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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관노가면극 이야기

강릉 관노가면극의 소매 각시
 강릉 관노가면극의 소매 각시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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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 가는 길은 경포 호반을 따라 이어진다. 벚꽃 축제 기간이라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길을 따라 가다 보니 경포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경포대에 오르려면 호수 쪽이 아닌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길은 완만하게 경사져 있다. 어느 정도 올라가자 길은 다시 왼쪽으로 꺾어진다. 길 오른쪽으로는 평평한 잔디밭이 나타나고, 왼쪽으로는 경포대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이곳 잔디밭에서 마침 강릉 관노가면극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단오제 때나 공연하는 것을 4월에 볼 수 있다니 대단한 행운이다. 경포호 벚꽃 축제를 맞아 특별히 공연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를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둘째 마당 '양반 광대 소매 각시 사랑'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양반 광대의 구애
 양반 광대의 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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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광대가 뾰족한 고깔을 쓰고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고 위엄 있게 등장한다. 그는 노랑 저고리에 분홍 치마를 입은 소매 각시에게 구애한다. 소매 각시는 얌전한 탈을 쓰고 수줍은 모습으로 춤을 추며 양반광대와 서로 뜻이 맞아 어깨를 끼고 장내를 돌아다니며 사랑을 나눈다. 곧 이어 셋째 마당 '시시딱딱이 훼방' 장면이 시작된다.

시시딱딱이가 무서운 형상의 탈을 쓰고 양쪽에서 호방한 칼춤을 추며 뛰어 나온다. 양반 광대와 소매 각시의 사랑을 질투하며 훼방을 놓는다. 소매 각시를 밀고 잡아당기며 훼방 놓다가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시시딱딱이는 무서운 벽사가면을 쓰고 작은칼을 휘두르며 계속 춤을 춘다. 이어 넷째 마당이 시작된다. 시시딱딱이가 양반 광대와 소매 각시 사이를 갈라놓는다. 시시딱딱이가 한쪽에서는 양반광대와 놀고, 다른 쪽에서 소매 각시를 희롱하며 함께 춤을 춘다.

시시딱딱이의 훼방
 시시딱딱이의 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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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는 넷째 마당을 거쳐 다섯째 마당으로 이어지는데 나 혼자만 가면극을 계속 구경할 수 없다. 함께 한 동료들이 벌써 저 만치 앞서 갔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경포대로 올라간다. 경포대는 바다 호수길의 하이라이트일뿐 아니라 경포호의 상징이다. 그것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아 호연지기를 느끼고 시문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들이 느꼈던 감정을 우리는 지금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포대와 경포호는 관동의 제일강산

경포대는 관동팔경 중 제1경이다. 그래서인지 경포대 현판 중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글귀가 가장 먼저 들어온다. 경포대에 오르니 경포의 장관이 한 눈에 들어오고, 경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정철의 <관동별곡> 한 구절이 생각난다.

경포대 제일강산 현판
 경포대 제일강산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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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타는 수레를 타고 경포로 내려가니,
십 리나 되는 깨끗한 비단을 다리고 다시 다린 것처럼,
맑고 잔잔한 호수가 큰 소나무 둘러싼 속에 한껏 펼쳐져 있구나.
물결도 잔잔하여 물 속 모래알까지 셀 수 있을 정도로다.
한 척의 배를 띄워 정자 위로 올라가니,
강문교 넘은 곁에 바다가 거기로다.
조용하도다 이 기상, 넓고 아득하도다 저 경계,
이보다 아름다운 곳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경포대
 경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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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 안으로 들어가 기둥에 걸린 중수기를 살펴본다. 이들 기록을 보니 경포대는 1626년(인조 4) 강릉부사 이명준(李命俊)에 의하여 크게 중수되었다. 그리고 당시 우의정이었던 장유(張維)가 중수기(重修記)를 썼다. 그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었으며, 조선 초 태조와 세조도 친히 이 경포대에 올라 사면의 경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경포대는 홍수로 훼손되어 1745년(영조 21)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다시 지었다. 그리고 1873년(고종 10) 강릉부사 이직현(李稷鉉)이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포대에는 경포대라고 쓰인 현판이 두 개 걸려 있다. 하나는 헌종 때 한성부 판윤을 지낸 이익회(李翊會)가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한지(兪漢芝)가 전자체(篆字體)로 쓴 것이다.

경포를 읊은 선인들의 시와 부

박수량의 시
 박수량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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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대를 내려온 나는 경사진 길을 따라 호수 쪽으로 내려간다. 길옆에는 강원 시사랑회 회원들이 쓴 시가 걸려 있다. 김남조의 '봄에게', 조영수의 '오대산 물소리' 등이 보인다. 조금 더 내려가자 이번에는 돌에 옛사람들의 한시를 새긴 시비가 나타난다. 안축, 이정암, 박수량 등의 시가 눈에 들어온다. 그 중 한량이자 효자로 이름난 박수량의 시가 절창이다.

거울 같은 경포 호수 깊숙한 수중           鏡面磨平水府深
형상은 비추어도 속마음까지 비출소냐?  只鑑形影未鑑心
호수가 마음까지 비춘다 하면                若敎肝膽俱明照
경포대 오를 사람 몇이나 될까?             臺上應知客罕臨

이곳 강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율곡 이이는 '경포대부(鏡浦臺賦)'에서 봄철 경포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그런데 율곡이 이 시를 쓴 것이 열 살 때였다고 하니 가히 그의 천재성을 짐작할 수 있다. 

버드나무와 벚꽃의 조화
 버드나무와 벚꽃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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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의 봄철에는 춘신(春神)이 와서 머물고       其春也東君弭節
화창한 기운이 유행하니,                                  灝氣流行
동쪽과 서쪽에서는 꽃과 풀이 빼어남을 경쟁하고  東西兮花卉競秀
위와 아래에는 물과 하늘이 함께 맑도다.             上下兮水天同淸
버드나무 호반 실버들에는                                 柳岸金絲
안개가 끼어 노래하는 꾀꼬리를 보이지 않게 하고  煙鎖流鶯之幕
도원의 화려한 꽃 위로는                                   桃源花色
이슬이 내려 나비의 날개를 적시는구나.               露濕蝴蝶之翔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浮嵐藹藹
먼 봉우리는 아득하기만 하구나.                         遠峀茫茫

올해는 버드나무와 벚꽃이 더욱 잘 어울린다

경포호와 경포대
 경포호와 경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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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 읊은 것처럼 올해는 계절이 늦어서인지 버드나무와 벚꽃이 함께 잘 어울린다. 넘실대는 호수 너머로 벚꽃과 버드나무가 사이좋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벚꽃은 연한 분홍색을 띄고, 버드나무는 연한 연두색을 띤다. 호수를 한 바퀴 돌아 경포호 너머로 보는 언덕 위 경포대의 모습도 일품이다. 경포대 주변으로는 벚꽃이 상대적으로 많이 피었다.

그렇지만 이들 벚꽃이 만개하려면 삼사일은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나는 이제 강변을 따라 가면서 꽃도 보고, 조각품도 보면서 자연과 예술을 즐긴다. 경포로에는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함께 있는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2인용, 4인용, 6인용 등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전거를 탄다. 정말 보기 좋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잡는다. 그러자 자신들이 찍혔다면서 좋아한다.

홍길동과 벚꽃
 홍길동과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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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를 따라 3㎞쯤 걸었을까, 호수 오른쪽으로 길이 하나 보인다. 그곳에는 어린 홍길동 동상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홍길동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주인공이다. 그 길을 따라 가면 허난설헌 생가로 이어진다. 그때 우리 팀을 이끄는 노영섭 대장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모두 허난설헌 생가로 갔으니 그리로 오라고.

그는 나처럼 문화유산을 빼놓지 않고 보려는 회원들 때문에 늘 고생이다. 뒤처진 사람이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경포호를 떠나는 것이 아쉬워 호수 건너 경포대 쪽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그리고 허난설헌 생가 가는 길로 접어든다. 이 길에는 최근 교산교라는 다리가 생겼다. 교산은 허균의 호다. 허난설헌과 허균, 이들은 강릉 출신의 오누이 문인으로 유명하다. 


태그:#경포대, #강릉 관노가면극, #<관동별곡>, #<경포대부>, #홍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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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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