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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쓴 편지를 누군가와 꾸준히 주고 받았던 적이 언제였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나보다 먼저 군대에 간 친구녀석과 몇 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는 휴대폰도 이메일도 없던 때라서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와 연락하려면 유선전화 또는 편지를 이용해야 했다. 그 이후로는 손으로 쓴 편지를 다른 사람과 여러차례 주고 받아본 기억이 없다.

 

간단한 용건이라면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면 되고, 긴 이야기라면 이메일을 쓰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편지 한 통 보내려면 봉투에 얼마짜리 우표를 붙여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이 당연할 만큼 세상이 변해버린 모양이다. 젊은 학생이라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휴대폰과 인터넷이 있는데 손으로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는다고? 편지를 보내더라도 컴퓨터로 써서 프린터로 뽑으면 되지 왜 직접 손으로 써?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야지!"

 

편지를 쓰는 사람들

 

미나토 가나에가 2010년에 발표한 중편집 <왕복 서간>에는 주고받은 편지로만 구성된 소설 3편이 실려 있다. 이들은 직접 쓴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사랑이나 우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 과거를 돌아보고 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전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이제와서 편지를 통해서 되새긴다.

 

그 사건이 편지를 쓰는 당사자에게 과거에 꽤나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게다가 사건의 전모가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아니다. 어두운 과거는 굳이 파헤치지 않고 그냥 덮어두면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진실을 알기 원한다면 그때는 그 사건의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왕복 서간>의 인물들도 그래서 편지를 쓴다. 이들이 겪었던 사고도 다양하다.

 

한 여인은 20년 전 교사로 근무하던 당시, 자신의 남편과 제자가 동시에 강물에 빠지는 사건을 겪는다. 그 후유증이 아직까지 그녀에게 남아 있다. 그녀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학생들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편지를 쓴다.

 

한 남자는 15년 전 중학생이었을 때, 가깝게 지냈던 동급생 두 명이 차례로 목숨을 잃는 사건을 경험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겪었으니 무척 큰 충격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 상처는 지금까지 남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편지를 쓴다.

 

편지가 가지고 있는 매력

 

손으로 직접 쓰는 편지는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에 비해서 분명 불편하기는 하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쓰면서 보다 더 차분하고 진지해진다는 점이다. 이메일은 잘못 쓴 문장이 있으면 'delete' 키를 눌러서 삭제하고 다시 쓰면 그만이다.

 

편지는 좀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좀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메일은 읽고 나서 간단하게 '삭제' 버튼을 클릭하면 메일함에서 사라진다.

 

편지도 읽고나서 곧바로 쓰레기통 또는 문서절단기 안으로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메일 보다는 수명이 길지 않을까. 가족이나 친구가 정성껏 써서 보낸 편지를 그렇게 쉽게 처분하지는 못할 것 같다.

 

<왕복 서간>의 한 인물은 '편지를 쓰는 행위는 올바른 시간과 거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쓴 편지가 상대방에게 도착하는데 일주일이 걸린다면 그것이 상대방과 나 사이의 시간과 거리다. 편지를 쓰는 사람은 편지가 도착하기까지 며칠이 걸린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러면 편지를 쓸 때 좀 더 신중해질 것이다. 텅 빈 편지지를 앞에 두고 펜을 들었을 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지 즐겁게 고민하게 된다. <왕복 서간>을 읽다 보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보다는 '손으로 편지를 쓰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왕복 서간> 미나토 가나에 씀, 김선영 옮김, 비채 펴냄


왕복서간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비채(2012)


태그:#왕복 서간, #미나토 가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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