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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살아왔던 강원도 탄광촌에서의 재미있고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 주신 엄마, 어머니!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 딱 그만큼 더 살아온 나의 날들이 완전명사는 아니지만 행복함이라는 탑을 점점 높이 쌓고 있는 중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5월입니다.

80년대 초였던가 '근대화 연쇄점'이라는 녹색 간판이 대통령 선거 즈음해서 '현대화 연쇄점'으로 바뀌어 졌을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탄광의 합리화로 인해 장사도 힘들어지고, 올망졸망한 다섯 남매의 먹고 입히는 최저생계비까지 걱정해야 하는 엄마의 한숨이 요즘 제 현실과 참 많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가지 틀린 점을 찾자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바뀌었다는 정도일까요. 그래도 웃을 수 있는 몇 개의 추억이 생생한 그림처럼 펼쳐져 있기에 현실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탄광 을(乙)반 근무(오후 3시부터 밤 12시) 때 엄마와 우리 다섯 남매에게 숙제로 남겨진 '연탄 오백장 광 속에 차곡차곡 쌓기' 사건 기억나시죠? 슈퍼 앞에 탄차가 아무렇게나 놓고간 500장의 연탄들,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의 남은 몇 시간 동안 엄마와 저, 남동생에게 일어난 그 엄청난 사건이 새삼 떠오르네요.

간판 바꿔 단 후부터 장사가 안 된다고, 먹고 살기 힘들다며 투덜대시다가 낮잠을 초저녁까지 주무셨던 어머니. 그 옆에서 오락실에 가려고 500원을 달라고 조르는 초등학교 2학년 남동생, 가게를 지킨다는 핑계로 연탄 나르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 일찌감치 친구집으로 피신해버린 언니, 그리고 어린 두 명의 여동생.

잠결에 500장의 연탄을 나른 후의 대가로 500원을 준다고 동생과 약속해 버린 어머니, 500원을 타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도움요청도 없이 혼자 묵묵히 얼굴과 몸에 검은 연탄칠을 해가면서 임무를 완수한 남동생, 그리고 그 상황을 가게 안에서 눈동자와 귀만 열어놓고 구경만 하고 있던 나.

나는 느끼고 있었지요. 그때 정말 피하고 싶었던 연탄 오백장과 인연이 되어야 할 주인공은 바로 '엄마와 나'였다는 것을요.

결과는 모두에게 참담한 현실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임무를 완수한 남동생에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었다고 500원을 줄 수 없다고 말하셨고, 남동생이 약속을 어긴 엄마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 올라 나를 쳐다 보았을 때 아무것도 본 것도, 들은 것도 없다고 대답해 버린 나.

어두워진 저녁인데다 인내심 없는 동생의 성격상 떼 한 번 쓰고 말것이라는 생각에 엄마편을 들고 말았지요. 과감히 500원을 포기하고 친구와 놀러 나간 줄 알고 있었고, 내 할 일을 동생이 대신 해줘서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엄마 편에 서서 동생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생겼던 나는 불과 한 두시간 후에 엄청난 광경을 보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광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연탄 500장을 한 장도 빠짐없이 다시 원위치로 돌려 놓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속상함까지 더해서인지 절반은 떨어뜨리고, 깨뜨렸지요. 결국 연탄 500장에 더해진 어지럽혀진 마당과 광 속 청소까지 담당해야 했던 나와 엄마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동생에게 백기를 들었고, 생각없이 한 행동에 대한 후회를 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엄마와 나의 연탄 나르기 숙제에 하나 둘 씩 모여든 나머지 형제들. 재미있는 기차 놀이를 하는 분위기로 우리는 몇 걸음 씩 떨어져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서둘러 일을 마쳤지요. 늦은 저녁 달님에게 하루의 일기를 재잘재잘 작은 입으로 보고하면서 잠을 못 이뤘던 그날, 우리집은 행복의 파도가 넘실대면서 그칠 줄을 몰랐지요.

가끔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느끼거나 답답함을 느낄 때, 목까지 숨차오르는 내 현실을 이겨내지 못할 때가 있다면 그날의 가족 일기를 꺼내봅니다. 피식 웃음이 터지면서 약속이 주는 생활의 작은 의미를 생각하기도 하고, 또 그렇게 조금은 느슨한 하루를 보내게 되는 계기로 삼기도 합니다.

그래도 부모란 이름의 엄마는 달랐습니다. 남동생의 기가 막힌 행동에 내가 떠안아야 할 일까지 있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동생에게 막말을 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위협을 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들에게 500원을 주면서 늦은 약속을 지키셨으며, 토닥거리며 안아주는 행동으로 미안함까지 표현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도와 할 일을 끝맺었을 때 느끼는 환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내 어머니에게 그날의 일화는 한 권의 소설이 돼 가족 모임에서나 친구 모임에서는 자식의 자랑거리로 표현하셨고, 본인 생활에서는 가끔씩 삶을 충전하는 유머가 되기도 하고, 사소한 약속도 그냥 지나치는 일없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교훈으로 삼고 계신다고 합니다.

부모의 살아가는 이유가 자식이라면 자식의 잘못은 부모의 아픔이 될 것이고, 자식의 행복 역시 부모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그 평범한 진리 속에서 다시 한 번 어머니를 불러보고 싶은 5월입니다.

예전 아무런 조건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환하게 웃으시며 걱정해 주시던 어머니가 떠오르는 한 가지 추억만으로도 우리 가족 행복의 파도는 오래도록 넘실거릴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의 어머니' 응모글입니다.



태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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