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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외국인 노동자가 저지른 수원 여성 살인사건과 영등포 살인사건 이후, 우리 사회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다. 얼굴도 언어도 다른 이들이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 깊숙이 터전을 마련하고는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선량한 시민들의 신변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 그런 사람들일까? 짧지 않은 시간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온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시인 이세기의 <이주, 그 먼 길>(이세기 저, 후마니타스 펴냄)에는 대한민국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지만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은 탈출구일까 '블랙홀'일까?

 

자신의 고향을 떠나 먼 타지에서 이주노동을 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머나먼 타지, 대한민국으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일자리가 부족한 자신들의 고향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이주노동자들이 돈을 위해 대한민국에 왔다고 생각할 뿐, 우리가 필요로 인해 그들을 불러들였다는 점을 간과하곤 한다.

 

진짜 제대로 돈을 벌어 본국에 돌아가는 이주노동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탓에 노동착취, 임금체불, 강제해고가 빈번히 일어나고, 물가가 싼 아시아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고국 기준으로 임금을 받기도 한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자신들의 생활비가 없어 열악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에 주로 투입되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 노동자를 대신해 산업재해에 고스란히 노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다 팔목이나 손가락이 절단된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형편없는 보상금과 노동력의 상실뿐. 대한민국은 그들이 생각했던 '탈출구'가 아니라, 아무리 일해도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없는, 그래서 더욱더 떠날 수 없는 '블랙홀'과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리욤씨는 2005년경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왔다. 입국한 지 2개월도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프레스에 그의 손가락이 싹둑 날아갔다. 손가락 다섯 개의 보상금은 3100만 원이었다. 그 돈을 가지고 타이에 와서 택시 두 대를 소유한 사장이 되었다. 그는 차에 오른 나를, 웬일인지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오른손을 치켜세우며 배웅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달라는 뜻 같았다. 그의 삶이 송곳이 되어 폐부를 찔렀다. - 47쪽

 

값싼 노동력은 값싼 인권?... 한없이 가벼운 '외국인 노동자 인권'

 

얼굴색이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이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잊곤 한다. 조금이라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폭행을 일삼으며 사업주는 "뒤통수 한 대 때린 것이 폭행이 될 줄은 몰랐다"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강가(27, 스리랑카)씨가 센터로 들어왔다. 신발이 벗겨졌는지 맨발인 채다. 얼굴은 주먹으로 맞았는지 벌겋게 부어올랐다. 공장장이, 바쁜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며, 얼굴, 다리, 복부, 팔 등 온몸을 폭행하고 그것도 모자라 작업장에 있는 파렛트를 던지자 도망쳐 왔다는 것이다. 입국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한국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 84쪽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곳까지 떠밀려온 이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이전에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리고 '값싼 노동력'은 결국은 '값싼 인권'으로 전락한다.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인 노동자와는 아예 다른 차원의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그들에게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들'이라고 비난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에 따라 실직한 뒤 2개월 안에 재취업하지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로 강제 출국 대상이 된다. 법률 규정이 구조적으로 미등록자를 양산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강제 출국 대상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살아온 이들에게 만성적인 병이 있다면 '불안증'일 것이다. 언제 잡힐지 모르는 상황은, 이들을 '불안과 공포'로 내몬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내일이란 언제나 불안한 내일이다. 마음 놓고 차도 못 탄다. 문화도 삶도 없다. 입구는 있으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벽인 셈이다. - 130쪽

 

이처럼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삶은 존재자체가 불안이다. 일단 '불법'이라고 규정되고 나면 언제 단속에 걸려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주노동자들 중 이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느끼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본국으로 송환되는 경우도 많다.

 

불안감 때문에 정신착란까지... 우리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

 

더욱 큰 문제는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 범죄 발생 원인 중 그들이 느끼는 '불안'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우리 사회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생겨나고, 이것이 '범죄'의 형태로 표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조선족 남성에 의해 벌어진 영등포 직업소개소장 살인사건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그를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그도 처음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것이 소망이었던 그는 식당용 칼을 구입해 지니고 다녔는데, 임금 체불로 불안이 극에 달해 홧김에 직업소개소 소장을 찔러 죽인 것이다. 그가 만약 임금을 제때 받았다면 그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주의 삶은 꿈을 꾸는 것이다.'

 

저자는 '꿈'을 위해 먼 타향까지 떠밀려온 이주노동자의 삶이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다양한 이주노동자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 사이에서 그들의 꿈은 한결같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얼굴색도 언어도 다르지만 우리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이주 노동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적대심을 견제해야 하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고재연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주, 그 먼 길> 우리 사회 아시아인의 이주 노동 귀환을 적다, 이세기 저, 후마니타스 펴냄, 2012.04.20, 1만3000원


태그:#이주 노동자, #다문화, #이주, 그 먼 길, #외국인 노동자, #불법 체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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