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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관련된 소설들은 하나같이 뻔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내용이거나, 어린 시절 어머니한테 불효를 저질렀던 일에 대한 참회의 기억을 담기도 한다. 소설 속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은 삐뚤어진 자식을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하기도 한다. 최근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에서는, 독자들이 엄마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닫도록 아예 엄마가 사라진 상황을 가정해보라 한다. 어쨌든 주제는 '엄마 사랑해요'다. '엄마소설'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자식들은 항상 엄마라는 존재의 따스함과 사랑을 엄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다음에야 깨닫는다는 점이다.

여행길에 만난 여러 어머니들의 공통점은?

<어머니전> 표지
 <어머니전> 표지
<어머니전>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엄마에 대해 쓴 다른 소설들과 큰 차이가 없다. 이 소설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힘들게 자식을 위해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삶'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다른 소설보다 뻔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같은 주제이지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귀납적으로 끌어내기 때문이다. 한 명의 어머니에 대해서만 다룬 소설은 우리 어머니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삶에 쉽게 공감의 눈물을 흘리기 어렵다.

이 소설에서는 저자인 '나그네'가 여행길에 만난 여러 어머니들의 삶을 풀어낸다. 어머니들의 삶은 저자의 말처럼, 하나하나가 소설로 쓰여질 수 있을 만큼 각양각색이다. 그가 만난 어머니들은 모두 각기 다른 역경과 고난의 과정을 거쳤다. 남편과 금슬이 좋았거나, 남편이 일찍 죽은 경우도 있다. 혹은 남편이 오래는 살았지만 돈을 벌어오지 않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자식이 자신보다 일찍 세상을 등진 경우도 있고, 대기업에 취직해 어머니가 편히 살수 있도록 잘 모시기도 한다. 이렇듯 당신들의 삶은 천차만별이다. 저자는 다양한 어머니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이 세상의 어머니들은 공통적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거룩함, 그리고 위대함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미련하게 자식을 사랑한다. 언제 고향에 올지 모르는 자식을 위해 어머니는 항상 된장과 김치를 한 가득 담가놓는다. 자식들이 역시 찾아오지 않아 어머니는 결국 시어 버린 김치를 내다 버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번에도 김치를 당신이 먹을 양 이상으로 많이 담글 것이다.

"자식들은 보고 싶어도 못 가고. 돈 없으께."
할머니는 여름 휴가철이 돼도 오지 못하는 자녀들이 몹시 그립지만, 쉽게 섬을 벗어날 수가 없다.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그러할 것이다. "놈의 자식들이 와도 그냥 맘이 설레요."

자식들은 엄마의 품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갔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그런 핑계도 연락도 없이 자식들은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다. 자식을 그리워한 어머니는, 다른 집 자식이 돌아오는 날이 되면 당신도 괜히 마음이 설렌다.

"풍 오고 치매 오고 그런 거 나도 모른 순간에 와 빌더라고. 그럴 때는 얼릉 이걸 먹고 죽어 버려야제. 그래야 자식 안 성가시제." 간난신고를 견디며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온 이유도 자식을 위해서였는데, 이제 목숨을 버리는 이유도 자식을 위해서다. 어머니, 그 이름이 한없이 따뜻하면서도 잔혹하다.

어머니는 혼자 밥 해먹을 기력마저 잃으면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언제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약을 가지고 다닌다.

노래가락과 해학으로 견뎌온 고난의 세월

자식들 앞에선 한없이 약하지만, 거친 세상을 향해서는 누구보다 강한 모습을 보이는 어머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떠안게 된 어머니는, 조개 파서 젓갈 담고 낙지도 담아 여섯 남매를 키워냈다. 꽃게잡이 배에서 힘겹게 그물을 끌어올리다가 손가락이 잘리기도 한다. 자식들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어머니로서 강한 모습을 보여왔어도 어머니도 사람이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 어머니들은 해학과 가락으로 이를 승화시켰다. 밤새 베틀을 밟아 가며 베를 짠 돈으로 자식을 키워냈다. 어머니는 그 힘든 세월을 노래 가락과 해학으로 견뎠다. 어머니들은 어머니들끼리 고단수의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는다.

두 할머니가 동시에 밭 주인 할머니를 향해 돌팔매질하는 시늉을 한다. 휴식이 끝나고 할머니들은 다시 밭으로 들어간다. 그때 한 할머니 문득 '은총'을 받으셨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한 말씀.
"날도 좋은데 하늘로 딱 올라가 버리면 좋겠어."
꽃비는 내리지, 하늘은 푸르지, 봄볓은 따뜻하지. 승천이라도 할 수 있을 듯이 기분 좋은 봄날이다.

모두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음에도, 저자는 이 모든 어머니들의 삶을 귀납적으로 추론하여 하나의 결론을 '쉽게' 이끌어낸다.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어머니들의 삶을 다만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하게 그려낸다. 굳이 자식들의 후회 어린 눈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말까지 대신하여 이야기하지 않는다. 저자의 몫은 그저 당신들의 삶을 그려내는 것이다.

큰골 고갯마루의 외딴 집, 텃밭에서 할머니는 김장에 쓸 쪽파를 뽑고 있다.
"다 뽑아서 너무 쓱쓱 뽑아 줘서 딸 주고 며느리 주고 했드니 너무 없어. 조금 남겨 둘걸."
쪽파뿐이겠는가. 할머니는 평생 자신의 모든 것을 쓱쓱 뽑아 자식들에게 나눠 주었다.

저자도 독자들이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며 책장을 넘기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저 치열하고 위대했던 세상 수많은 어머니의 삶에 대해 알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무한히 피어 올랐던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점철된 당신들의 삶을 충분히 긍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담기지 않은 자식으로서의 목소리는, 이제 독자 개개인의 몫이다. 이 소설 속 어머니들만큼이나 독자들도 다양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한마디는 아마 세상 어떤 언어로 표현해도 같으리라. 엄마, 위대한 엄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덧붙이는 글 | 차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전 -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다

강제윤 지음, 박진강 그림, 호미(2012)


태그:#어머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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