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돌이켜보면 농사짓고 살면서 안 해 본 거 없이 다 해 본 듯하다. 개집도 지어봤고 사람 사는 집도 지어봤다. 염색을 해서 옷도 지어 입었고 구들학교에 가서 구들 놓는 기술도 배웠다. 구들 학교는 말이 학교지 그냥 즐거운 여행이자 놀이였던 기억이다.

나이가 차고 때가 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농사짓고 살면서야 비로소 비행기 타고 외국에도 나가게 되었다. 외국 여행은 귀농 17년 동안에 자그마치 중국 네 번. 인도 한 번. 일본, 독일, 필리핀은 각각 일주에서 열흘 정도씩 다녀왔고 인도는 오로빌공동체에 갔었다. 북유럽 5개국을 열흘 동안 돌아보았고 호주도 갔다 왔다.

진짜 농부는 잘 놀 수 있는 사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몇 가지가 있다. 겨울 농한기를 이용하여 석 달짜리 영화학교를 다녔는데 급기야는 내 작품이 상영되기에 이르렀다. 지방지에도 크게 실리고 영화감독(?)과의 대화라는 자리도 마련되어서 백여 명의 관객들 앞에 서기도 했던 일이다.

영화학교는 물론 공짜였다. 시골에 와서 살면서 대부분 공짜였다. 외국 여행도 공짜가 많았고 전주국제영화제도 세계소리축제도 공짜 표가 심심찮게 생겨서 매년 구경을 갔었다. 이럴 수 있었던 데는 비닐농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닐농사는 자연도 망치지만 사람도 잡는 농사다. 농한기가 따로 없이 늘 농번기라고 할 수 있다. 밤과 낮도 없을 때가 많다. 요즘 토마토농사 시설재배 하는 사람들은 일주에 세 번 정도를 선별·포장 작업을 하느라 밤 12시까지 일을 한다. 규모가 2천 평 정도면 일꾼 서너 명 고용해서 한다. 

그러나 겨울도, 비 오는 날도 비닐 농사를 안 하면 다 노는 날이다. 17년 동안 한 번도 비닐농사를 하지 않아서 다른 농부들 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어느 해 겨울은 옆 동네 풍물패에 끼어서 쇠와 장구를 쳤다. 공연은 못해 봤지만 기본 가락을 익혔고 어느 겨울은 단소 강습을 나가기도 했고 기타교실에 등록하여 청음력을 키우고 발성연습도 했다.

아쉽게도 전 과정을 마친 곳은 별로 없다. 여기 장수에 와서도 문인화 반을 다니면서 4군자도 그리고 전시회도 가곤 했지만 도중에 그만 두었다. 그냥 강박의식 없이 놀러가다시피 참여하다보니 과정을 끝내야 한다는 의지가 잘 작동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혼자서 먹을 꺼내 놓고 붓을 들곤 한다.

놀 수 있는 사람은 매여 있지 않아야 한다. 축산을 하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꼭 그 시간에 짐승 먹이를 줘야한다. 자기가 못하면 누군가를 대신 하게 해야 한다. 앞에 예로 든 비닐농사도 마찬가지다. 겨울에 돈 들여 불 때 가면서 짓는 농사를 대충대충 할 수 없다.

사실, 일에 매여 밤낮 없이 일 년 내내 일하고 사나, 자연에 기대서 무리 않고 사나 큰 차이 없다. 돈 많이 버는 쪽으로 살면 쓰는 돈도 비례해서 커진다. 그때 쓰는 돈은 대개 자연을 훼손하고 사회 공공재를 망가뜨리는 쪽이다. 도리어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사는 게 건강도 지키고 마음도 지키고 자연도 지킨다.

계절과 절기와 날씨와 기후에 따르는 생활. 거기에 영향 받는 삶. 이게 놀이와 문화의 출발지점이 아닐까 싶다. 무릇 예술이라는 것은 삶의 승화이자 차원 변환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이 굳건한 토대가 되어 그 위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되는 것이 문화고 예술이라는 것이다.

농부의 달력은 다르다

대보름이나 한식, 단오, 백중 등 세시풍속이 다 그런 것이다. 계절 변화와 생활의 변곡점에서 몸과 농사일을 조절하는 행사다. 세시풍속을 월령(月令) 또는 시령(時令) 등으로도 불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태음력을 기준으로 우주운행의 주기성과 변환성을 같이 담아 낸 세시풍속은 참 농부의 삶을 담고 있다.

노동과 분리되지 않은 놀이. 자연과 나뉘지 않은 노동. 완급이 조절되는 주기성과 변환성. 이보다 완벽한 무대가 어디 있겠는가. 농사짓는 사람의 터전이 바로 이렇다. 천리를 역행하지만 않는다면 농민이야말로 가장 예술적인 존재이다. 시인 박노해도 그렇게 말했다. 농부가 예술가라고. 온 누리를 무대로 매일 매일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세상을 매일 디자인하고 쇄신하는 사람.  바로 농부다.

시골에 와서 살면서 그동안의 1주 단위의 달력이 슬그머니 장날 중심인 5일 단위로 바뀌었다. 일요일 개념이 없다. 국경일도 별 의미가 없다. 시골살이는 빨간 날이라고 공휴일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귀농해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귀농해서 요일 개념이 바뀌는 체험을 누구나 한다. 쉬는 날은 하늘이 그때그때 정해주고 스스로 삶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정하는 것이지 인간의 기념일 중심이 아닌 셈이다.

며칠 전에 우리 고장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산골마을로 쓰레기공장이 들어온다고 하여 두 달 넘게 집회도 하고 차량 시위도 벌이는 중에 열린 공청횐데 낮 두시에 열렸다. 일기예보를 보고 잡은 날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도시인들이 공휴일이나 주말에 촛불집회를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공휴일을 스스로 만들고 그 날 사람들이 모여 공청회를 한 것이다.

실내 집회를 할 때는 이왕이면 바쁜 농사철이니까 비 오늘 날을 잡고, 길거리 시위를 할 때는 맑은 날을 잡는다. 날짜부터 잡아 놓고 날씨가 어떨지 걱정하는 도시사람들과 다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것은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에 들어가 사는 장소 중심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과 생활의 흐름을 일치시키는 행위라 하겠다.

귀농해서 살려고 할 때 여러 가지 고려 사항 중 하나가 문화생활도 포함되는데 무대공연 중심의 문화를 생각하면 당연히 문화혜택이 적은 곳이 시골이다. 영화관이 없는 시ˑ군이 많고 뮤지컬이나 유명가수의 공연도 시골에는 없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도시에 살더라도 얼마나 영화관이나 연극공연장을 자주 찾으며 뮤지컬이나 유명세 있는 가수의 공연을 보는가? 실상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본다. 귀농해 살면 문화 혜택이 빈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아닐까 싶다.

지역 축제와 마을 행사

며칠 전에는 우리 마을에서 바닷가로 봄놀이를 다녀왔다. 엊그제는 아랫마을에서 봄놀이 가는 날이었는데 마침 그날은 면사무소 앞에서 주민잔치가 열리는 날이었다. 면사무소 앞 주민잔치에는 옆 면에서 응원 차 풍물패가 와서 사물놀이를 해 주었다. 응원을 온 이유는 쓰레기 공장의 사업 불허가 났기 때문이다.

면민의 날, 군민의 날, 장애인의 날, 노인의 날, 지역 축제 서너 가지, 마을 계 정기총회, 지역 문화원 행사, 사진이나 문학 동호회의 행사 등등 운동장이나 저수지를 무대로 열리는 행사들이 1년에 열 손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시골 어르신들은 장날이면 만 원짜리 한 장 들고 장에 가면 이 마을 저 마을 사는 친구들 만나 순댓국에 소주 한 병 시켜 놓으면 하루가 저문다.

면민의 날이나 노인의 날은 면 단위로 열리는 행사인데 같은 날 열리지 않는다. 이른바 유권자 관리(?) 차원이 아닐까 하는데 군수님이 오셔서 축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군청 누리집에서 행사 날짜를 확인하고 면 마다 돌면서 논적도 있다. 수건 한 장은 기본이고 푸짐한 점심에 재수 좋으면 사은품 추첨에 당선되기도 한다.

지역 축제가 천편일률적이고 무대 중심의 연애인 공연도 많지만 실내행사는 드물다. 들판이나 산기슭에서 열린다. 판에 박은 품바타령이나 한 물 간 가수들이 등장해도 관객인 주민들이 아무데서나 덩실덩실 흥을 내서 육자배기 소리를 할 수 있는 조건이라 무대와는 별도의 무대가 마당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전형적인 마당놀이 문화다.

요즘은 면 단위의 마을 풍물패 활동도 활발하다. 경연대회도 열린다. 곳곳에 큼직한 문화시설도 들어 서 있다. 주민자치센터는 갖가지 교양프로그램이 연중 진행되고 재주 있는 귀농자들이 강사로 출연한다. 삶 중심으로 형성되는 문화단위들이다. 생활과 밀착된 살아 있는 문화다.

봄에는 풍년 기원제, 가을에는 추수 감사제에 녹색당과 옛 민주노동당, 그리고 녹색평론 모임 등이 전통을 살리는 새로운 농촌문화를 일구기도 한다. 추렴하듯이 집에서 먹는 음식을 싸 와서 모임 때 공동식사를 한다든가 장구와 북, 쇠와 징이 기본으로 동원되고 누구나 소리 한 자락을 하는 모임들을 쉽게 본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강대인 선생은 농장에 갈 때는 쇠와 장구를 들고 갔다고 한다. 작물들도 신명을 돋우기 위해서인데 놀이가 일과 결합된 모습이라 하겠다. 놀이 중 최고의 놀이는 '일하는 놀이'가 아닐까.

최근에는 '교육농장'이라 하여 교육청과 연대해서 학생들의 야외학습장으로 농장이 활용된다. 다양한 생활체험을 자연 속에서 살아있는 공부거리로 삼는다.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가 되는 셈이다. 생활을 지속케 하는 노동 속에서 인류는 지혜를 발달시켰다. 현대 문명은 본래의 생활노동에서 동떨어져 있지만 원래는 공부도 생활 속에서 진행되고 완성되었다. 그것의 복원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면 좋겠다.

이제 여름이다. 도시로 나갔던 출향인들 중 고향 시골집으로 와서 부모도 뵙고 어릴 적 뛰놀던 계곡과 들판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있다. 놀이가 몸도 망치고 삶도 왜곡시키는 도시의 저급한 문화가 옮겨 오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농촌에서 겨우 명맥이 이어지는 살아있는 생활문화가 교류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농촌으로 삶의 거처를 옮겨오는 사람들에 의해 이런 교류가 더욱 촉진되길 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살림의 <살림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골살이, #문화, #귀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