #식물학 연작, #신구상, #팝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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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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