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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곱게 다려놓은 정장을 입고 교생실습일지와 노트북을 챙긴다. 평소엔 잘 하지도 않던 화장을 하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났다. 학교에서 갈아 신을 슬리퍼도 챙겼다. 슬리퍼인데, 굽이 한 10센티는 되는 것 같다. 키가 작아 보이면 애들이 무시한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했다.

학창시절에 봐왔던 교생선생님의 예쁘고 멋진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 교생선생님이 되는 일은 고되다.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정장을 차려입고 화장을 해야 하며, 학교에서 수업준비와 생활지도까지 하고 돌아오면 아이들에게 기를 빼앗기고 온 기분이다. "언니, 실습 잘 다녀오세요." 같은 과 후배들이 위로하듯 첫 출근을 하는 나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3주간 출근 (4월 23일- 5월 11일) 하게 된 중학교에는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환경의 아이들이 많았다. 첫날 교장 선생님은 교생들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시내 다른 학교에 비해 학업성취 수준이 낮은 편인 이 학교는 교육청 사교육비 절감 대표학교로 지정됐는데 오히려 사교육비가 늘어서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다. 한편 이 학교의 말썽 담당은 예상대로 2학년이었다. 북한이 남한에 쳐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남한의 중학교 2학년들 때문'이라는 농담이 떠올랐다.

첫 수업 전날, 손짓까지 고민했는데... "선생님, 웃겨 보세요"

교생 수업 사진. 아이들은 있는 힘껏 지루해하고 있다.
 교생 수업 사진. 아이들은 있는 힘껏 지루해하고 있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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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생이 된 첫 번째 주부터 직접 수업을 시작했다. 나는 교육학에서 배웠던 '교수개발 단계'에 따라 수업을 준비했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업지도안을 짜야 한다. 수업지도안은 45분 동안의 수업을 어떤 순서대로, 어떤 교재와 자료를 활용하여 진행할지를 정리한 계획서다. 하지만 계획서에 어떤 아이가 장난을 쳐서 수업을 방해하는지는 적지 않기 때문에, 실제 수업은 계획과는 조금씩 다르게 진행된다.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계획을 세웠다면, 수업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판서보다는 파워포인트를 교실 내 텔레비전 화면에 띄워 놓는다. 영상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을 위해, 수업 중간에 틀어줄 동영상도 편집했다. 수업 자료를 만든 후 혼자 수업 시연을 해봤다. 나처럼 초보교사들은, 수업 시간 조절에 실패해 시간이 남거나 모자라 당황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내용만 열심히 설명할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애들을 웃길 '드립'도 생각해 가야 한다. 최대한 아이들의 시선을 끌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교탁 앞은 일종의 무대인 셈이다. 아이들은 관객이고 선생님은 배우와 같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기 때문이다. 손짓, 시선처리 모두 신경 써야 한다. 나는 첫 수업 전날, 주변 선배들과 동기들로부터 들은 '좋은 수업을 하는 노하우'를 정리하고 대본까지 일일이 정리한 후 새벽에 잠들었다. 나는 35명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수업을 하고 싶었다. 전날 밤은 그렇게 수업에 대한 기대와 의지에 가득 찼다.

"앞으로 7번에 걸쳐 여러분과 사회 공부를 하게 돼서 반가워요. 우리 재밌게 수업해보자. 선생님도 재밌게 수업하도록 노력할게."

첫 날 1학년 6반 교탁 앞에 선 나는 웃으며 준비해온 인사말을 했다.

"선생님, 그럼 좀 웃겨 보세요."

교실에서 제일 덩치 큰 한 아이가 말했다. 아이들 앞에서 계속 미소를 잃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는, 인사말을 던지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웃음을 잃었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개그맨은 아니지 않니? 수업 내용도 재밌을 테니까 한번 공부해보자."

아이들은 수업을 듣지 않았다. 끊임없이 장난을 쳤고, 지우개를 던졌고, 떠들었다. "세계 인구 분포는 어떤 양상이었죠? 지우개 그만 던지랬지!" 수업 전날 혼자 수업시연하며 준비한 아이들 흥미 유발 방법, 시선처리, 손동작 모두 의미가 없었다. 수업 진행하랴, 맨 뒷자리에서 계속 장난치는 애들 지적하랴, 자는 애들 깨우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준비해 온 동영상을 보여주는 1~2분 동안이 제일 조용했다. 영상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은 더 보여 달라고 영상을 틀기 전보다 더 시끄럽게 아우성쳤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제 수업이 애들한테 그렇게 재미없었을까요?" 수업이 끝난 후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나는 담당 선생님께 물었다. "요즘 들어 유난히 애들이 선생님 말을 잘 안 들어요… 저처럼 나이 좀 있는 선생님들은 점점 변해가는 학교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시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교생선생님인 거 아니까 더 심한 거죠."

아이들은 영악하게도 '진짜 선생님'과 '교생선생님'의 차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어차피 요즘 선생님들은 자기들을 때릴 수 없는 것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교생 선생님은 벌점조차 줄 수 없는 사람인 것도 알았다. "선생님은 어차피 진짜 선생님도 아니잖아요." 조용히 수업에 집중해달라는 나의 명령이자 부탁에 한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작은 악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친해진 후, '진짜 수업'이 시작되다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들과 가까워지기로 했다. 틈틈이 아이들과 놀았다. 요즘 한창 유행인 '손바닥 뒤집기 게임'을 함께 했다. 책상 위에 양 손을 대고 한 손씩, 혹은 양 손 모두 재빠르게 뒤집으며 하는 게임이었다. 사실 규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어찌나 손놀림이 빠른지 나는 손등이 빨개질 때까지 벌칙으로 맞았다. "아, 선생님 왜 이렇게 못해요." 킬킬대며 놀리면서도 아이들은 나와 게임을 하고 싶어 했다.

청소시간에는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했다. 나는 지우개 수류탄을 던졌고, 아이들은 "빵! 으악!" 이러면서 죽은 척을 했다. 일어나서 나에게 빗자루 기관총을 "다다다다"하고 쏘면 나는 "악!"하면서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혼자있는 아이한테는 다가가서 친구 관계와 고민에 대해 물었다. 아직 어색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말을 걸어주니 계속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다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자, 우리 수업시간이니까 수업에 집중해서 열심히 듣자." 아이들과 친해졌다고 느꼈을 무렵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아이들이 늘었다. 여전히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과 어느 정도 친밀함이 생기자, 아이들은 떠들다가도 굳은 내 표정을 보고 눈치껏 수업에 집중했다. 점점 나에게 관심을 갖는 아이들도 늘었다.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 수업이 끝나고 질문 있냐는 내 말에 6반의 한 아이는 항상 이렇게 물었다.

"와, 일주일에 수업을 20시간씩 하면서 어떻게 살지?"

하지만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진 않았다. 수업 준비와 결재서류 정리를 하느라 학교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교생 대기실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새로운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하루에 두 번 같은 수업을 두 반에서 하고 나면, 그 다음 진도로 내일 두 반에서 할 수업을 준비한다. 그나마 나는 하루에 두 번 수업을 하지만, 나와 함께 갔던 실습 동기는 하루에 같은 수업을 4번 해야 했다.

"와, 진짜 선생님들은 평소에 이렇게 수업하고 어떻게 살지? 이거 말고도 방과 후 수업도 하고 담임도 하고 행정 처리도 다 해야 할 거 아냐. 난 지금도 피곤해서 죽을 거 같은데."

나보다 수업이 두 배로 더 많이 한 동기는 하루 수업이 모두 끝나면 눈이 반쯤 감겨 초점이 없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오후 5시 30분, 저녁 먹고 6시. 집에 돌아와서 수업준비를 시작해서 빠르게 끝내면 새벽 1시다. 정장을 입고 화장하고 출근 준비하려면 새벽 6시 반에 기상해야 한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첫 수업 전날처럼 수업지도안, 시연 같은 것은 할 정신도 시간도 없이 그대로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2009 교육과정 개정으로 실시된 집중이수제는 사회 교과서 한 권을 한 학기 안에 모두 끝내도록 한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교과목의 성격이 비슷한 것끼리 묶어 한 학기당 10~13개로 구성된 교과목 수를 8개 이하로 축소하는 것이 집중이수제의 핵심이다. 내가 맡은 사회 과목은 도덕과 묶여 하나의 교과군이 되었다. 그래서 사회와 도덕은 '사회 교과군'이 된다. 사회 교과군은 1학년 내에 모두 '집중 이수' 해야 한다. 사회는 1학기, 도덕은 2학기에 끝내면 '사회 교과군'을 이수한 것이 된다.

내가 담당한 1학년 아이들의 이번 중간고사범위는 사회 교과서 책의 절반이다. 기말고사 범위는 아마 교과서 끝까지일 것이다. 많은 내용을 단기간에 수업해야 하니까, 사회선생님은 일주일에 20시간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 학기 사회 선생님들은 아마 도덕과목을 20시간 수업할 것이다. 실습 3주 동안 나는 하나의 대단원을 모두 가르쳐야 했다. 선생님들도 이렇게 수업 진도 나가기 급급한데, 과연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 줄어들긴 할까? 

"선생님, 잘 가요"... 35개 별들 모두 행복하길

교생 실습 마지막 날, 운동장에서 하트를 만들어 보인 아이들.
 교생 실습 마지막 날, 운동장에서 하트를 만들어 보인 아이들.
ⓒ 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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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오늘이 벌써 선생님 마지막 수업이야. 너희 그동안 참 많이도 떠들었지? 수업 열심히 들어준 친구들도 많아서 고마웠어."

마지막 수업 날 나는 이렇게 말했다. "흑흑흑, 지금 눈물 흘려야 할 타이밍인 거 같은데 눈물이 안나요." 몇 명의 아이들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낸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진지한 감정표현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장난처럼 시작됐다. 이별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그 장난이 아이들 나름대로의 서투른 감정 표현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도 같이 우는 척 연기를 해줬다. 마지막 수업은 유난히 조용했다. 나와 전쟁놀이를 같이 했던 아이가 수업이 끝난 후 조용히 다가와 사탕 하나를 쥐어줬다. "선생님 잘 가요." 못내 쿨한 척 손을 흔들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학교 폭력, 왕따, 교실 붕괴 등 지금의 학교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 이 말들이 현재 학교의 부정적인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단어라 할지라도, 3주간 내가 느낀 교실을 모두 표현해주진 못했다. 다만 선생님도, 학생도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선생님은 수업과 행정에, 학생은 학업 부담과 폭력, 왕따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짧은 교생실습 기간 동안 나는 교실 내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35개 각기 자기만의 개성을 발하는 별과 같은 존재였음을 알았다. 부디 학교에서만이라도 이 별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 퇴근길, 나는 마음 속으로 별 하나하나의 행복을 빌었다.

덧붙이는 글 | 차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교생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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