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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아성'이라는 대구에서 진보주의자로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기간을 서울에서 보내고 1년에 몇 번만 집에 내려오는 내게도 그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특히 오랫동안 <조선일보>를 애독하신 아버지와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꽤 피곤한 일이다.

2년 전, 아버지와 정치토론을 하다 크게 다툰 적이 있다. "4대강은 진행 중이고 찬성하는 사람이 많으니 해야 하지만, 무상급식은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니 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에 집을 뛰쳐나왔고, 그 이후로 아버지와 정치 이야기를 가급적 피해왔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서로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괜한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냐"는 편집기자의 말에 설득 당했다. 나는 가정에 새로운 분쟁의 씨앗을 뿌리기로 결심했다.

2년 만에 벌인 아버지와의 정치토론... "북한과는 맞서 싸워야 안 되겠나"

아버지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아버지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권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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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불과 일주일도 남지 않은 5일 저녁. 거실에서 혼자 아이패드로 뭔가를 찾아보시는 아버지께 조심스레 다가가서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께서는 왜 진보세력이 집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2년 전 그날 이후로 내가 먼저 아버지에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께서는 조금 의외라는 눈으로 한 번 쳐다보시고 말문을 열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친북적인 면 때문이겠지. 우리가 깡패하고 대치할 때 깡패의 입장이 돼서 이해하고 용서해주면 안 되는 것처럼 북한과는 맞서 싸워야 안 되겠나."

'또 NL이 문제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하다 일단은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국가보안법 유지를 주장하는 보수세력 때문에 소위 말하는 '친북세력'이 유지되는 것 같은데요? 일심회 사건(2006년 검찰이 발표한 간첩사건. 민주노동당의 몇 인물이 이와 관련해 유죄를 받았다.) 때에도 내부에서 '친북'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국가보안법이라는 외부의 적 앞에서 이 문제는 일단 묻어둬야 한다는 식의 말이 나왔거든요. 저는 그런 점 때문에라도 국가보안법은 없어져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게 현실이잖아. 북한은 남한을 적화시키려고 하고. 그러니까 군만으로는 안 되고 국가보안법도 있어야지. 국가보안법이 옛날에 정치적으로 많이 악용된 부분은 개정해야겠지만, 나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예상한, 하지만 설득력은 별로 없는 답변이다.

"문제는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거죠. 처벌이 필요하면 형법으로 처벌하면 되는데 왜 굳이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을 남겨야 돼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북한이란 나라가 김정일 사진이 비에 맞았다고 막 눈물을 흘리고 그럴 정도로 이상한 나라잖아. 또 미국이랑 싸울 정도로 대단한 나라고. 이런 북한하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해제되어 버린다고 하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

나로서는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생긴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주체사상이 유입되기라도 한다는 걸까? 이 점을 재차 여쭤봤지만 아버지는 "불리하니까"란 말씀만 하셨다. 납득은 안 되지만, 일단 다음 문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아직, 할 이야기는 많다.

"분배 통해 성장해야죠" - "유럽식은 힘들어, 정규직 경직성도 문제"

"그런데 진보세력이 다 친북은 아니잖아요. 진보신당은 왜 안 돼요?"
"진보에서 복지를 말하는데 결국은 성장을 하면서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역시 예상한 답변이다. 할 말이 많다. 

"저는 오히려 성장 측면에서도 진보로 가야 한다고 보는데요? 일단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은 우리가 따라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에요. 인구, 영토, 경제력, 군사력 등 여러 면에서 우리와 너무 차이가 나서 따라할 수가 없죠. 또 미국은 양극화가 너무 심하고, 이미 2008년 금융위기 때 한계를 많이 보였고요. 그에 반해 복지국가로 불리는 스웨덴은 1인당 GDP도 높고, 연구개발에도 투자를 많이 해 혁신역량도 높죠."

내가 구구절절 이야기를 해서일까, 아버지도 그럭저럭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당장 유럽의 복지제도를 따라가기는 어렵고 합의를 봐야지."
"합의는 해야죠. 그런데 저는 분배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고 봐요. 성장을 해야 분배를 할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안 되고 있잖아요."

그때 갑자기 아버지께서 화제를 돌려 정규직을 공격하고 나섰다.

"다른 관점에서 한번 보자.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똑같이 주는 것도 분배와 관련된 문제인데, 내가 CEO라고 하면 유사시에 감원도 할 수 있고 임금도 적게 주는 비정규직 고용 안 하겠냐는 말이지. 정규직들 해고도 맘대로 못 하고, 임금도 너무 많이 받잖아."
"그런데 우리는 이미 정리해고를 너무 많이 하잖아요. 원래는 정리해고를 긴급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때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하고 너무 많이 해서 문제고, IMF에서도 우리는 비정규직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하는데."
"정리해고를 많이 한다는 거는 노동자들 시각이겠지. IMF도 제3자니까 우리하고는 보는 시각이 다를 거고. 하여튼 정규직의 경직성이 문제야."

답답하다. 정규직을 문제로 보는 시각. 답답하긴 한데 당장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공부가 부족하다. 어쩔 수 없이 일단 화제를 돌렸다.

"아까 제가 말한 복지를 통한 성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복지는 늘려야지. 그런데 돈을 더 주기 위해서도 성장이 필요하지."

결국 오랜 대화 끝에 복지 확대에 대한 지극히 '원론적인 합의'를 간신히 얻었다.

진보 아들과 보수 아버지, 마침내 만나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순탄치는 않았지만, 전보다는 수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쟁의 씨앗을 뿌릴 각오를 한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꽤나 순조로웠다. 그 실마리는 예상치 못한 데 있었다.

"니가 <오마이뉴스> 인턴하면서 처음으로 진보 신문을 좀 봤다. 그 전에는 진보 쪽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이 사람들 생각 존중받아야 된다,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경청할 만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하지."

하긴 내가 <오마이뉴스> 인턴을 시작한 이후 아버지께서 진보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오마이뉴스> 어플을 다운받아 기사를 보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일까. "박근혜에게서 박정희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던 아버지도 나의 박근혜 비판에 수긍하셨다. "인혁당 희생자 유족 만나서 사과하는 게 인간적 도리 아니겠느냐"라는 나의 지적에 아버지께서는 "좀 더 자세히 봐야 알겠지만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사실 아버지와 다시 정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파국'이 예정된 게임을 시작하는 것 같아 두려웠다. 2년 전 그날 아버지와의 대화가 파행으로 치닫고 답답한 마음에 줄담배를 피웠다.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프랑스의 정치가 생 쥐스트의 말을 떠올렸다.

"민중과 그 적들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칼뿐이다."

물론 나는 민중이고 아버지는 민중의 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만큼 공유할 수 있는 게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이다. 사실 답답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원론적인 수준에서만 맴돌고, 구체적인 현실에서는 무엇 하나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얼마간 아버지의 변화를 느낀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는 나와의 대화 후에 사민주의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시기도 했다. 2년 만에 소통의 가능성을 본 셈이다.

아마 앞으로도 아버지가 진보주의자가 되거나 혹은 내가 보수주의자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몇 가지쯤은 합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마이뉴스> 인턴이 의외의 기회가 돼서 아버지께서 진보의 목소리를 경청하게 됐고 2년 만에 아버지와 내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듯이, 영원히 평행선을 그을 것만 같은 수많은 진보 아들과 보수 아버지 역시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계기 덕분에 어딘가에서 만날 것이다. 그리하여 둘 사이에 놓인 것은 결코 칼이 아니고, 누구도 민중의 적 따위는 아니며, 둘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성향이 아무리 달라도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니까.

덧붙이는 글 | 김경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TK, #진보,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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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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