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안기부의 남산 본관이 있던 곳으로 1층부터 6층까지 대부분 행정기능을 하는 사무실이었다. 현재는 청소년 숙박시설로 이용된다.
▲ 서울유스호스텔 안기부의 남산 본관이 있던 곳으로 1층부터 6층까지 대부분 행정기능을 하는 사무실이었다. 현재는 청소년 숙박시설로 이용된다.
ⓒ 강민수

관련사진보기



"이곳은(서울 유스호스텔)은 지난 94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남산 본관 건물이 있던 자리에요. 1973년 10월, 중정(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은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7층 화장실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곳이라고 발표했죠. 최 교수는 간첩 혐의로 조사받고 있었어요"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가 26일 오후 한때 '남산 안기부터'였던 유스호스텔의 역사를 설명해 나갔다. 박 이사는 "결국 의문사위는 최종길 교수가 자살이 아니라 고문에 의해 사망한 걸로 밝혀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고(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80년 5월 내란음모혐의로 체포될 당시 이곳에서 취조를 받았다"며 "현재는 청소년들이 숙박하는 곳이지만 이런 과거를 전혀 모를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남산에 인권 유린의 현대사 있었지만 기억할 '장치'가 없어

중정은 물론이고 그것을 이은 안기부는 정권 안보를 위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1974년 민청학력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1985년 구미유학생 사건 등은 중정과 안기부가 조작한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이었다.

남산 아래 통감관저터(1910년 한일강제합병이 체결된 곳)를 중심으로 중정과 안기부의 옛건물은 TBS 교통방송청사와 서울종합 방재센터, 남산창작센터,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TBS 교통방송청사 건물은 안기부의 수사와 행정기능을 맡았고, 소방재난본부와 남산창작센터는 각각 안기부 유치장과 안기부 요원들의 실내체육관으로 사용되었다. 남산은 현대사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현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보기관에서 새긴 인권 유린의 역사를 기억할 만한 기념물이나 기념관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가 담긴 공간이 현재는 남산 아래의 공공기관으로 변해 있었다.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 현장을 보존하고 기념관을 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인권재단 '사람'이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서울시의 신청사 건설로 남산의 서울시 산하기관이 이전할 경우, 그 공간을 기념관으로 만들자는 시민청원 운동이다. 현재 서울특별시 남산 별관은 10월 중으로 신청사 이전이 계획된 상태다.

인권재단 '사람'은 '남산 안기부터를 인권·평화의 숲으로'라는 구호로 시민청원을 추진하고 있다.
▲ 인권재단 사람 인권재단 '사람'은 '남산 안기부터를 인권·평화의 숲으로'라는 구호로 시민청원을 추진하고 있다.
ⓒ 강민수

관련사진보기


임수경 당선자 "지금도 남산 1호터널을 지날 때면 울렁거린다"

인권재단 '사람'은 26일 옛 주자파출소 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산 안기부터를 '인권·평화의 숲'으로 만들기 위한 시민청원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주자파출소는 과거 '자식이 안기부에 끌려 갔다'고 전해들었던 전국의 어머니들이 이곳에서 변호사를 만나거나 자식의 면회를 신청했던 자리다.

이날 임수경 민주통합당 당선자(비례대표)는 자신을 "국가안전기획부가 배출한 당선자"라고 소개하면서 "안기부 남산 별관(현재 서울특별시 남산 별관) 지하 110호에서 조사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1989년 당시 독일 베를린을 거쳐 방북해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 귀국한 후 간첩혐의로 체포됐다.

임 당선자는 "가슴 아픈 통감부관저에서 친일의 역사, 매국의 역사, 지금까지 계속되는 치욕의 역사를 그대로 덮을 것이냐"며 "부끄러운 역사들을 후대에 기억을 하게 만들고 인권과 평화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 시대의 과제이자 소명"이라고 시민들의 청원운동 참여를 촉구했다.

임 당선자는 "이 주변은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다"며 "남산 2, 3호 터널을 잘 지나다니는데 1호 터널을 지날 때면 울렁거린다, 지금도 서 있기가 곤란할 지경이다"라고 토로했다. 

정연순 민변 사무총장 "역사적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남산 안기부터를 인권·평화의 숲으로'라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두 손에는 인권꽃씨로 꽃이 핀 화분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인권꽃씨는 남산 안기부터를 인권과 평화가 숨쉴 수 있도록 만드는 시민의 힘을 상징한다.

정연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은 "이곳은 인간적인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했던 피해 장소"라며 "그것을 2, 30대에게도 반드시 기억하게 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 건물이 서울 신청사로 입주하게 되면 비는 공간을 역사적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자"고 참여를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임수경 국회의원 당선자, 정연순 민변 사무총장과 김철환 인권재단 '사람'의 이사장, 인권재단 활동가들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인권재단 '사람'은 이날 시민청원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7일~28일 오후5시부터 7시까지 이틀간 장충단 공원에서 현장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태그:#안기부터, #인권재단 사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