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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을 오르지 못하고

땅나리
 땅나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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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족령으로 오르는 길은 백룡동굴 생태체험 학습장 옆을 지나 남쪽으로 이어진다. 산을 오르면서 보니 동강 이쪽의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와 동강 저쪽의 영월군 영월읍 문산리 쪽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은 시야가 탁 트이질 않아 조망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산길 주변에는 으아리와 땅나리 등 여름꽃이 보인다.

1㎞ 정도 산길을 걸으니 땀이 흐른다. 나는 비교적 더위를 덜 타는 편이지만, 몸이 뚱뚱한 사람들은 연신 땀을 닦는다. 평평한 산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다시 500m 정도 떨어진 칠족령으로 향한다. 중간 고갯마루에 돌무더기 서낭당이 보인다. 칠족령이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왼쪽으로 가면 백운산에 이르고, 오른쪽으로 가면 칠족령 전망대에 이른다. 백운산은 행정구역상 평창군과 정선군의 경계에 있는 해발 882.5m의 산이다.

칠족령-하늘벽-연포 마을 트레킹 코스
 칠족령-하늘벽-연포 마을 트레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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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족령 전망대에서 하늘벽 뼝대를 거쳐 구름재,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신동읍 운치리와 미탄면 마하리를 따라 구름재 – 백운산 – 칠족령이 능선을 이루기 때문에 동강을 조망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산행 코스다. 그리고 수증기를 머금은 바람이 이 능선을 넘으며 하얀 구름으로 변하기 때문에 백운산(白雲山)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더욱이 능선을 따라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스릴과 조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칠족령에서 백운산까지는 2㎞ 정도 된다. 이번 답사가 산행보다는 동강 트레킹이기 때문에 우리는 백운산으로 오르지 않고 칠족령 전망대로 내려간다. 칠족령 전망대는 벼랑 끝에 나무판을 깔고 쇠로 된 지지대를 세웠다. 이곳에서는 제장마을에서 연포마을로 내려가는 에스(S)자형의 유유한 동강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강 건너 덕천리 소사마을 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 절벽을 볼 수 있다.   

칠족령에 얽힌 이야기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 본 동강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 본 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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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족령(漆足嶺)은 말 그대로 '옻칠한 발 고개'라는 뜻이다. 옻칠한 발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제장마을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들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제장마을에 옻칠을 해 생계를 꾸리던 장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산속에서 개와 함께 단 둘이 살았다. 그는 옻을 채취하기 위해 백운산 정상까지 오르고 싶었지만, 숲이 우거지고 산이 험해 한 번 오르면 돌아오는
길을 찾기 어려웠다.

그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산으로 올라가면서 개의 발에 옻칠을 해서 자기가 지나간 길을 표시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정상에 이른 다음 개 발자국 표시를 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설은 서양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집 찾아 돌아오기와 비슷한 모티브를 지니고 있다. 옻칠 장인은 그 후 백운산에서 더 많은 옻나무를 채취해 옷칠 장사를 잘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개 발자국 덕분에 현재의 칠족령으로 해서 백운산으로 오르는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옻칠한 개 발자국'이라는 뜻의 칠족령이 생겨났다고 한다. 칠족령 전망대부터 길은 천 길 낭떠러지를 따라 이어진다. 이 절벽을 정선 사람들은 뼝대라 부른다. 뼝대란 절벽의 강원도 사투리다. 뼝대는 동강을 끼고 연포마을까지 이어진다.       

하늘벽 뼝대로 알려진 절벽 따라 내려오기

칠족령-하늘벽-연포 마을로 이어지는 절벽
 칠족령-하늘벽-연포 마을로 이어지는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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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뼝대를 따라가면서 절벽의 스릴을 만끽하고 동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절벽에는 기이한 소나무와 바위들이 그 멋을 더해준다. 그리고 저 아래로 제장(堤場)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제장은 둑 위에 생긴 장이라는 뜻이다. 옛날 동강을 이용한 수운이 발달했을 당시 그곳에 장이 섰던 모양이다. 제장마을은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촬영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우리는 이제 다음 목적지인 하늘벽 뼝대를 향해 계속 내려간다. 하늘벽 뼝대는 이번 여행에서 중요한 볼거리 중 하나다. 하늘벽이란 이름은 절벽이 동강에서 거의 직각으로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절벽 사이로는 틈이 나 하늘이 보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늘벽 뼝대를 건너뛸 수가 없다. 그래서 2009년 12월 이곳에 구름다리를 설치했다.

하늘벽 뼝대 구름다리
 하늘벽 뼝대 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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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다리는 동강 수면으로부터 수직으로 105m 지점에 설치되었다. 길이가 13m고, 폭이 1.8m다. 다리의 바닥에는 유리를 깔아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했다. 유리의 두께는 3.6㎝이며, 유리 한 장당 성인 5명이, 다리 전체로는 성인 14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시공되었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산에 이처럼 구름다리를 많이 설치하는데, 이 다리도 정선의 명물이 되었다.

하늘벽 뼝대에서 연포마을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길을 내려가면서 소사나루도 쳐다보고, 마을 뒷산의 고성산성도 바라본다. 고성산성은 신동읍 고성리와 덕천리 경계지점인 해발 425m의 산 능선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그리고 연포마을과 소사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도 보인다. 우리는 그 다리를 건너 신동읍 쪽으로 나갈 것이다.

연포마을과 연포분교 이야기

연포 마을 앞산
 연포 마을 앞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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뼝대를 내려가면서 길은 절벽을 조금씩 벗어나 평범한 산길이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포마을에 이른다. 연포(硯浦)는 벼루 연(硯)자에 개 포(浦)자를 쓴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강물이 벼루의 먹물처럼 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수심이 다른 곳보다 깊은 편이다. 연포마을 건너로는 우뚝한 바위산이 서 있다.

연포마을은 동강가의 비탈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농업과 축산업을 주로 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곳에 펜션 등이 들어서고, 생태체험학교가 생기면서 관광지로 변모해 가고 있다. '정선 동강 연포 생태체험학교'는 폐교된 예미초등학교 연포분교를 활용해 만들었다. 연포분교는 1969년에 문을 열었고, 1999년에 문을 닫았다. 30년 동안 총 169명의 학생이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연포 생태체험학교
 연포 생태체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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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연포분교는 영화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2003년 봄 오지마을에 불량 티처 부임하다'라는 컨셉트로 만들어진 이 영화가 연포분교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의 학교는 청림초등학교 산내분교다. 이곳에 서울에서 김봉두 선생이 부임해 온다. 그는 돈봉투 사건으로 인해 파면을 면하고 이곳 강원도 산골로 좌천되어 온다. 그런 그의 관심은 학생이 아니라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애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명분으로 서울에 대한 동경을 심어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전학을 가도록 하고, 학교를 폐교시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 산골을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김봉두 선생은 아이들의 순수함과 마을 사람들의 진정성으로 인해 불량교사에서 참교사로 거듭난다. 영화는 '내 어린 날의 학교' 노래와 함께 끝난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산내 분교 졸업식
 영화 <선생 김봉두>의 산내 분교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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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얼 하든지
가슴에 가득 꿈을 안고 살아라. 음~
선생님 가르쳐 주신
그때 그 말씀 잊지 않아요.
언제나 그렇듯이
비 개이고 나면 무지개가 뜬다.  

연포분교는 현재 생태체험학교가 되어 있다. 2009년부터 문을 열었으며, 숙박과 생태체험이 가능하다. 우리는 생태체험학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학교버스를 이용해서 고성삼거리로 나간다. 버스는 동강 다리를 건넌 다음 잠시 동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 건너로 우리가 지나온 칠족령 전망대와 하늘벽 뼝대가 올려다 보인다. 곧 이어 길은 강가를 지나 산길로 이어진다. 산을 넘어 고성 삼거리에 이르니 그곳에 우리가 아침에 타고 온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태그:#칠족령, #하늘벽 뼝대, #구름다리, #연포 마을, #영화 <선생 김봉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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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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