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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입니다."

 

오전 10시 20분,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가 나가자 청중들은 환호했다. 특히 쌀쌀한 날씨에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 입장하고 오랜 시간 기다렸던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나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을 꺼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26일 오전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미네르바 콤플렉스 대강당에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이란 주제로 열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는 1000여 명의 교수, 학생, 초청인사, 취재진들이 꽉 들어찬 가운데 성황을 이뤘다.

 

오바마 대통령은 제2회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차 어제 취임 이후 세 번째 방한했지만 대학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뛰어난 연설 솜씨로 잘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이 시작되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한국'과 '개교 이래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한국외대'라는 찬사로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간 뒤 주한미국대사로 한국에 부임한 성김 대사와 최근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세계은행 총재로 내정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소개하고 비무장지대 장병들을 격려했으며 오늘 2주기를 맞는 천안함 용사들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대한민국 방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과시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디지털 시대의 희망찬 미래에 대해 전망하며 트위터와 함께 '미투데이' '카카오톡' '한류' 등을 직접 언급하거나 연설 맨 끝에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한국말로 "같이 갑시다"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또 연설을 앞두고 주한미국대사관이 SNS를 통해 받은 질문에 '대통령은 SNS에 가명 글을 남긴 적 있느냐'라는 게 들어왔다며 "나는 그런 적이 없으며 내 딸들이 그랬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핵개발 계속 추진하면 더이상 보상해주지 않을 것"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핵안보정상회의의 목적과 목표 그리고 한미동맹에 의지를 표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3년 전 프라하에서 표명했던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가 내 생애에서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여러분 세대에서 가능할 것"이라며 "이번 회의에는 전세계 50여 개국 정상들이 모여 2년 전 워싱턴 회의에서 설정한 목표를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 회의 이후) 전세계적으로 수천 파운드의 핵물질이 제거됐고, 이같은 물질은 다시는 서울과 같은 도시를 공격하는 데 쓰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원자력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사용하면, 음식도 안전해지고 병도 고칠 수 있으며 클린 에너지이기도 하다"며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전의 계속 추진의지를 보여줬다. 그는 "한국은 원자력 에너지 선두주자로,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고서 번영한 좋은 예를 보여줬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실용 위성 '광명성 3호'를 발사하겠다고 한 것을 겨냥한 듯 "북한 지도층에 직접 얘기하고 싶다"며 대북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일을 벌일 생각이 없고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으며 그래서 북한 여성과 아이들에게 영양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핵개발 추구는 이를 저해하는 것이고 북한은 세계로부터 존중 대신 강한 제재를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한은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길의 끝을 알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보상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며 "선택은 북한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대사관이 학생 명단 받아 선발... 학교측 과잉조치도 눈살

 

한편,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으로 '개교 이래 최고의 귀빈'을 맞아 홍보의 호기를 맞아서인지 한국외대측의 과도한 조치가 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학교측은 보안 점검을 위해 이날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전체 수업을 휴강하는 조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러한 조치는 이문동 캠퍼스뿐만 아니라 행사가 열리지 않는 용인 캠퍼스까지 포함됐다.

 

학교측은 전체 교수의 4분의 1이상이 오바마 대통령의 강연을 들을 예정이며 빠진 강의는 나중에 보충수업을 할 예정이라고 해명했지만 많은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강연장 앞에서 만난 한 학생은 "세계 최강인 미국 대통령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는 것은 분명히 학교의 영광이고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수업까지 모두 휴강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우리가 낸 수업료를 빼앗긴 기분이다"고 말했다.

 

학교측의 과잉조치는 이뿐이 아니다. 당장 내일인 27일이 학내 총학생회 선거일인데 학교측이 26일 하루 모두 선거운동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 교내에 부착돼있던 각종 선거홍보물도 모두 떼어졌다. 그 자리에는 급조된 화단이 조성됐다.

 

강연에 참여할 학생들을 선발하는 과정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이날 강연에 초청된 학생들은 모두 700여 명. 학교 측에 따르면, 이 학생들은 주한 미국 대사관이 학교로부터 재학생들의 명단을 받아 임의로 대상자를 선정한 뒤 개별적으로 통보했다는 것.

 

이에 대해 이 대학 정치외교과 3학년 반지수씨는 "외고 출신이나 외국에서 살다와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초청된 것으로 안다"며 "강연에 초청되면 오바마 대통령에게 핵안보회의와 관련된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실망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의 나라 대통령의 연설회장에 초청할 학생들을 뽑는다며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미 대사관측에 넘겨주는 것도 문제 아니냐"고 반문했다.


태그:#오바마, #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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