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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로 가는 길가 풍경이다. 전형적인 농경 사회 풍경이다. 수많은 관광버스가 지나는 길이지만, 고즈넉한 농촌모습 그대로다.
▲ 포카라 가는 길가 풍경 포카라로 가는 길가 풍경이다. 전형적인 농경 사회 풍경이다. 수많은 관광버스가 지나는 길이지만, 고즈넉한 농촌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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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포카라에서 한 네팔인 청년의 결혼식이 열렸다. 한국 동대문에서 네팔레스토랑을 하는 네팔인 친구의 동생이다. 신랑 디페스도 형 따라 벌써 5~6년을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의 형은 한국의 한 여성과 결혼을 했고 이전에 소개한 바 있는 것처럼 한국인 최초의 성씨를 만든 장본인이다. 바로 네팔의 8000미터가 넘는 다울라기리 히말라야 산 아래 동네 마르파 청년 디네스다. 그리고 그의 아들 히동규는 한국인 최초의 "히"씨 성을 가진 아이다. 그러니까? 이날 결혼식은 한국인 최초의 히씨, 히동규의 작은아버지가 결혼한 날이다.

결혼식장에서는 이색적으로 삼겹살이 구워졌다. 한국 사람의 눈으로 매우 흥미롭기도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삼겹살을 즐겨먹는 모습이 너무 익숙했다.

네팔 포카라에서 열린 다울라기리 히말라야 산 아래 마르파 출신 청년 결혼식에서 삼겹살이 하객들의 입맛을 돋웠다,
▲ 삼겹살을 굽는 청년 네팔 포카라에서 열린 다울라기리 히말라야 산 아래 마르파 출신 청년 결혼식에서 삼겹살이 하객들의 입맛을 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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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게스트룸과 호텔을 알리는 나무판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 포카라 버스터미널 포카라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게스트룸과 호텔을 알리는 나무판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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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네스도 이제 청년이라는 호칭이 어색할 나이가 되었다. 20대 초반에 한국에 와서 일가를 이루게 된 청년 디네스가 얼마 전 한국에서 아우의 동생 결혼식 때문에 네팔에 왔다며 초대해 주었다. 사실 초대를 받고도 기꺼이 참석하겠다는 말을 못했다. 막 시작한 한국문화센타의 한국어 수업도 해야 하고 거리도 멀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는 충분했던 것이다.

며칠을 고민하다 아내와 함께 기꺼운 마음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지난 12월 15일 네팔에서 결혼했다. 하지만 모자란 처지 덕분에 신혼여행을 못했다. 그들을 축하해야한다는 생각을 한 후, 부담스럽던 초대는 고마운 초대가 되었다. 덕분에 결혼한 지 4개월 보름 만에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갈 수 있었다. 말이 신혼여행이지 결혼식 참석이 신혼여행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관광버스를 타고 편도 7시간 30분을 투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히씨다. 어린 아이의 이름은 히동규다. 그의 어머니는 공주댁이다. 나의 아내 먼주구릉이 만났다. 네팔새댁과 한국인 어머니가 만난 것이다.
▲ 한국인 최초 히씨, 히동규가 엄마 품에 한국인 최초의 히씨다. 어린 아이의 이름은 히동규다. 그의 어머니는 공주댁이다. 나의 아내 먼주구릉이 만났다. 네팔새댁과 한국인 어머니가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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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당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바쁘게 준비를 한 후 관광버스에 올랐다. 7시에 출발한 버스는 길고 긴 협곡을 지나기도 하고 깎아지른 절벽을 지나기도 했다. 마치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삶의 고행을 일러주는 히말라야 산줄기의 가르침이라 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험난한 여정에 도로변에서 두 번의 휴식이 있었다. 그렇게 쉼임없이 달린 버스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포카라에 도착했다. 먼저 지인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에게 결혼식장을 알아본 후 오후 5시가 되어서야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마르파 타칼리는 티벳과 가까운 무스탕에 사는 몽골리안이다. 다울라기리라는 히말라야의 안온한 마을 사람들이 동네 청년의 결혼을 축하하며 춤을 추고 있다.
 마르파 타칼리는 티벳과 가까운 무스탕에 사는 몽골리안이다. 다울라기리라는 히말라야의 안온한 마을 사람들이 동네 청년의 결혼을 축하하며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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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장은 마르파 타칼리 회관에서 열렸다. 해가 뉘엿뉘엿 너무는 날, 아쉽게도 결혼식장에서 히말라야는 볼 수 없었다. 우리는 항상 맑은 날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맑은 날 뜨거운 햇빛 덕분에 히말라야는 보이지 않았다. 포카라의 물기가 증발해서 허공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날마다 맑은 날을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맑음이 가리는 또 다른 빛나는 형상들이 가려질 수도 있으니 맑은 날만을 기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한국에서 6년여를 살다가 부모가 맺어준 배필을 만나 결혼식을 하고 있다. 둘의 웃음이 밝다. 잘 사시게.
▲ 인연을 맺은 디페스 부부의 웃음이 밝다. 한국에서 6년여를 살다가 부모가 맺어준 배필을 만나 결혼식을 하고 있다. 둘의 웃음이 밝다. 잘 사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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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색을 하면서도 우리는 항상 누군가에게 축원을 빌고 축복을 보낸다. 바로 그런 마음이 우리가 희망을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난 그날도 막연하지만 힘찬 인생을 시작하는 그들에게 결혼을 축하하고 미래에 웃음 길이 놓이길 기원했다. 덩달아 나의 삶도 또 현실을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 하루하루가 위로 받는 날이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태그:#다울라기리 히말라야, #마르파 청년 디네스, #디페스 결혼식, #한국인 히씨, 히동규,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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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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