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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대구에서 한 명의 청소년이 자살을 택했다. 2012년 들어 대구에서 일어난 열 번째 자살시도이다. 그 중 두 명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고 8명은 세상을 떠났다. 

참담하다는 말 말고 무슨 말이 더 있을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대구 왜 그래?"라며 물어보곤 하는데 대답할 말이 별로 없다. 대구는 마치 상가집 같기도 하고 집단적 패닉상태인 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이 굴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또 한 사람이 죽었다. 학교 내 폭력으로.

대구시교육청과 수성경찰서는 학교 폭력 가해자를 찾았고 그 사람을 중심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난 교육청과 경찰의 말이 미덥지 않다. 그리고 지목된 가해자 몇 명 때문에 그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왜일까?

우선에, 말그대로 교육청을 못 믿겠다. 우동기 교육감은 YTN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유명인의 자살을 보고 따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그 인터뷰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체벌, 두발규제, 복장규제, 강제 야자, 보충학습, 경쟁교육 등 학교 폭력 외에도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자살할 이유가 충분하다.

지금의 학교에서 사람이 버티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 않은가? 한국 교육의 문제, 한국 학교의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말이다. 심지어 한국은 UN인권위원회에서 십여 년 동안 계속 어린이 청소년 인권이 지나치게 침해당하고 있다고 지적받아온 나라이다. OECD 국가 중 어린이 청소년 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보고서를 받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런데도 한 지역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이 '따라 죽는' 거라고 공개 석상에서 말하는 것은 무책임함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서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 대구시 교육청 홈페이지가 교육감 사퇴를 요구하는 글로 도배될밖에.

게시판에서 사람들이 교육감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대구광역시 교육청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사람들이 교육감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이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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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대구교육청과 교육감은 계속 대구가 특히 심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문제인가? 다른 지역에서는 열 명씩 죽고 대구에서 한 명이 죽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란 것일까? 그야말로 '책임 면하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은 보지 않는다. 빠져나갈 구멍만 찾는 교육청과 교육감이 말하는 문제의 진단, 조사 내용, 해결책을 믿기가 힘들다.

또 하나 교육청과 경찰의 이야기를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많은 범인들' 때문이다. 죽은 그 학생은 정말 가해자의 학교 폭력 때문에 몸을 던졌을까. 옥상에서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2시간 38분 동안 그 학생은 축구 동아리 사람들에 대해서만 고민했을까. 만약 정말로 축구 동아리 내에서의 폭력이 고민이었다면 전학이나 자퇴를 고민하는 것이 내게는 좀 더 자연스럽게 생각된다.

날 힘들게 하는 공간이 있다면 그 공간에서 벗어날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 사람은 삶 자체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을 선택했다. 즉, 뺨을 맞고 고막이 나가게된 축구동아리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공간, 삶 전체가 폭력이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학교 폭력 때문에'라고 말하는 경찰의 발표가 믿기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범인은 가해자 몇몇이 아니다. 범인은 수없이 많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부의 학교 폭력 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된 게 오늘로 꼭 4달이다. 그 4달 동안 대구에서 8명의 청소년이 투신했다. 결국 변화가 없다. 그 대책이 좋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먹혀들지' 않고 있고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청이, 정부가 아무리 대책의 효과를 입증하려한들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어제 학교 폭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연출자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 학교 폭력의 대책을 묻는다면 나는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할 거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우리는 그동안 출발점을 잘못 잡아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많은 범인들. 원인이 무엇인지 결론낼 수 없는 죽음들. 해결 방법은 가닥조차 찾을 수 없는 총체적 난국. 그 속에서 우리는 성급하게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앞서, 그간 너무나 외면해왔음을, 학교 내 폭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가 너무도 모르고 있음을, 우리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어 졸속적인 대책을 남발하고 애꿎은 이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 사이에 또다른 이가 죽음을 선택하는 모순을 반복하는 것은 죽은 이를 두 번 죽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 모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육청과 정부는, 그리고 우리는 출발점을 새로이 잡아야 한다. 그저 책임을 면하고 시끄러운 시기를 지나쳐가기 위해 다급히 땜빵용으로 내어놓는 껍데기 대책들이 아니라 그간의 방관과 외면을 인정하고 학생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기사 내용 중 언급된 다큐멘터리는 학교 폭력을 둘러싼 오해와 착각들을 다루고 있는 <학교: 부서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http://www.socialfunch.org/brokenpeople



태그:#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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