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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우일문 대표
 '호박' 우일문 대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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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시간은 11시였다. 버스에서 내린 시간은 10시 35분. 합정역에서 2200번 버스를 탔더니 파주 출판단지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무실로 찾아가는 것이니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도 괜찮겠지만,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에 들러 따끈하게 데워진 캔 커피를 하나 사서 편의점 옆에 마련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배낭에서 책을 꺼냈다. 캔 마개를 따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약속시간까지 고작 20분 남짓밖에 시간이 없었지만, 여유를 부리면서 책을 읽고 싶었다. 김려령의 <가시고백>이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지금 읽는 책이 몇 쇄인지 궁금해졌다. 확인하니 1판 7쇄. 출판시장이 어려워 초판을 팔기 어렵다는데 <가시고백>은 7쇄를 찍었구나. 잘 팔리는 책이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잠시 뒤 만날 예정인, 1인 출판사 <유리창>을 운영하는 <오마이뉴스> 블로거 '호박' 우일문 대표가 낸 책들은 어떨까? 1989년부터 출판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해, 20년이 훨씬 넘게 출판사에서 편집자와 기획자로 일한 우일문 대표는 지난 2011년, 1인 출판사 <유리창>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6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가 처음 낸 책은 <정연주의 기록>이었고, 6번째 책은 고은광순의 <힐링>이다.

우일문 대표는 <오마이뉴스>에 '호박'이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 '월하등천'을 운영하고 있다. 말하자면 나와는 '오블' 이웃이다. 가끔 서로의 블로그를 방문해서 포스팅한 글을 읽고 댓글을 주고받는 사이다. 온라인 만남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것은 지난 2011년 6월. 마찬가지로 '오블' 이웃인 '이충렬 샘'이 2011년 6월에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을 출간했고, 교보문고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그날, '오블' 이웃들은 끈끈한 정을 과시하면서 대거 강연회에 참석했고, 만남은 뒤풀이로 이어졌다. 그 자리에서 온라인에서만 댓글을 주고받던 '호박'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이충렬 샘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인상이 그리 깊게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인문학 책을 주로 내는 '호박'이 출판사로 성공을 하는지 못하는지가 우리 출판계의 척도가 될 것이다. 호박이 성공을 하면 출판의 미래가 있는 것이고, 못하면 우리 출판은 미래가 없다."

그제야 '호박'이 1인 출판사를 창업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상당히 능력 있는 화려한 이력의 편집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월에 출판사 등록을 하고, 5월에 사업자등록을 한 호박 우일문 대표는 8월에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첫 책의 저자가 정연주 전 KBS 사장이었다. 아주 '빵빵한' 저자를 섭외했구나, 했다. 대박이 나길 바란다는 덕담을 댓글로 달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1인 출판사 <유리창>을 창업한 지 1년, 그는 어떤 성과를 거두었을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블로그를 통해서만 봤던 그의 사무실을 직접 구경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약속을 잡았고, 16일 오전에 합정역에서 파주출판단지로 가는 버스를 탔던 것이다.

세종벤처타운 4층에 자리 잡은 그의 사무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넓었다. 창가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옹기종기 놓여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고, '호박' 우일문 대표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맞이해주었다.

"1인 출판사, 한달에 1000만원씩 까먹는다"

1인 출판사 <유리창>이 출간한 6권의 책
 1인 출판사 <유리창>이 출간한 6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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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한 줄도 안 나왔어요. 신간이 나오면 월요일에 (신문사들로) 보내요. 그러면 화요일이나 수요일에 (소개하는) 기사가 나오는 것이 관례인데, 어찌된 게 단 한 글자도 안 나왔어요. 지금까지 책을 내면 그래도 단신이라도 처리되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나오지 않았어요. 해명해 보세요, 기자가."

이번에 6번째로 출간한 고은광순의 <힐링>을 일간지가 전혀 다뤄주지 않았다는 우 대표의 불평이었다. 우 대표는 그 이유를 해명해 보라고 채근했지만, 내가 알 리가 있나. 내 전문분야가 아니니 말이다. 우 대표 역시 대답을 얻고자 던진 말은 아니었다. 새 책을 출간했으니 당연히 세간의 관심이 새 책에 쏠리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언론에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힐링> 이전에 낸 5권의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물었다. 첫 책인 <정연주의 기록>은 그가 가장 기대를 한 책이었다.

"빵빵한 저자를 '꼬셔서' 10권을 내면 기본은 하겠지, 한 것이 (유리창의) 기본전략이었어요."

정연주 전 KBS 사장은 그의 말대로 '빵빵한 저자'였지만 그의 기대처럼 '기본'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그는 출판시장의 위축이라고 풀이했다. 경제가 그만큼 어려워져 독자들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첫 책부터 대박이 나서 아는 사람들이 재수 없어 할지도 모른다, 는 우려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초판 3000부를 찍었고, 이어 2000부를 더 찍었지만 다 팔지 못했다.

"정연주라는 저자가 부족해서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의 지갑이 얇아져서 만 오천 원짜리 책도 못 사는 거라고 봅니다."

그게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취약점은 마케팅의 부족이었으므로. 출판사가, 편집자가 좋은 책만 만들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으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마케팅 전략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마케팅 시대가 아닌가.

그렇다면 <유리창>은 어떤 홍보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블로그와 페이스 북을 통해서 하는 홍보가 전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광고를 할 만한 여력이 없으니, SNS를 통해 알리는 게 전부다. 물론 온라인 서점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힐링>이 그렇다.

"1인 출판은 남편이 무얼 하거나, 마나님이 무얼 하거나 해서 생활비 걱정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우리 집은 대학생이 하나 있고, 중3이 하나 있는데, 제가 '딸라 빚'을 내서라도 집에 생활비를 갖다 줘야 돌아가요. 작년 3월부터 시작해서 지금이 5월인데, 한 달 평균 1000만 원은 까먹은 것 같아요. 생활비까지 포함해서."

호박 우일문 <유리창> 대표
 호박 우일문 <유리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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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대표는 6번째 책을 내고 나니 이제는 큰일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책은 누가 뭐래도 잘 팔려야 하는데, 신문에서 서평을 아예 다뤄주지 않고 있으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잘 팔릴 것으로 예상하고 낸 책이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신문사에서 서평으로 다뤄주지 않아도 <힐링>은 일단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긴 했다. 그렇더라도 그의 희망사항인 '3만 부'가 팔릴 수 있을까? 그는 꼭 팔아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1인 출판사로 성공해야 하는 이유로 "후배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리창>이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그와 함께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희망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란다. 이충렬 샘이 강연회 뒤풀이 자리에서 한 말이 새롭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말을 빌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책을 그런대로 많이 파는 출판사는 1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 대형 출판사의 책이 많이 팔리고, 그처럼 영세한 출판사가 출간하는 책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출판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눈높이 맞는 책을 내서 '대박'을 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내 '지적질'에 그는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대중의 눈높이가 어딘지 모른다는 거죠. 이렇게 어려운데 하기 싫어서 안 하겠어요? 요거는 대중적이겠지, 이거는 대중적이겠지 이러는 건데, 내가 편집자로 훈련받은 게 그런 게 아니어서 그쪽을 모르는 거죠. 배우는 것도 그렇고, 나 스스로 훈련해온 것도 그렇고, 잘 모르니까 그런 거죠."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전통적이면서 보수적인 편집자'라고 했다. 그건 결국 대중에게 영합하는 가벼운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책은 만들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출판의 미래 암울한 건 맞지만... 버틸 자신 있다"

우일문 대표는 자신이 출간한 책의 70%가 온라인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고 했다. 오프라인 서점 역시 대형 서점만 살아남고 동네 서점들은 사라지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그의 주 독자층은 40~50대로 이들은 대부분 온라인 서점을 통해서 책을 구입한다.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온라인 서점을 통해서 책을 구입한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경우는 여행을 떠났을 때뿐이다. 여행지에서 기차나 버스,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면서 근처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기 때문이다.

"전자책에는 관심이 있어요. 지금까지 낸 책 가운데 4권을 만들었고, 2권은 제작중이에요. 전자책 시장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언젠지는 모르겠어요.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되려면 교보문고나 알라딘 같은 회사들의 단말기가 다른데 이게 통일이 돼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전자책) 시장은 오지 않을 거라고 봐요."

전자책에는 관심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지금까지 낸 책은 6권에 불과해 전자책으로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출간된 책이 많은 출판사가 전자책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예전에는 당연히 전자책이라는 개념이 없었느니 지금까지 출간된 책을 전자책으로 만들려면 저자와 계약부터 새로 해야 한다. 요즘은 출판계약을 할 때 전자책 출판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유리창>의 문패. 판화가 류연복 선생의 작품이다.
 <유리창>의 문패. 판화가 류연복 선생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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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출판사, 저처럼 전문적으로 출판을 하면서 커온 사람이 하면 어쨌든 꾸려는 갑니다. 영업 출신은 더 잘 꾸려가고. 편집자 출신이라도 20년 이상 한 전문가니 콘텐츠를 잘 만들면 견딜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판사를 시작하면 1년이나 2년을 견디기 어려워요.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까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까먹어요. 그래도 저는 버틸 자신이 있어요."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늘 뒤로 밀리는 법. <오마이뉴스> 블로거가 된 이유를 물었다. 출판사 편집자 혹은 기획자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처음 <오마이뉴스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2006년 7월이었다. 당시 그가 근무하던 출판사에서 '오블' 블로거 강춘의 블로그 연재 만화를 엮어 <우리 부부야, 웬수야?>를 출간했다.

'오블'에 연재된 만화를 책으로 냈으니, '오블'을 통해서 홍보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 <오마이뉴스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책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다. 그러면서 오블 블로거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다. 저자 사인회에 와달라고 블로그에 올렸더니 40~50명 정도가 사인회에 참석했다. 블로그의 맛을 보고, 블로그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는 얘기다.

중간에 뜸해지기는 했지만 그는 요즘도 <오마이뉴스 블로그>를 통해서 '오블' 이웃들과 소통하고 있다. 1인 출판사를 시작한 뒤에는 블로그에 책 이야기만 썼더니 재미가 없다는 불평도 들려온다면서 그는 웃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이 <유리창>이 출간한 책의 홍보 공간이니 블로그에서 책 이야기가 빠질 수야 없지 않겠나.

이야기는 다시 <힐링>으로 돌아갔다. 현재 우일문 대표의 관심사는 <힐링>을 많이 파는 것이므로. <힐링>은 한의사인 고은광순이 치매와 노환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모시다가 이별하는 이야기를 유쾌하면서 재미있게 엮은 책이다. <이프> 블로그에 연재되었던 것을 책으로 낸 것인데,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면서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판의 미래가 암울한 건 맞아요. 종이책이 사양 산업이니까. 전자책이 대체재로 나오긴 했는데 언제 터질지 모르지요. 언젠가는 그 때가 올 것이니까 준비는 해둬야겠죠. 종이책은 콘텐츠가 우선이에요. 대중을 추수하는 재주는 없으니까 안정된 콘텐츠를 생산하고 내 책을 사주는 독자가 천 명만 있다면, (대한민국의) 도서관에서 천 권만 사준다면 근근이 버틸 수 있어요. 그러다가 하나가 터지지 않겠어요? 대박 하나 터뜨리면 일거에 뜨니까. 생각지 못하게 터지는 경우가 있죠. 대개 터지는 책들이 그래요. 그런 게 나한테 없을까요?"


태그:#유리창, #호박, #우일문, #정연주, #고은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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